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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마트에서 한국 치과를 생각하다

Relay Essay 제2348번째

나는 여행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어 아직 많은 나라를 가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대한 가능하다면 많은 곳에 가서 보고 느끼고 싶다. 내가 가진 꿈 중에 하나가 세계일주이기도 하다. 나처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각기 자신들만의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또는 철학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이들은 한국에서 볼 수 없는 광활한 자연환경을, 또 어떤이들은 역사적인 기념물과 오래된 건축물을, 혹은 아름다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낭만적인 장소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반면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사람이다. 물론 함께 여행하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그 나라의 사람들이다. 문화, 국민성, 언어, 심지어는 음식에도 그 나라의 사람들의 흔적이 묻어있다. 개개인의 특성이야 한국인끼리도 굉장히 다르지만, 그래도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끼리만 공유하는 어떤 특정한 정서나 가치관을 항상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친구’가 되자는 것은 아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그 상당부분은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러한 다름을 관찰하는 데에서 큰 재미를 느낀다. 여행을 다니면 다녀볼수록 더 많은 다름을 발견하고, 이것을 우리나라 혹은 여행해본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이야기해왔던 이러한 여행의 묘미를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장소는 바로 대형마트이다. 마트는 어느나라든 다 있는 것인데 무엇이 특별하냐고 할 수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는 사실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생활하며 필요한 생필품과 식재료는 전부 마트에서 구매한다. 물건의 종류를 보고 이 나라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고 먹는 것들을 알 수 있고, 가격을 보고 소득 수준과 물가도 짐작해볼 수 있다. 포장과 용량은 일반적인 가정의 소비패턴을 알려주는 힌트가 될 수 있다. 한국에 처음으로 미국식 창고형 슈퍼마켓이 들어왔을 때 적지 않은 사람이 놀란 것을 생각해보자. 사람 사는게 다 비슷비슷하다지만 그 조금에도 문화의 차이가 숨어있는 것이다.

몇 년 전, 아직 내가 치대생이기 이전에 미국에 여행을 가서 신기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약 한달정도 체류하며 미국의 동부와 서부 모두를 여행하였는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넘어가지 않듯 나 역시 미국의 슈퍼마켓 구경을 빼 놓을 수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미국의 창고형 포장과 진열방식은 이미 우리나라에 많이 소개가 되어있기 때문에 크게 놀랍지 않았다. 해외에 자주 다녀본 분이라면 알겠지만, 식료품 가격은 굉장히 싸고(사실 한국이 지나치게 비싸긴 하지만) 공산품 가격도 저렴한 편이었지만 사람의 손이 조금이라도 거친 제품이라면 조금 비싼 것도 눈치챌 수 있었다. 아마 인건비가 한국에 비해 비싼 탓일 것이다. 자동차를 사랑하는 국민들답게 차량용 제품이 크게 전시되어 있었고, 한국에 비해 애견, 애묘 문화가 크게 발달한 탓에 관련 제품들도 물건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리고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된 바로 구강위생용품 파트였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미국은 구강위생용품의 천국이었다.


한국 마트에도 구강위생용품이 진열되어 있지만 칫솔, 치약과 구강청결제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것도 종류가 다양하지 않으며 일반인이 봐서는 그 특성을 구분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최근들어 광고 등으로 인해 구강위생용품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치실이나 혀클리너 등이 자주 보이고 있지만 그것도 제한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정말 시야를 꽉 채우는 다양하고 많은 치과용품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칫솔과 치약의 종류도 비교할 수 없이 다양했지만 생전 처음보는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다. 구강마취액, 틀니가 헐거울때 안에 바르는 크림 또는 파우더 타입의 약품, 치아가 시릴때 바르는 마취제 성분의 진정제, 이갈이 방지용품, 수복물이 빠졌을때 채우는 용도의 접착제, 틀니수리용 키트 등 이런 것을 비전문가가 사용해도 괜찮을까 싶은 정도로 다양한 용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인들이 한국사람에 비해 구강위생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물품들을 시중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을까? 아니면 치과관련 지식이 훨씬 풍부한 것일까?

미국은 한국과 달리 보험적용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치과 비용이 매우 비싸다. 그렇다고 웬만한 대도시가 아니면 집 근처에 치과병원이 있어 쉽게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반면 거대한 다국적 제약회사가 존재하고, 자본주의가 지배한 나라답게 어디에도 광고로 도배되지 않은 곳이 없다. 비싼 치과치료를 자주 받지 못하는 일반 시민들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대체용품으로 눈을 돌릴 수 밖에 없고, 어쩌다 마트에서 이렇게 광고로 접한 약품을 보게되면 전문적인 지식은 부족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구매하여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당장은 효과적일 수 있겠지만 치과의사에게 정확한 진단과 치료계획을 받지 않고 사용하는 이런 제품들이 나중에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더 말하지 않아도 명확한 사실일 것이다. 미국은 구강위생용품의 천국이 아니라 부족한 치과 접근성으로 인한 치과용품의 정글이, 사회적으로 소외된 환자들에게는 지옥이 되어버린 것이다.

당시에는 그저 놀랍기만 했지만, 치과에 살짝이라도 발을 담근 현재의 상황에서는 당황스러우면서도 씁쓸한 경험이다. 한국의 보험체계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존재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상황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외국까지 가서 마트를 구경하면서 혼자 생각해봤던 별 생각을 써 보았다. 그래도 마트에서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을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다고 했던 말, 조금은 맞는 말이 아닐까.

양성훈
경희대학교 치과대학 본과 2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