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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의 마지막 별천지를 찾아서

가을에 걷기 좋은 바스락길(上) –서울 백사실계곡 ~ 석파정 서울미술관


이번에 소개하는 루트는 일반인이 갈 수 있는 현존하는 서울의 마지막 별천지를 지나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먼저 오성대감으로 알려진 백사 이항복이 경치에 반해 별장을 지었다는 북악산 아래 백사실계곡을 걷는다. 그리고 만나는 곳은 세종의 셋째아들로 꿈에 본 선경(仙境)을 안견에게 그림으로 그리게 하여 ‘몽유도원도’라는 걸작을 남긴 안평대군이 그 꿈에 보았던 곳과 경치가 닮아서 집을 지어 머물렀다는 인왕산 자락 무계정사터의 무계원이다. 마지막은 아름다운 주변 경치로 흥선대원군이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으로부터 소유권을 빼앗다시피 넘겨받았다는 석파정이 장식한다.

세검정서 시작해 백사실계곡 거쳐 창의문으로

걷기의 시작은 종로구 홍지동의 세검정 버스정류장부터가 좋겠다. 복원한 세검정 정자에서 너럭바위를 씻어내며 흐르는 홍제천을 바라보자. 세검정은 이름대로 검을 씻었다는 곳으로 과거 군사훈련장소였다는 설과 인조반정 때 반군들이 광해군의 폐위를 논하고 검을 씻었다는 설 등이 있다. 작명의 연원이 무엇이든 속이 후련해질 정도로 시원한 물줄기가 꽤 볼만하다.

크게 굽어지는 홍제천을 따라 상류로 향하면 백사실계곡으로 이어지는 골목을 안내하는 안내판들을 볼 수 있다. 입구를 놓쳤다면 동네주민에게 물어봐서 들머리를 찾자. 현통사 사찰 주변의 큰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백사실계곡의 하류에 해당된다. 물줄기를 따라 상류로 걸어가면 잠시 후 오성대감 별장터에 닿는다. 그곳은 비가 내려야 물이 차오르는 연못 주변으로 옛 정자의 돌기둥만 남아 폐허가 주는 아련한 위로를 전해온다.

그리 길지 않은 백사실계곡을 빠져나오면 한양도성의 북소문인 창의문까지 가자. 창의문에 이르는 부암동 골목에는 작은 소규모 박물관부터 아기자기한 소품과 너른 전망을 펼쳐내는 카페들이 있어서 다리쉼에 좋다. 창의문부터는 기존에 조성된 걷기여행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조선시대 명승을 거치도록 필자가 임의로 만든 답사루트다. 따라서 스마트폰의 디지털지도를 켜고, 목적지를 지정하여 길을 찾으면 편하다. 창의문까지 왔다면 이후의 길은 복잡하지 않으므로 누구라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안평대군의 별서 무계정사와 무계원

디지털지도의 첫 번째 키워드는 ‘무계원’으로 창의문에서 걸어 10분이면 충분히 닿을 거리다. 근래 새로 지어진 무계원은 안평대군이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했다는 꿈에 본 무릉도원과 닮아서 무계정사(武溪精舍)라는 별서를 지어서 장서 1만권을 보관하며 선비들과 시를 짓고 교류했다는 자리와 닿아있다. 무계정사 본래 있던 곳은 현재 무계원 위쪽으로 30m 떨어진 지점이지만 담장을 높게 둘러서 안을 들여다보기가 여의치 않다. 까치발을 떼면 안쪽 깊이 무계동(武溪洞) 각자가 새겨진 큰 바위를 얼핏 볼 수도 있으나 사유지이므로 이 역시 조심스럽다.

안평대군이 수양대군에게 역적으로 몰려 죽은 뒤 무계정사는 폐허가 되었고, 근래 들어 종로구에서 바로 밑에 무계원이란 이름으로 한옥을 지어 다양한 문화행사를 열고 있는 것이다. 무계원의 한옥 건물은 1910년대에 지어져 고급 요정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오진암’의 건물이다. 도시개발로 허물어질 위기에 있던 오진암 한옥을 종로구가 기증받아 옮겨지은 것으로 무계원 입구 오른쪽 건물 툇마루 밑에는 몽유도원도 영인본이 걸려 있어 안평대군 당시의 정취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다.



흥선대원군처럼 오래 머물고 싶은 ‘석파정’

무계원에서 찾아갈 곳은 ‘석파정 서울미술관’이다. 서울미술관 이름이 붙은 것은 서울미술관을 통해서만 석파정 영역으로 입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관 이름만 보면 공공기관인 듯싶지만 실제로는 2012년 개관한 사설미술관이다(입장료 성인 기준 1만1천원). 수준 높은 전시와 더불어 서울의 마지막 남은 별천지라는 석파정이 자연과 한옥의 절묘한 어우러짐을 보여주며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미술관 입구에서 입장권을 끊은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면 흥선대원군 별서 석파정 영역에 닿는다. 석파정 한옥으로 바로 올라가지 말고 왼쪽으로 보이는 신라시대 3층 석탑을 향해 계곡을 건너면 석파정 일대를 크게 둘러 걸을 수 있는 작은 둘레길로 접어든다. 곳곳에 놓인 정감어린 벤치와 석상, 그리고 서울미술관이 소장한 명품 그림을 그려놓은 벽화 등이 천혜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심리적 안정감과 기쁨을 준다. 어느 계절에 가든 이 길을 걸어본 이들은  ‘가을에 다시 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필자도 진달래 피던 봄과 더운 여름에만 가보고 가을에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가을과 더불어 눈 내린 뒤의 모습도 기대되는 풍광이다.


석파정 작은 둘레길을 한 바퀴 둘러 나오면 흥선대원군이 왜 그토록 이곳을 소망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인왕산을 타고 흐르는 계곡 물소리와 흥선대원군이 ‘석파(石坡)’라는 호를 짓게 했다는 큰 바위, 수백 년 된 노송과 수목들이 사람은 이런 곳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없이 속삭인다. 젊은 커플과 가족나들이객들을 많이 만나는 석파정 서울미술관은 이 가을을 위해 남겨 놓은 마지막 히든카드로 손색이 없다.


 


윤문기 걷기여행가, 발견이의 도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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