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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음악이 가득한 진료실 감성

Relay Essay 제2317번째

오늘도 통증으로 얼굴 찌뿌린 환자와 진료받다가 갑자기 동네 집값이 너무 올라서 우울해서 참을 수 없다며 눈물짓는 단골 환자분을 달래다 보면, 좁은 진료실은 환자를 치료하는 보람 만으로 버티기에는 답답한 곳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정해진 시간동안 한 곳에 앉아 환자를 기다리는 이 직업을 두고, 회사다니는 친구들은 본인은 답답해서 못하겠다고 했었는데, 높은 하늘 위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나들이를 유혹하는 요즘같은 때는 더더욱 엉덩이가 들썩 거린다.

 치의라는 직업은 대부분 1인 기업이기 때문에 인사, 총무, 재무관리 등 웬만한 잡무 또한 직접 처리를 해야하는지라 더더욱 스트레스 지수가 높다. 2015년 영국 루이스 박사팀 연구결과에 따르면 스트레스 해소법의 1위는 독서, 2위는 음악감상이라고 하였는데, 주변 치의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환자를 보면서 동시에 독서를 할 수는 없는 상황이고, 결국 백그라운드로 깔아놓는 음악에서 마음의 위안을 찾는다고들 하는 걸보니 음악감상이 그나마 유용한 방법인 듯 하다.

 학부 때부터 음악을 즐겨, 점심시간동안 40분짜리 협주곡 한 곡을 듣고는 책 한권을 읽은 감성에 취하곤 하였는데, 요즘은 그 나마의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것 같아 진료실에 매일 틀어놓았던 음악을 바꿔보기로 하였다.

 오늘은 어떤 노래가 좋을까? 동해안의 스모그 하나 없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품은 마음을 담은 바리톤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라는 노래는 기본이고, 대관령 자락 자박자박 가을 단풍잎 밟히는 소리와 고개를 들면 단풍잎 사이로 약간은 불그스름한 빛깔을 띠며 반짝이는 10월의 햇살을 담은 듯한 아마데우스 현악 4중주단의 브람스 현악 6중주, 소금강 초입의 약간은 시린듯하지만 상쾌한 공기를 느끼며, 발을 내딛는듯한 느낌을 주던 피에르 푸르니에의 슈페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잔잔한 동해바다의 풍성함을 담은 듯한 단풍잎이 함께하던 동해안 등명락가사의 풍경을 담은 듯한 짐머만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2악장, 이 곡은 피아노와 관현악단의 악기가 서로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얘기에 눈이 반짝이던 사람들과의 순간이 가득한 플레트네프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 이제야 조금이나마 가을에 어울리는 곡이라는 생각이 들게되는, 아픈 마음을 부여잡고 달리던 대관령 단풍길의 순간이 가득한 길렐스, 요훔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그 때 그 때 가장 그 음악이 아름다웠던 순간과 감성 그리고 사람이 세월을 넘어 음악에 묻어나와 더욱 아름답다.

  세월과 추억이 담긴 곡들로 USB를 채워 진료실에 틀어놓으니, 오늘 진료시간은 왠지 순간순간 감성이 가득하며, 창밖을 무심코 쳐다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 때 그 때 그 곡을 듣던 시절의 풍경이 눈에 슬라이드 사진과 같이 스쳐지나가면서 사람을 기억에서 꺼내고, 그 때의 마음을 꺼내고, 그러다 못해 그 때의 내 자신을 꺼내어 보여준다. 힘들었던 시절의 마음과 쓰라리던 마음들도 이제는 추억으로 치유가 된다.

 결국 음악이라 함은 머리와 가슴 속의 감성을 자극하고, 옛 기억과 그 시절의 감성을 지금에 올려놓기에 마음을 치유한다고 하나보다.

 오늘 강원도로 향하는 고속도로와 국도 길을 타면, 강산에 단풍이 가득할테다. 비록 좁은 진료실 안에 있지만, 오늘은 이 음악이 가득한 감성으로 내 마음 치유하여, 환자들에게 더욱 밝은 미소와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마음 가득담아 진료에 임해야겠다. 그리고 음악들과 함께 펼쳐졌던 옛 기억들, 그 순간들, 그 사람들 고이접어 다시 방에 차곡차곡 쌓아두어야 겠다.

 그렇게 음악은 마음의 묵은 기억들을 깨끗하게 씻어 주었고, 답답한 마음은 조금이나마 치유되었다. 그리고, 아마도 다시 기억의 그 장소들에 가면, 조금은 마음이 아리지 않고, 따스히 보일 거라 생각한다. 음악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