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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 표준(52) 2018년 제54차 ISO/TC 106 밀라노 총회 참관기

국내 표준화 역량 키울 적기

필자는 지난 9월 16일부터 21일까지 이탈리아 밀란(Milan, 밀라노)에서 개최된 ISO/TC 106 Dentistry 54th Annual Meeting에 참석하였다. 필자인 내게 이번 회의 참석은 2009년, 2016년, 2017년에 이어 4번째 참석으로, 이전에는 참관 및 동향 파악이 주된 목적이었다면, 올해는 필자가 주도적으로 표준 개발에 참여한 구강 내시경 카메라(구강 카메라, intraoral endoscopic camera) 표준개발문서의 검토와 다음단계 진행 논의를 하는 자리였기에 회의 참석 전의 부담감은 꽤 컸다. 결과적으로 내 담당 분야의 회의는 회의 개최기간 첫날에 순조롭게 진행됐고, 나머지 기간 동안은 내 전공분야인 구강관리용품(Oral care products)의 표준 개발 회의에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나의 ISO 국제회의 경험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원 예방치과 조교 수련시절 지도교수님의 배려로 일본 오사카 회의에 observer 자격으로 참석하였었고, 전형적인 국제학술대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오직 표준문서 개발을 위한 output을 만들기 위한 빈틈없는 회의였던지라, 전후 맥락의 이해가 부족한 채 띄엄띄엄 들리는 회의 내용을 경청하며 어색하게 앉아있던 기억이 있다.


ISO/TC 106 Dentistry(치과전문위원회)는 ISO 산하의 총 290여개 Technical Committee (TC) 중 106번째 TC로 그 하위로 8개의 subcommittee(SC)를 운영하고 있다. 각 SC가 다루는 주제는, SC 1이 Filling and restorative materials, SC 2가 Prosthodontic materials, SC 3이 Terminology, SC 4가 Dental instrument, SC 6이 Dental equipment, SC 7이 Oral care products, SC 8이 Dental implant, 그리고 SC 9가 Dental CAD/CAM systems이다. 각 SC에서는 세부 주제에 따라 여러 개의 작업반(working group, WG)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WG에서 관련 치과장비, 기구 및 재료의 용어, 품질, 시험분석방법 등에 관한 국제표준을 제안하고 발행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매년 개최되는 ISO meeting에서 진행하게 된다. 일례로 ISO/TC 106/SC 7/WG 8은 불소바니시(Fluoride varnish)에 관한 국제표준을 논의하는 작업반을 의미한다. 각국의 전문가들은 이미 이메일 교환을 통해 개발 표준에 관한 세부내용, 시험소간 상호평가(inter-laboratory test, ILT) 결과, 그리고 자국의 입장을 공유한 상태이기 때문에, 논쟁이 되는 주요 내용을 중심으로 convenor가 회의를 주재한다. 회의 기간 동안에는 여러 개의 회의장에서 각 WG 별로 2~4시간 동안 동시다발로 현안 논의가 진행되며, 여기서 도출된 회의결과(resolutions)는 WG가 속한 SC plenary 미팅에서 재확인되며, 마지막날 TC 106 plenary 미팅에서 최종 승인되는 절차로 진행된다.

