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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마음을 위한 처방

스펙트럼

개원한 지 만 10년이 지났다. 그 동안 개원의로 살면서 많은 어려움에 시달렸던 것 같다. 어려운 임상이 주는 고뇌와 스트레스는 유익한 성장통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오해와 불신으로 닫혀있는 환자의 마음을 여느라 내 마음이 상처 입은 순간에도 고도의 감정 노동을 쉴 수가 없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은 마음 속을 온통 미움으로 어지럽히는 독극물이었다. 환자가 줄어 경영의 지속을 염려해야만 할 때의 초조함이 주는 괴로움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개원 3년째, 내 마음에 어려움이 찾아왔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심리상담을 하던 중 내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얻어 활용하게 되었다.

감정을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는 세 가지 안전장치를 준비할 수 있다. 감정의 피난처, 감정의 저수지, 감정의 환풍기가 그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적정수준 이상으로 가까이 다가서면 어떻게든 감정의 손상이 일어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가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사랑하고 친한 사이라도 부대끼다 보면 상처를 주고 받게 된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방해 받지 않을 수 있는 위로의 공간, 감정의 피난처가 필요하다.

결혼한 여자에게는 친정이 좋은 피난처가 될 수 있고, 남자에게는 거실의 작은 소파가 나를 위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집을 나와 걷는 한 시간이 각박한 세상에서 나를 분리하는 감정의 피난처가 되기도 한다. 상처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변함없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자연을 바라보는 것도 나를 지키는 좋은 방법이다.

감정의 저수지는 우리가 미처 감정의 피난처로 피신할 수 없을 때 마음의 어려움을 담아두는 그릇 역할을 한다. 분노의 감정이 순식간에 불어나도 홍수가 나지 않을 넉넉한 저수지가 있다면 큰 일을 당해도 일시적으로 담아두었다가 천천히 충격에 의한 스트레스를 유리하여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육체적으로 근육을 적당히 만들고 심폐기능을 강화해 두는 것은 감정의 저수지를 만드는 좋은 방법이다. 자세근, 대퇴근 등 큰 근육은 스트레스를 담아두는 물리적인 저장고 역할을 한다. 매일 한 시간씩 걸으며 간헐적으로 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근육과 심폐기능을 얻을 수 있다.

심리적으로도 저수지를 키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신영 작가의 <쿠션>이라는 책을 보면 외부에서 어떤 자극이 오더라도 마음의 자유를 지키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책을 통해 저자는 외부의 자극을 조절할 수는 없지만 외부자극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지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 빅터 프랭클은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라고 말한다. 감정적으로 아무리 괴로운 상황이라 할 지라도 어떻게 행동할 지는 나의 선택에 달렸다는 말이다.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낄 때 곧 유리되어 나갈 것을 믿고 그 감정을 잠시 저수지에 담아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인생의 큰 고난을 겪은 사람들을 보면 그 일을 극복한 후에 거대한 감정의 저수지를 얻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인생의 내홍에 쉽게 흔들리지 않으며 침착하게 해결 방법을 찾아간다.

20대의 처녀들보다, 시부모가 주는 마음의 어려움을 겪어보고 남편과 부대끼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마음 고생을 해본 어머님들이 감정 조절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것도 넉넉한 감정의 저수지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순간에도, 어떤 자극 속에서도 긍정적인 out put을 내려고 노력함이 옳다. 부정적인 out put은 상대방의 감정을 더 자극하고 일을 꼬아놓기 쉽다. 문제의 원인이 나에게 있지 않더라도 문제 해결의 열쇠는 내가 쥐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감정을 보호하기 위한 마지막 장치는 감정의 환풍기이다. 아무리 저수지가 커도 계속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다 담아둘 수는 없다. 무조건 담아두려다가는 먹먹한 가슴으로 살다가 우울증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감정의 환풍기가 필요하다. 세상이 주는 상처에 늘 정공법으로 맞설 필요는 없다. 세상이 쉽게 변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 한 발 물러서서 환기를 시켜보는 것은 어떨까.

같은 고민, 같은 취미를 공유한 사람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활동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육아로 인해 지친 마음을 서로 달래줄 어머님의 모임도 좋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배드민턴 동호회도 좋다. 운동이 맞지 않는다면 꽃꽂이나 바둑, 비디오게임 등 일 외에 몰두할 수 있는 정적인 취미를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행복한 사람의 주변에는 행복한 사람이 많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행복한 사람은 시간이 걸릴 뿐 결국 행복한 사람들로 둘러싸이게 된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보아서도 그렇다. 나에게 자유를 주고 내 영혼이 쉬며 평안을 얻을 시간과 공간을 마련하는 것으로 내 주변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로부터 시작된 마음의 치유와 감정의 긍정적인 변화가 가정과 직장 등 내가 속한 사회 공동체들을 바꿔놓을 수 있다면 날이 갈수록 살림살이가 어려워진다는 치과계도 마냥 비관하고 있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곽재혁 좋은이웃치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