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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의료윤리가 필요한가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1)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살면서 의료윤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습니다. 학생 때 수업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개업 후 삶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의료윤리 지침에 따라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물론, 그런 지침을 따르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최근에 갑자기 의료윤리니 뭐니 해서 말이 많아지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의무교육까지 받아야 한다는데, 도대체 의료윤리를 따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락사나 임신중절 같은 주제는 논의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만, 의료윤리가 치과 의료와 무슨 상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익명)

저도 오랫동안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2014년에 교육자료로 FDI 『치과 윤리 매뉴얼』을 번역할 때도 그랬던 것 같아요. 치과의사 단체가 집단으로 어떤 사안에 관해 윤리적 의견을 표명할 순 있겠죠. 하지만 치과 의료인 개인과 윤리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종교적 이유나 개인적 이유로 선하게 살고 계신 선생님들께 존경을 바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은 했어요. 하지만, 그런 삶을 개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매일 진료를 충실히 해내고, 그 진료를 갈고 닦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면 제 의무는 다한 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활이 제가 하는 진료를 보장해줄 테니까요. 여기에 의료윤리가 들어올 자리는 없다고 믿었지요.

이후 알게 된 것은 이런 생각 또한 윤리적인 견해라는 것입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말한 세속적 금욕주의 정도일까요. 그는 철저한 노동과 금욕을 바탕으로 재산을 늘리는 것이 신을 높이는 일이라는 칼뱅주의적 가치가 현대 자본주의를 이끌어 왔다고 생각했지요. 이후 신은 빠졌지만, 여전히 그 정신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치과 진료를 열심히 하는 것이 목적이자 가치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렇다면, 이런 충실한 진료와 성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일입니다. 저런 생각이 모두에게 용인되고 그에 합당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면 괜찮겠지요.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런 삶이 어떤 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요. 20세기 초엽에 글을 쓴 베버는 나름 긍정적인 시선을 보냈습니다만, 우리 시대에 자본 증식만을 추구하는 것은 이제 비난의 대상입니다. 게다가, 만약 재산을 늘릴 요량이면 치과의사는 좋은 직업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질진 모르지만,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해 사업에 뛰어드는 게 더 빠르고 확실하며 장기적으로도 전망이 있는 방법이겠죠. 아니면 부동산이나 주식 등에 투자하는 게 위험은 따를지라도 분명할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부분에 신경 쓸 필요는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치과의사 개인과 집단 전체에 있어 이것이 최우선 가치가 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지 않을까요.

예컨대 치과의사를 향한 사회의 시선 중 어떤 것은 비난과 질시로 특징지을 수 있을 텐데, 그 뒤에는 치과의사가 돈만 밝히는 집단이라는 그릇된 통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완전히 없앨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유 없는 비난을 던지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이런 시각이 편만하지 않도록, 더 나아가 가능한 한 제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겁니다. 치과의사 개인과 집단 양쪽 모두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사회적 인정이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노력이 정당한 대접을 받아야 할 겁니다. 그런데, 위에서 잠깐 언급한 근면과 성실이라는 윤리적 태도가 이런 문제에 답을 줄 수 있을까요. 어렵겠지요. 다른 접근이, 다른 태도가 필요합니다.

작년 번역된 철학자, 인류학자 마르셀 에나프의 책『진리의 가격: 증여와 계약의 계보학, 진리와 돈의 인류학』은 돈을 받고 지식을 판 소피스트들을 비난한 소크라테스로부터 출발해, “진리란 사고팔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파고듭니다. 에나프가 전개한 인류학적 분석에 따르면 재화는 세 가지 형태로 이동합니다. 교환, 도덕적 증여, 의례적 증여가 그것인데요. 에나프는 엄밀한 분석을 통해 진리를 돈으로 교환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상호 인정에 기초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밝힙니다. 논지를 간단히 추리면, 억만금을 준다 해도 상대방이 자신을 인정하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인정은 증여에서, 자신에게 없는 귀중한 것을 받는 경험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이는 도덕적 증여, 즉 기부와 다릅니다. 이미 치과의사는 의료인으로서 환자에게 없는 귀중한 것, 즉 구강 건강의 회복을 주고 있습니다. 사회, 환자와 맺는 관계가 단순한 교환 관계가 아닌 의례적 관계로 재정립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제가 남았습니다.

환자-의사 관계라고 하면 의사가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가부장주의나 환자가 소비자로서 모든 선택권을 갖는 소비자주의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 두 모형은 여전하지요. 하지만 둘 다 치과의사에게 인정을 가져오지는 못할 겁니다. 전자는 구습으로, “적폐”로 비난을 받고 있으며 후자는 의료환경을 교란하고 그나마 있던 의례적 차원을 화폐 교환으로 환원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 할 때입니다. 환자와도, 사회와도. 이는 의료윤리적 탐구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의료윤리가 필요한 이유 하나는 발견한 것 같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