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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폐소생술에 대해 치과의사는 어떤 입장을 보여야 할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3)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보건의료인은 유사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태를 보면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 같고, 더구나 치과의사가 심폐소생술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못 미더워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심폐소생술, 의무일까요? 치과의사로서 심폐소생술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익명.

선생님께서 궁금해하신 부분은 치과의사가 심폐소생술을 해야 하는지 여부는 아닐 것 같습니다.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해야지요. 이런 상황을 피해 가시는 분을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요. 최근에는 의료기관이나 교육기관에서 소속 의료인과 학생에게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으며, 따라서 치과의사와 치과대학생 모두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의료인이라면 당연히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고요. 문제가 되는 것은 심폐소생술 시행 여부가 아니라, 심폐소생술을 둘러싸고 있는 갈등이겠지요. 응급실에서 심폐소생술을 해서 살려놓았더니 고소를 당했다더라, 길에서 쓰러진 사람을 도왔더니 오히려 이상한 일에 휩싸였다더라 하는.

2018년에 벌어진 사건이 응급처치와 심폐소생술 관련 의료인의 염려를 더 키운 것 같습니다. 들으셨겠지만 한의원에서 봉침시술을 받던 중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뇌사 상태에 빠졌고 결국 사망한 여성의 유족이, 중간에 에피네프린을 투여하고 심폐소생술을 한 가정의학과 의사를 한의사와 함께 고소했지요. 사망 사고에 대해선 지면을 통해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만, 응급처치에 나섰던 의사가 고소당한 이 상황에서 도와준 사람이 누명을 쓰지 않도록 하는 소위 ‘선한 사마리아 법’에 관해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 선생님께서 주셨던 질문은 돕고자 한 누군가가 오히려 문제에 빠지는 위와 같은 상황에 대한 고민 또는 성토로 이어질 테니까요.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란 두 가지 내용으로 구성됩니다. 하나, 응급 상황에서 누군가를 돕다가 의도치 않은 불의의 상황에 부닥쳐도 정상참작 또는 면책됩니다. 둘, 자신이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위급한 상황에 부닥친 다른 사람을 돕지 않는 경우 처벌을 합니다. 후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지 않으므로 일단 전자만 살펴볼까요. 예를 들어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갈비뼈가 부러지는 상황이 종종 있는데 이 경우에 대해 전자가 적용되는 것이죠. 많은 분이 한국은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법은 있습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의2는 응급의료종사자가 아닌 사람이 한 응급처치에 대해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死傷)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민사책임과 상해(傷害)에 대한 형사책임은 지지 않고, 사망에 대한 책임은 감면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법이 있는데 저 ‘봉침사건’은 왜 벌어졌을까요?

문제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와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 조항에 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과실이 중대하냐 중대하지 않으냐, 고의냐 아니냐를 깔끔하게 나누기는 어렵지요. 위 가정의학과 의사 경우, 적정 시간 내에 응급처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도우러 간 의사 또한 환자를 돌봄에 있어 의무를 진다는 소위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가정의학과 의사가 위반했고, 따라서 중대한 과실을 범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게다가 환자가 사망했기에 형사책임이 있다고 판결이 나게 되면 가정의학과 의사는 책임을 감면받을 뿐이니, 어떻게든 책임을 지게 되는 상황인 것이죠. 응급처치를 한 사람에게 불리할 수 있도록 법이 정해져 있기에, 이런 식으로 문제가 제기되면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것입니다. 봉침 사건 이후 의사를 대상으로 한 어떤 설문에 의하면, 65%에 가까운 응답자가 응급처치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하니 여간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최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되었습니다. 개정법률안은 응급의료종사자가 아닌 사람의 응급의료에 대해 형사책임 면제 범위를 대상자가 사망한 경우까지 확대하고, 응급의료행위가 불가피했고 중대한 과실이 없다면 과실치사상죄를 필요적으로 감면하도록 했습니다. 아직 통과되지는 않았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법이 개선되는 일이므로 환영할 일입니다.

여기에서 하나 생각해봐야 할 것은 선한 사마리아인 법의 존재 이유겠지요. 성경의 일화에서 따온 이름 때문에 종교적 근거에서 나온 것은 아닌가 하실지도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어떤 사고에 피해자가 휘말리는 경우, 이 사람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사람에게는 두 가지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윤리적 정당성이고 다른 하나가 법적 보호입니다. 최소한 이 사람이 남을 도우면서 오히려 손해를 입거나 누명을 쓰는 일이 없도록 법이 보호해야 할 테고, 선한 사마리아인 법은 여기에서 작동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이 누군가를 돕도록 이끄는 것은 법과는 별개의 층위겠지요. 물론 이를 선한 사마리아인 법의 두 번째 내용을 통해 남을 돕도록 강제할 수도 있지만, 과연 이런 일이 강제할 일인지는 한 번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사회에서 누군가를 돕는 일이 항상 행복한 결말로만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 이를 강제한다는 것은 과도한 일이 아닐까요. 나중에는 이런 법을 정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선결 조건이 있을 겁니다. 사람들이 남의 불행을 볼 때 모두 도울 거라고 생각해야 할 테고, 여기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서로 양해하고 더 큰 사회적 이익을 위해 불편을 감수한다는 합의가 있어야겠지요. 그렇다면, 이 문제는 윤리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윤리일까요? 의료윤리는 이런 일에 대해 “구조의 원칙(The Rule of Rescue)”을 말합니다. 맹자의 측은지심과 통하는 이 원칙은 ‘위기에 처한 생명을 보았을 때 가능하다면 구하려는 의무감’을 의미합니다. 연못에 빠져 생명이 위험한 아이를 보았고 연못은 그리 깊지 않아 옷이 좀 젖는 일만 감수하면 그 아이를 구할 수 있는 상황일 때, 우리는 그 아이를 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구조의 원칙이며,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원칙도 현실 사례로 들어오면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낳습니다. 돕는 사람은 손해를 어디까지 감수해야 하는 걸까요. 생명이 위급한 사람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따라서 따를 만한, 심지어 따라야 할 원칙이 있음은 사실 말해주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회색으로 펼쳐져 있는 미결정의 공간을 채워나갈 의무가 추가로 주어집니다. 의료인이기 때문에, 생명을 살리고 돕는 것을 직업적 목표로 삼은 사람이기에.

심폐소생술을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에겐 할 일이 많습니다. 누군가 심정지로 쓰러진 경우 도와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고,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와 관련한 내용은 결정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법은 이런 상황에서 도움의 최소한을 결정하는 선입니다. 그 바깥은 윤리적인 논의를, 관련한 사회문화적 현상에 대한 비평을, 이 모든 결정을 도움이 필요할 누군가에게 진정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끄는 노력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치과의사인 우리,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문제에서 의견을 밝히고 정책과 법이 진일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이 아마, 주셨던 질문의 핵심이자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