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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복’

시론

스리랑카를 가족들과 패키지여행 중이었다. 버스를 타고 좁은 왕복 2차선을 돌아 올라가는 산길에서 재미있는 광경을 보았다. 직접 만든 듯한  꽃다발을 든 까무잡잡한 소년 두 셋이, 느리게 산길을 오르는 우리 버스 옆을 나란히 달리며, 앳된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아, 꽃다발을 들고 ‘플라워! 플라워!’를 외치며 따라왔다.

어려운 형편의 나라 여행에서 종종 보는 광경이고, 일정에 맞춰가는 여행이라 그저 눈길만 주고 있는데, 아무래도 자동차를 계속 따라 뛰기는 어려운 지 소년들의 모습은 금방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창문 밖으로 분명 아까 그 소년들이 또 우리 옆을 달리며 ‘플라워!’를 외친다. 늦둥이 딸내미가 저 오빠들이 어떻게 버스를 따라왔냐고 묻는데, 옆자리의 다른 일행들도 궁금해하는 듯하자, 가이드가 마이크를 켠다. “산 위에 도착하기 전에 저 소년들을 여러 번 보시게 됩니다. 버스는 산길을 돌아오르는 데, 쟤들은 산을 똑바로 뛰어오르며, 우리 버스를 따라잡는거죠. 꽃을 사주고 싶으시면 산꼭대기에서 사주시면 됩니다. 십 여분 정도 후에 도착합니다.”

필자도 어려서 안암동 개운사 뒷산을 골목친구들과 날다람쥐처럼 누비고 다닌 기억이 있지만, 그렇게 가파른 산을 계속 뛰어오른 적은 없다. 유심히 소년들을 보고 있자니, 벌써 이 일에 이력이 나 있는 것 같았다. 어느 굽이까지는 버스와 나란히 달려주어야 하는 지, 어디서 수직으로 꺾어 위로 뛰어야 다음 구간에서 우리 버스를 만나, 웃는 얼굴의 ‘플라워!’ 세리머니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지… 소년들은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완벽히 집중하고 있었다. 여러 굽이를 지나며 그들이 만들어내는 모습에 필자의 가슴속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힘든 산길을 마다않고 뛰어오르는 수고와 노력에 더하여, 한 가지 더 생각이 머물렀던 것은, 그들이 행하고 있는 반복적인 행동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것은 한 굽이의 성취에 머물지 않고, 다음 굽이의 기회를 향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또 다시 바로 위를 향해 뛰어오르는 단순한 반복의 의지와 열정의 고귀함과 순수함에 대한 것이었다. 여러 굽이 끝에 버스는 산위에 다다르고, 일행들은 모자와 가방 등을 챙겨 내리는데, 버스 옆에 한 소년이 다가와 꽃다발을 내민다. 얼굴은 땀범벅인데, 웃음은 여전하다. 가이드가 이따가 이곳 구경마치고 버스에 승차할 때 사셔도 된다며, 소년을 가로막는데도 소년은 그저 생글생글 웃는데 그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마음속으로‘안 사고는 못 배길거에요… 헤헤헤!’하며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나라든 현대의 정치는 인기와 세몰이의 이벤트인 선거로 승부를 가르고 권력을 위임한다. 우리 치과의사들이 5000만 명이 넘는 국민들의 구강보건을 담당하고 있어도, 정치인들에게 치과의사 수는  그저 3만여 명이다. 정치인들은 5000만 표를 버리고 3만 표를 배려하는 행정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3만 직능인의 숙원인 구강정책과가 부활한 이면에는 부단히 반복된 협회와 관계자 분들의 노력이 있었다. 버스가 올 길목에 매번 수고로이 뛰어올라가 지난 번 해당과를 폐지한 사람들을 향해 웃는 얼굴로 ‘플라워!’를 수없이 반복 제안하여, 5000만을 위한 공식창구를 다시 열었다. 그까짓 과급의 편제가 하나 있어 뭐가 다를까하지만, 그렇지 않다. 공식창구가 없다면 공식소통도 없다. 공식소통이 없으면 공식약속도 없고 당연히 공식 사업논의와 예산, 집행도 없다. 어려운 일 일수록 지루한 반복이 필요하다. 가시적인 결과가 잘 보이지 않는 일 일수록 반복의 의지와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지원해야 한다. 반드시 해야 할 일들은 집행부 회기를 넘어 그 다음 회기에서도 이어받아 하나하나 성실히 이루어내주는 협회는 회원들의 참여와 지지를 당연히 얻어낼 것이다.

그 여행 중의 산길에서 더 진하게 기억에 남았던 것은, 두어 살 어려 보여 산길에서도  뒤쳐지던 두 소년이, 주차장 옆 울타리를 넘어 달려와 제일 먼저 도착한 첫 소년과 함께 꽃다발을 내밀며 웃던 얼굴이었다. 그 소년들의 力走는 멈추지 않을 듯했다. 우리 치과계의 그것도 멈추지 않기를 기대하며 응원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용호 서울 중구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