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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상짓는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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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해방입니다. 쳇바퀴 돌던 국시실, 유구무언 원내생의 삶, 모든 집합도 안녕입니다. 내가 정말로 치과의사가 되었다니, 어깨가 으쓱합니다. 친구들이 불러주는 ‘의사 양반’ 소리가 멋쩍지만 영 싫지만은 않습니다.

들뜬 마음으로 전공의 과정에 지원했습니다. 노숙인 상담원으로 지내온 궤적을 따라 예방치과의 진로를 고려하다 보니, 연고가 전혀 없는 강릉에서 걸음마를 떼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일상이 시작됩니다.

새집을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 처음 걷는 길을 따라 마트에 가고, 먹어본 적 없는 식당에서 혼밥을 합니다. 매일같이 낯선 하루가 펼쳐집니다. 타교 출신으로 많은 배려를 받고 있지만, 전공의 업무들도 막연하고 생소한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벅차올랐던 가슴은 얼마 지나지 않아 텅 비어가고 편하게 대화 나눌 친구들이 그리워집니다. 통장을 잠시 스쳐나간 전공의 월급 명세서를 보며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울상이 됩니다.

순탄치 않은 길을 돌아 여기까지 왔고, 사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줄곧 들었습니다. 그 과정을 회상할수록 치과의사가 되었다는 감격에 더욱 고취됩니다. 제 스스로가 대견하고, 또 장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다 문득, 과연 그리 여길만한 것인지 돌아봅니다.

‘사서 고생’이라는 말뜻을 생각해 봅니다. 무언가를 대가로 고생을 산다는 것- 쉽게는 돈이나 시간, 나아가서는 친지의 격려로 얻은 용기를 대가로 고생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제 보니 어쩌면 사서 고생할 수 있다는 자체가 사치이며, 특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목에 꼿꼿이 힘을 주고 제가 누려온 사치와 특혜를 자랑하는 동안, 스쳐 지나간 한 사람이 떠오릅니다. 어느 자폐성 장애인의 어머니인 그녀는 매일 아침 거구의 아들을 씻기고 먹인 후, 질질 끌다시피 하여 복지관에 데려다 놓습니다. 숨 돌릴 틈 없이 일터로 향한 그녀는 온종일 서서 포장을 하고 조립을 합니다. 퇴근 후 엉망이 되어버린 집안일을 해치우면 쓰러져 잠드는 일상이 반복됩니다.

이가 흔들린다는 그녀의 말에, 치과는 가 보았냐고 물었습니다. “시간이 있어야 가지…” 말을 흐리며 씨익 웃자 깨진 앞니가 드러납니다. 치과를 소개해 주겠다고 해도,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치료받는 시간 동안 아들을 대신 봐주겠다는 이야기가 속에서만 맴돌 뿐, 나오지는 않습니다.

노숙인, 장애인을 비롯한 저소득계층 등 우리 사회가 약자로 규정하고 있는 이들과 그 가족에 대해, 치과적 접근이 제한된 원인을 그저 경제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대가로 지불할 수 없는 것은 단순히 돈뿐만이 아닙니다. 아픈 자녀를 대신 돌봐줄 사람, 일자리의 안정성 등 그들을 가로막는 현실적인 요소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요소들의 종류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 비중은 어떠한지, 그 요소를 제거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일은, 너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그간 우리의 편의에 따라 단순히 ‘급여 1종’,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 환자’ 등으로 분류되어 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잠시나마 울상이 되었던, 제 현실로 돌아옵니다. 면허번호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주제에 함부로 유추하는 것조차 주저된지라, 우선 그저 누구를 위해 울어야 하는지만이라도 명확히 하고자 합니다. 특혜받은 일상을 감사하되, 그렇지 않은 이들의 일상에 울상지으며 이 기간을 보내기로 다짐합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승현 강릉원주대 예방치의학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