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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피아노

Relay Essay 제2321번째

유치원 시절 피아노를 치던 친구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래서 피아노 배우고 싶다고 조르고 졸랐지만, 예체능을 전공하게 할 생각이 없었던 우리 엄마는 초등학교 입학 후 피아노 학원에 등록해 주셨다. 어렵사리 피아노와 처음 만나게 된 후, 따님이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고 피아노 학원 선생님께서 예의상 하신 말씀을 철썩 같이 믿으며 초등학생 기간 내내 피아노 학원을 개근하였다. 언제부터인지 자연스럽게 피아니스트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중학생이 되어서도 피아노를 배우려고 했으나 결국은 레슨은 포기하게 되었고, 그 후로도 피아노 레슨은 거의 다시 받지 못했다.

그렇지만 손에서 피아노를 장기간 놓았던 적은 거의 없었다. 이건 오랜 기간 해온 ‘반주’ 덕분이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을 따라 소규모 교회에 출석하게 되면서 반주를 시작하였다. 규모가 워낙 작았기 때문에 인력이 부족해 고사리 손이라도 빌려서 예배를 드린 것이다. 처음에는 온통 실수투성이였으나 이것도 꾸준히 몇 년을 하다 보니 나름 노하우도 생기고 반주에 자신감도 붙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주변 친척들 결혼식에서도 딩동거려보고, 학교에서도 반주할 기회가 있으면 쭈뼛쭈뼛 앞으로 나가 반주를 자원하곤 했다. 운이 좋게도 더 잘 치는 사람이 나서지 않아 다양한 곳에서 반주를 해 보았다. 대학교 때 밴드에서 키보드 세션을 맡았던 것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피아노와 함께 몇 십년을 지내다보니 이제는 제1의 취미가 피아노 연주가 되었다. 요즘엔 자취방에 전자피아노를 놓고 퇴근 후 한 번씩 피아노를 쳐본다. 실력은 초등학생 때 이상 나아지지는 않았다. 습득력은 어릴 때 빠르다더니, 정말로 성인이 되어서는 새로운 곡이 잘 숙달되지 않는다. 어릴 때 연습해 놓았던 곡으로 지금까지 우려먹고 있다.

인생의 쓴맛을 처음 느낀 것도 피아노 덕분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갔던 콩쿠르에서 운 좋게 입상하여 입상자를 대상으로 한 연말 연주회에 나가게 되었다. 입상 후 자만했었는지, 나보다 어린 피아노 영재가 어려운 곡을 치는 것을 보고 대뜸 그 곡을 연주회 때 쳐보겠노라고 피아노 선생님께 선언한 것이다. 얼핏 선생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으나 일단은 연습하기로 했다. 그런데 연습기간 내내 곡이 숙달되지 않았다. 오죽하면 연주회 전 주말에 선생님께서 콩쿠르에서 입상했던 곡을 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하셨지만 이 곡을 포기하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 그대로 밀고 나갔다. 결과는 참혹했다. 잔잔한 도입부가 지나고 속주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새까맣게 까먹어버린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십 여초 간 정적이 흘렀고, 생각나는 부분부터 절뚝거리며 치기 시작했다. 결국 어영부영 연주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와 절망의 눈물을 흘렸다. 선생님이 골라주신 드레스는 최고로 예뻤는데, 드레스 값도 못하고 연주회를 마치게 되었다. 대신 그 후로 다시 연습해서 다른 음악회에서는 제대로 연주하였다. 하지만 이 경험은 적어도 몇 년 동안은 잊지 못했던 것 같다.

피아노와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있어 피아노는 때론 안식처가 되거나 복잡한 상황에서 도망치는 도피처가 되기도 한다. 이따금 차오르는 감정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 이를 소화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 다행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피아노가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 같다.

임고은 부산대치과병원 보존과 전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