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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날, 제주, 장애인치과 그리고 선배

Relay Essay 제2346번째


지난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대한장애인치과학회를 다녀왔다. 사실 소아치과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봉사활동을 열심히 다니지도 않았던 내가 장애인치과를 하겠다고 생각한지 얼마쯤 되었을까?

아마 이 이야기는 6~7년 전으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쯤부터 2012년까지 서울근교를 벗어나지 않고 계속 지내다 이제 좀 이곳이 나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또 제주라는 또 다시 낯선 곳으로 떠나게 되었다.

내심 서울에 자리가 있어서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정말 많이 했었지만, 사실 세상만사 마음대로 되는 일이 그리 많지는 않은 걸 알기도 하고, 마침 선배가 여러 번 권하며 불러주는 학교에 자리가 있어서 몇 번 고민을 하다가 결국 소풍 같은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사실 좁다면 좁은 넓다면 넓은 제주에 친구 하나, 선배 하나 단 둘만 아는 사람이 있는 낯선 제주라 처음엔 외롭고 어렵기도 했다. 예전에는 이렇게 왔다가 2년 안에 육지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태반이라고 들었는데 그래도 그 기간은 무사히 잘 넘겨서 소풍이라고 하기엔 조금 길었던 6년을 보냈다. 제주라는 곳이 지역적인 특색을 많이 가진 곳이라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여행지이긴 하지만, 막상 지내보면 육지와 다른 여러 가지 점들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돌아보면 그 와중에 나를 식구처럼 챙겨주던 선배가 있어서 별 문제 없이 적응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선배는 작은 학교이긴 하지만 의대 내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했었다. 학교 기숙사 관장을 했고, 의대생들이 흥미로워 할 만한 선택수업을 개설해서 강의를 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학교에서의 많은 활동 외에도 장애인구강진료센터 사업을 이미 한번 지원했었는데, 도내 다른 병원에서 사업에 선정되었다가 결국 그 병원은 사업을 포기했다고 했다. 그리하여 제주지역의 장애인의료와 복지는 한걸음 후퇴하고 말았다.

2013~4년 즈음 보건복지부에서 다시 사업 지역을 선정한다고 공지가 나왔다고 하면서 사업을 같이 한번 해보고자 했다. 그때 마침 연대 구강악안면외과에 있던 친구가 모야모야병을 앓고 있는 제주 중증장애환자를 내게 보내면서 나도 함께 해야겠다고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그 환자의 보호자는 어디 다른 병원을 갈수도 없고, 다시 연대를 가려면 값비싼 프레스티지석을 타야하고, 공항에 내리면 사설 구급차를 불러서 연대까지 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있으면 여기서 진료를 꼭 해달라고 여러 번 얘기를 했다. 여담이지만, 이 보호자분이 장애인 구강진료 의료진 및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몇 번 했었는데, 그 때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마도 선배는 나보다 먼저 더 많이 이런 상황에 부딪히고 고민하지 않았을까 싶다. 막상 이런 환자와 보호자를 보게 되면서 여기 제주에도 장애인들이 드나들 수 있는 치과가 꼭 필요하겠구나 하며, 선배랑 같이 사업을 해보자고 했다.

2015년 4월 드디어 보건복지부에서 권역 장애인 구강진료센터로 선정되었다. 그때부터 처음 해보는 장애인치과진료를 배우고 잘 하기 위해 선배와 나는 전국을 돌아다녔다. 서울시 장애인치과병원, 이긍호 전 교수님이 계시는 더스마일치과의원과 전국의 권역 장애인구강진료센터 곳곳을 다 돌았는데, 장애인진료를 하시는 많은 선배님, 선생님들이 친절하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시려고 했던 게 기억에 남았다.
그렇게 2년을 준비해서 2017년 제주권역 장애인구강진료센터를 개소했고, 제대로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렇게 장애인치과에 발을 내딛게 되었다. 2018년도에는 너무도 훌륭한 후배 조 선생님, 우 선생님이 함께 해줘서 계획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도 미안하게 올 봄에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히도 내 파트에는 뛰어난 친구가 오게 돼서 더 잘 해 줄거라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덜한 거 같기도 하다.

제주에서 6년을 함께 했던 선배, 그리고 곳곳에서 손을 물려가며, 침과 피를 맞아가며, 허리와 어깨를 힘들게 하며, 환자들을 돌보는 이들의 선한 의지가 세상을 조금씩이라도 밝고 희망차게 바꾸어 나가는 게 아닐까 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나 같이 평범한 사람도 함께 하게 만들고, 어떤 이들은 비행기를 타고 서울 가지 않아도 되고, 이런저런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던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예전보다 밝게 웃고, 맛있게 먹고,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지난 6년간 나를 많이 가르쳐주었던 선배,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여러 선생님들 덕분에 아마도 마취를 도와주시는 마취과 선생님들이 계시는 병원에 근무하는 동안에는 내 진료분야에 장애인치과가 계속 한편을 차지하게 될 것 같다. 오늘도 김 선배처럼 선한 의지로 진료실과 곳곳에서 고군분투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모든 치과의사 선생님들의 건투를 빌며, 모두의 앞날에 은총과 평화가 함께 하기를!

감세훈 교수
은평 성모병원 치과보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