각 나라의 대표들이 협력하여 국제표준을 제정하려고 노력하는 우선의 이유는 상품 및 서비스의 품질을 개선하여 소비자, 기업, 그리고 공공의 안전과 이익을 도모하고, 국제간 교류를 원활하게 하여 국제 무역을 활성화하기 위함이다. 대부분의 나라는 국제표준을 자국의 국가표준 개발과 제품 생산 및 수입 허가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 판매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국제표준의 흐름을 파악하여 선제적으로 대응하면 국내·외 시장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정부는 국제표준에 부합하는 적절한 수준의 국내 표준을 적용하면 기업의 이익과 소비자의 편의성과 안전을 도모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과 정부는 국제표준의 개발과 보급에 적극 노력해야 하며, 소비자는 국제표준이 규정한 제품의 품질과 규격을 인지하여 올바르고 안전하게 사용해야 한다. 이러한 국제표준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는 모두가 인정하는 바일 테지만, 필자가 경험한 국제표준 개발 회의 참석자들의 인식은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조금 다르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TC 106 치과전문위원회는 1962년 설립된 이래, 현재 미국, 독일, 일본, 영국 등의 27개 정회원국과 체코, 브라질,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17개의 준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2002년 비엔나에서 개최된 TC 106 회의에 김경남 교수(現 TC 106 한국 대표단장, 연세대학교 치과생체재료공학교실 명예교수)가 처음 참석한 이래 정회원국 자격으로 매년 참석해 오고 있으며, 꾸준히 참석자가 증가하여 올해 밀란 회의에는 26명이 대거 참석하였다. 정회원국은 회의의 주요 의결 사항에 대한 투표권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각 SC별로 한국대표(주로 관련 전공 교수)를 파견하여 현안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투표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 외의 참가자들은 업체 직원, 대학 교수 및 연구원으로 회의 전후 한국의 의견을 조율하고 참관하게 된다.

대한민국 대표단은 20년 가까이 꾸준히 참석하면서 입지를 조금씩 넓혀왔으며 2015년 방콕 총회에서 최종 승인된 오스테오톰에 대한 국제표준 발행을 주도하였으며, 현재는 발치 겸자, 상악동 막 거상기, CAD/CAM의 상호운용성, 치과 수술칼 손잡이, 트래핀 버 등 총 6편이 한국이 제안하여 국제표준으로 발행되었으며, 근관길이측정기, 구강 내시경 카메라 등 10여종의 표준 개발을 주도하고 있고, 3명 한국대표가 WG convenor로 활동하고 있다. 정회원국이 27개라지만, 필자의 경험상 실제 회의에 참석하는 국가는 절반(14개국) 정도이며, 회의에 발언권을 행사하는 국가의 대표는 역시 절반(7개국) 정도이고, 주도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국가는 또다시 절반(4개국, 독일, 미국, 일본, 프랑스 등)으로 주는 것 같다. 보통 WG 회의에는 각 나라에서 온 약 25~50명의 전문가들이 참석하는데, 주로 convenor와 매년 참석하여 회의의 내용을 이해하고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계속 노출시키고 친분을 쌓은 전문가들 간의 활발한 논의가 이뤄진다.

TC 106을 주도하는 국가는 독일, 미국, 일본이다. 달리 보면, 유럽과 북아메리카, 아시아의 패권 국가 간의 경쟁과 협력이 치과 분야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특이할만한 점은 대한민국은 학계 전문가가가 주를 이루고 있는 반면, 이들 국가는 기업이나 자국 표준 업무 담당자들이 직접 참석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요 논점 사항에 대해 기업이나 국가의 이익을 고려하여 즉각 대응할 수 있지만, 학계 중심으로 구성된 한국 대표단은 한국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기엔 한계가 있다.

지금까지 ISO/TC 106 Dentistry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온 한국대표단의 노력과 그 결실은 치과인,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매우 감사한 일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민간외교사절이 아닐 수 없다. 몇몇 치과재료학 전공 교수의 치과의료산업 발전의 사명과 책임감에서 시작하여, 치협과 관계부처(식약처, 기재부)의 관심과 지원을 이끌어내고 치과 타전공 교수와 국내 기업의 관심과 참여를 증가시켰다. 10년 넘게 이 회의를 계속 참석해오고 계신 한 교수님은 초반의 연구비 지원이 끊긴 이후에도 자비와 시간을 내어 회의를 참석하고, ILT에 참여하고, 식약처 보고서를 작성하고 국내 보급을 위해 힘쓰는 이유는 관심 분야의 최신 동향을 파악하기 위함도 있지만, 마치 개원의가 매년 해외진료봉사를 가듯이, 본인도 국가와 치과계를 위해 봉사하는 마음이라고 하셨다. 필자인 내게 교수의 역할에 대해 다시한번 고민해봄 직한 굵직한 메시지였다.

