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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ing good better

시론

폭설과 한파가 잇따르는 동절기가 살림살이가 팍팍한 사람들에게 가장 춥고 배고픈 시기이고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겐 삶 자체가 고단하고 힘겹다. 매년 성탄절과 연말연시가 되면 붐비는 번화가엔 구세군의 빨간 냄비가 등장하고 광화문 광장에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진다. 신문과 방송에서도 연례행사처럼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접수받거나 사회단체에선 홀로 사는 노인이나 소년소녀가장들을 위해 연탄배달을 해주는 뜻 깊은 행사를 갖는다.

예전의 가난 구제는 지역사회와 마을 공동체의 책임이였고 대상의 문제와 상황을 알고 이웃들이 십시일반 담당하였다. 최근들어 기부 문화는 선택과 관심의 범위가 다양해지면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아프리카 어린이나 재해 난민, 장애인, 환경단체 등 기부자와 기부의 대상이 모르는 사이에서 진행되게 된다.

최근 국민의 기부 참여 열기는 주춤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13년까지 증가 추세였던 개인 기부금은 계속 감소하고 있고 특히 작년부터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고 한다. 그 원인의 하나로 ‘어금니 아빠’ 이영학씨가 희귀병에 걸린 딸 수술비 명목으로 기부 받은 돈 대부분을 호화생활 경비로 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에게 기부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다른 단체에 기부했던 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빠졌고 기부 관리의 투명성 문제로 기부할 마음 자체를 얼어 붙게 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기부를 꺼리는 주요 이유로 기부단체에 대한 불신을 꼽고 있다. 최근 1년 동안 기부 경험이 없다는 응답자의 큰 이유가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52.4%)였고 단체를 믿을수 없어서가 23.8%를 차지하였다. 기부 단체를 고를 때 주요 고려사항은 기부 금액의 ‘투명한 운영’을 꼽은 비율이 52.4%로 가장 높았지만 우리나라 기부 단체가 정보 공개를 잘 하고 있다는 평가는 27.5%에 불과하다.

A단체에서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 1마리의 훈련 비용으로 1억을 쓸 예정이고 B단체에서 개발도상국 트라코마 환자의 실명 위기를 치료하기 위한 비용으로 5만원이 드는 계획을 하고자 한다. 당신이라면 어떤 단체를 택할 것 인가? 두 단체 모두에게 기부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한 단체에만 기부한다면 실명 환자를 도우는 것이 기부금이 가장 큰 보탬이 되고 1명보다는 2000명을 구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결정은 내가 한 선한 기부가 좋은 곳에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알고 있을때만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본인이 어떤 단체로부터 기부 의뢰를 받았다면 그 단체가 기부를 받을 수 있는 단체인지 여부를 확인하려면 ‘1365 기부포탈’에, 적법하게 등록된 사회복지 시설인지는 ‘사회복지시설정보시스템’에, 세액공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홈텍스에 접속해야하기 때문에 우리가 알기 쉽게 접근하거나 정보를 알기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에는 약 100만 개 가까운 자선단체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기부금과 사용내역을 투명하게 평가하는 기관의 필요성에 따라 자선단체를 평가하는 ‘기브웰(GiveWell)’이라는 단체가 생겼고 이 기관의 평점을 통해 투명하고 효율적인 자선단체가 어떤 곳인지 판단하고 미국인들은 기부한다고 한다.


돈을 ‘잘 쓰기’로 유명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워렌 버핏이다. ‘잘 쓴다’는 것은 가치 있게 쓰는 걸 뜻하며 자신의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힌 버핏은 2006년부터 현재까지 약 275억 달러(약 30조원)를 기부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많은 돈을 기부하면서도 자신의 이름이 생색나지 않게 기부금 대부분을 교육·문화·예술 사업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맡겨 운영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는 2년 전 딸 맥스의 탄생을 기념해 전 재산(630억 달러)의 99%를 기부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이처럼 기업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를 발전시키는 큰 원동력이고 문명이 발전하려면 물질적 성장도 중요하지만 사회지도층의 이런 의식이 꼭 필요하고 앞서가는 이들이 모범을 보이고 실천을 해야 사회 전체의 교양과 의식 수준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제국부터 르네상스까지 이탈리아를 지탱한 힘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이고 지성은 그리스인보다, 체력은 게르만족보다 못하고 기술은 에트루리아인보다, 경제력은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졌지만 로마는 지도층의 솔선수범으로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고 2000년 로마가 가능했다고 얘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치과의사로 산다면 중류층이상의 삶을 살아가고 높은 공공의식과 시민의 교양을 갖춘 사회지도층이라고 생각 한다. 그러나 작년에 국민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의료인(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약사)의 신뢰도 조사에서는 치과의사가 가장 낮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올 겨울 치과 경영도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치과의사가 많이 나와 선하고 보람된 일(Doing good better)을 행하여 어려운 이웃들에게 각박한 사회가 아니라 좀 더 따뜻하고 희망찬 사회가 우리로 인해 조금이나마 변화되었으면 한다.

즐거운 크리스마스와 행복한 새해가 여러분과 함께 하길 바라면서 ---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황충주 교수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교정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