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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s a Youth?

오지연의 Dental In-n-Out

1968년 작 로미오와 줄리엣을 TV로 보았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소녀라는 올리비아 핫세는 다시 봐도 역시 천사 같았다. 회갈색의 그 커다랗고 동그란 눈이 올려다 볼 때면 그만 이 쪽은 무슨 일이든 부탁 받은 대로 다 해 주고만 싶어질 것 같았다. 이 영화 이후로 이렇다 할 성공작이 없는 덕분에 그만 줄리엣의 화신이 되어 버려서, 훗날 모든 줄리엣 역할의 배우는 올리비아와 얼마나 비슷한가를 겨루어야 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입니다만. 

한 송이 장미가 피고 지듯이/젊음도 미모도 곧 시들고/한 때의 사랑이 왔다가는 사라지지/죽음이 곧 우릴 잠재울 테고/결국 우리 삶을 지배하는 건 큐피드라네… 캐플렛 가의 연회에서 미성의 청년이 ‘젊음이란 무엇인가?’란 노래를 부르는 동안 가면을 쓴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수를 둘러싼 손님들 사이를 돌며 서로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카메라가 어지러울 정도로 같이 돈다. 장미도 젊음도 사랑도 사뭇 속절없이 스러져 간다는 느낌을 실감할 만큼 5분이 넘도록 돌고 또 도는 이 장면은 설령 무덤 속의 셰익스피어가 봤다 해도 틀림없이 아낌없이 박수를 쳐 주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사랑한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은 원작에 충실한 대사와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한 때를 날카롭게 포착한 탁월한 연출력으로 시대를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줄리엣의 발코니에서 밤을 지새운 뒤 푸른 수풀이 우거진 어두운 새벽의 숲을 숨이 턱에 차게 달려온 젊은 로미오를, 햇살이 가득한 황금빛 들판의 나이 든 로렌스 신부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반겨준다. ‘여자문제’ 일 것이라고 이미 짐작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대가 원수 집안의 아가씨라는 말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는 강철 멘탈로 과연 숨막히는 젊음의 숲을 지나 온 이의 여유와 관록을 뽐낸다. 티볼트를 죽여 만토바로 추방당한 로미오가 성당으로 찾아와 울부짖을 때 역시 신부는 ‘너는 행운아’라는 혁신적인 프레임을 제시하는데, 말인즉슨, 칼부림 소동에도 생명을 건졌고, 살인죄에도 사형이 아닌 추방령을 받았고, 아리따운 신부가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으니 행운이 무려 세 가지나 겹쳤다며 꾸물거리지 말고 당장 줄리엣의 집으로 가서 마지막 밤을 보내라고 한다.

행운이란 결국 살아남는다는 것이고, 그래서 종종(이별을  겪었거나 예감한) 슬픔의 얼굴로 찾아온다. 비탄에 잠겼던 로미오가 신부의 일갈에 눈물을 닦고 줄리엣에게 가는 장면이야 말로 처연한 幸運兒의 肖像이며 또한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이 빛나는 순간이라 하겠다.

페스트의 창궐로 젊은이가 되어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등지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던 400여 년 전 어두운 시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긴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애매함이라는 삶의 본질을 우아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비극으로도 희극으로도 분류되지 않으며 얼핏 온통 두 주인공의 현란한 연애시들 인 것 같지만 구석구석 어른들의 대사를 통해 멋진 경구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두 연인이 오해로 비롯된 비극적 죽음을 맞자 로렌스신부가 “시간의 농간으로 비극이 일어났구나!”라고 탄식하고, 줄리엣에게 반해 흥분하여 말을 더듬는 로미오에게 “애매하고 불분명한 고해에는 답이 없다”며 일침을 놓는 장면 등등이 이 작품의 주제가 불같은 십대의 사랑만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어쩌면 ‘살아있는 그대들을 축복하노라’는 아름답고도 슬픈 生命의 讚歌 쪽에 더 가까우리라.

인류의 간절한 소망이던 長壽가 언제부턴가 재앙이라고 까지 불리며 국가와 사회가 온통 그 해결에 매달리고 있는 형국이 믿어지지 않지만 사실이 되어버렸는데, 젊음이나 행운처럼 노년을 바라보는 프레임에도 약간의 탄력을 더해서 공허한 無病長壽보단 “어딘가가 약간은 아프지만, 그 밖의 다른 곳은 비교적 덜 아픈 상태”를 목표로 좀 더 여유를 갖고 추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영화를 보던 끝에 문득 들었다. 비록 애매함으로 가득 찬 것이 삶이라 해도 우리의 어드레스나 애티튜드는 (여유를 갖고 힘을 뺄지언정) 결코 애매해선 안 될 것 같다. 그래서야 굿 샷도 해답도 나올 리가 없으니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지연 치과의원 원장
서울치대 치의학대학원 동창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