한편, 참석한 몇몇 분과 회의 중간에 담소를 나누며, ISO/TC 106을 이끌어온 한국 대표단의 고민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국 대표단의 ISO 국제표준활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대한민국의 경쟁력 있는 기업이 자기 제품 및 기술 분야에 대한 국제표준을 선도하여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역량 있는 기업의 참여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어떤 기업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 우리 현실은 기업이 스스로 표준을 선도하기보다는 발행된 표준을 따라 그때그때 대응하는 것이 비용효율적으로 비춰지는 것 같다.

또 다른 고민은 국제표준화 활동을 언제까지 학계가 주도할 것인가란 고민이다. 식약처나 기술표준원의 산발적 연구과제나 학계의 자발적 참여에 의존해 발전해온 한국대표단이 연구비 종료나 구성원의 은퇴나 이탈이 발생했을 때 그 공백에 대한 우려이다. 독일(DIN), 일본(JIS), 미국(ANSI)의 국가 규격 산하에는 치과전문위원회를 두어 민·관·학이 협력하여 자국 표준을 개발하고 ISO 국제표준과 유기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국내 KS 규격 산하에는 치과표준을 총괄하는 조직이 유명무실하고, 의료기기 심사와 허가를 관장하는 식약처는 발행된 국제표준을 의료기기 심사 활용에만 주안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한편 미국 치과의사협회는 ADA seal과 같은 자체 인증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미국 내 민간표준화 역량이 국제표준화 활동에 반영되지만, 대한치과의사협회는 국제표준화 활동을 지원할 전담직원을 고용할 예산도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국내 표준화 활동의 저변이 넓혀져야지만 국제표준화 활동의 동력이 생길 수 있다. 국내 표준화 활동의 저변 확대와 전문가 양성을 위해서는 국내 기업들의 상생과 협력, 정부의 제도적, 행정적 시스템 구축, 관련 전문가 및 학계의 참여, 사용자의 요구 등이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는 학계 주도의 ISO 치과 국제표준 활동이 순조롭게 발전되어왔고, 국제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위상도 많이 높아졌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국제표준화 활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국내 표준화 활동의 역량을 키울 적기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를 위해 회원과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1) 대한치과의사협회는 효능과 편의성이 검증된 제품을 추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2) 치의학계는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다양한 제품들의 품질과 안전성을 비교하는 연구들을 수행하고 산업화가 가능한 신기술 개발에 힘을 써야 한다.
3) 관계부처는 치과계의 민간표준 개발 노력에 재정적, 행정적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민·관·학의 협력을 통한 국내표준화 활동에
4) 기업은 자사의 이익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사의 우수한 기술이 민간표준에 부합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

기업은 타 제품과 차별화된 제품과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R&D에 투자하고, 특허를 통해 기술의 배타적 권리를 보장받으려 한다. 하지만, 시장(market)이 외면한 특허 기술은 사장될 수밖에 없다. 국제교역이 필수인 현 시대에서 표준은 해당 기술의 성능과 안전을 보장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극대화시키고, 시장 지배 효과를 높인다. 따라서 표준을 기반으로 한 특허 기술은 시장 진입이 용이하고, 제품 간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것이 기업 R&D 부서가 표준화 동향을 모니터링하면서 표준 우위의 기술을 개발해야 하는 이유일 뿐만 아니라, 국내 표준화의 활동의 역량이 키워야만 하는 이유일 것이다. (주)대양덴텍의 장현양 대표는 ‘휴대형 치과 환자 의자’에 대한 국제표준을 제안하기 위해 자사 제품을 시연해 보여 큰 호응을 얻은 것이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참고자료>
1. ISO/TC 106 홈페이지 https://committee.iso.org/home/tc106
2. 치과표준 http://dailydental.co.kr/news/article.html?no=84028
3. ‘표준특허’ 확보 못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토태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004100089




 정승화 조교수
부산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