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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your mother

오지연의 Dental In-n-Out

청경채랑 버섯은 충분한데 삶은 돼지고기가 조금 밖에 없지만 이제 그 정도 일 쯤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즉시 베이컨으로 보충하고 (태연자약하게) 굴 소스로 마무리해 꽃 빵과 함께 저녁으로 내 놓았다. 일단 냄새부터 딱 동파육 이네 云云 과장 섞인 칭찬을 남발하며 맥주 한 캔씩 들고 슬그머니 TV 앞으로 그 퓨전 혹은 짜깁기 음식을 가져가는 父子를 큰 인심이라도 쓰듯 못 본 척 해 주는 주부 9단 신공. 아무렴, 大器는 晩成이라 했다.

스타워즈 8편을 기다리며 지난 일곱 편 리뷰에 여념이 없는 분들 많으실 텐데 이번엔 전에 없이 나까지 끼어 앉아 보고 있다.

얼마 전 레아공주 케리 피셔가 세상을 떠나면서 40년간 시리즈와 같이 했던 내 지난 추억 일부분도 공주와 함께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 들어서다. 신해철도 김주혁도 그립겠지만 레아공주를 잊기는 더 힘들 것이다. 늘 불리한 전세임에도 저항군을 이끌고 용감하게 싸우던 공주는 유연하면서도 박력이 넘쳤고, 누구나 그 행동을 예측 할 수 있을 만큼 정의감에 불타는 명료한 캐릭터였다. 자신의 이익이 최우선인 한 솔로 선장이 혼자 빠져 나가려다가도 번번이 발길을 돌려 공주를 찾아 가는 것 또한 어디 있을 지 뻔한 사람을 두고 간다는 것이 상당히 위험한 처신이란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너무 신랄한 거 같으니 그냥 ‘사랑 앞에선 천하의 한 솔로라도 갈팡질팡 했던 것’ 정도로 해둘까.

시리즈 순서의 복잡함 탓인지 스타워즈 마니아라 자처하는 이가 의외로 드문데, 1977년부터 1983년 까지 세 편이 공개 된 뒤 16년 만인 1999년이 되어서야 나온 네 번째 에피소드가 4편이 아니라 (프리퀄) 1편이었던 것은 사실 사람들을 당혹시킬 만한 일이었다. 4-5-6-1-2-3-7-8-(9)로 이어지는 언뜻 기묘해 보이는 이런 순서야 말로 조지 루카스란 사람이 왜 대단한 인물인지를 단적으로 설명해 줄 열쇠일지도 모른다. 神話를 기반으로 써 나가던 시나리오의 스토리가 점점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해 져 버렸다는 걸 깨달은 젊은 감독은 잘 요약해서 한 방에 터뜨리고 싶은 야망을 간신히 억누르고 결국 중간 부분만을 먼저 영화화 하고, 그 성공을 발판으로 기필코 나머지 전부를 시리즈로 완성하리라 결심했다.

무명 감독의 아홉 편 連作계획이란 당시로선 허풍 같았겠지만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제작하며 꿈을 키운 그가 16년 만에 프리퀄 3부작으로 돌아왔을 때 헐리웃은 이미 그의 제국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제다이 기사 아나킨이 두려움과 분노로 인해 어둠의 포스에 사로잡혀 다스 베이더가 되는 과정을 그린 프리퀄은 비극적이면서도 매우 아름다운 시리즈인데, 무슨 영화를 설명 듣고 공부하고 보느냐며 무턱대고 극장에 갔다가 그만 어리둥절해 진 사람이 많았고 바로 그 지점부터 자연스레 마니아가 줄었다나 뭐라나. 묻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아는 척 하기도 좀 그렇다는 점에서 어쩐지 요즘 핫한 4차 산업혁명 담론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과연 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누가 빛이고 누가 어둠이 될 것인가? 라는 質問과 혼돈의 旅程, 그리고 숙연해지는 結末의 반복이 스타워즈의 매력일 텐데, 이토록 심플한 우주와 세상을 우리는 왜 경쟁하듯 있는 힘을 다해 복잡하게 살아가려는 걸까.

조금만 더 한가해 지고 싶다는 오랜 소망을 이루고자 200여 년 전 힘든 노동을 덜어 줄 기계를 만들었고, 동력의 효율을 높였고, 정밀한 제어기술로 기계들을 점차 첨단화 해 온 인류가, 바야흐로 사람의 제어 없이도 클라우드의 빅데이터를 이용해서 스스로 많은 걸 처리할 수 있는 최고급 기계를 만들어 내려는 시점에 온 거라고, 그렇다면 4차가 아니라 1차 산업혁명의 확장판 인거 아니냐고 하면 쑥부쟁이더러 구절초라고 하는 멍청한 소리일지 모르지만 아마 주말에 스타워즈를 너무 봐서 그러려니 하며 부디 너그럽게 눈감아 주시기를.

영화 보며 소파에서 저녁 먹고 싶은 걸 어떻게 알았냐고 내 귀에 속삭이며 싱글벙글하고 있는 아들아, 내 미래와 함께 하려 네 곁을 떠나진 않으마. ‘cause I am your mother.’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