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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황금문 앞에서

기고

베스 데이(Beth Day, 1855)라는 작가가 쓴 시 ‘세 황금문(Three gates of gold)’ 에서는 우리가 말할 때 세 개의 문을 통과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첫 번째 문은 “그것은 참말인가?”, 두 번째 문은 “그것은 필요한 말인가?”, 그리고 가장 좁은 문인 세 번째 문은 “그것은 친절한 말인가?”이다. 말하기의 신중함을 알려주는 글로 늘 마음에 새긴다.

의료진이 행하는 진료 또한 베스 데이의 ‘세 황금문’에서와 같이 동일한 원칙을 적용해 볼 수 있겠다. “그것은 참진료인가?”, “그것은 필요한 진료인가?”, 그리고 “그것은 친절한 진료인가?”처럼 ‘말’ 대신 ‘진료’라는 단어를 넣어보니 각각의 질문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하려면 먼저 ‘우리가 하는 진료가 그 본질에 부합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여야 한다.
  
의학과 치의학 각 전문 분야에서 ‘본질적인 진료에 충실하다’는 것은 당연한 명제로 받아들여지지만 사회의 복잡한 요소가 작용하는 현실에서는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3차 의료기관인 대학병원에서도 시장의 수익 논리와 전문 분야별 이해관계로 인하여 진료의 본질에 충실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보험 진료를 주로 담당하는 분야가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경우도 있고, 중증 질환이나 선천성 기형 등을 앓고 있는 아이들의 치과 진료가 위험성과 수익률 등에 의해 우선순위가 미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이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하는가? 본질을 벗어나면 그 분야는 존재하지 않는다. 

간혹 근거 중심의 진료보다는 이를 통해 다른 전신 질환을 개선하는데 중점을 두는 사례들도 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으나 이는 본말이 전도된 상황이나 다름 없다. 때로는 경쟁이 심하여 새로운 틈새시장이라 불리는 진료를 지나치게 강조하며 전문 분야 진료를 도외시하는 것도 진료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는 진료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진료와 함께 대학병원의 본질에는 ‘가르치는 일’, 즉 ‘교육’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진료의 효율성만을 고려하여 교육 기능을 부여하지 않거나 상실된 기관은 그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다. 어린 생명이 자라나지 않는 가정이나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지 않는 대학병원은 존재할 수 있으나 생명력이 없다.

세 황금문을 지나기 위해 우리는 가정에서나 의료 현장에서 “본질에 충실하게 살아가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영호
아주대 치과병원장, 임상치의학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