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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사유할 수 있는 능력

스펙트럼

최근에 일이 많아지니 정신없이 지내게 되었고, 그러다가 공허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 곡성에서 ‘뭣이 중한디’의 대사처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할 여유마저 없어졌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의 원인을 찾고 해결방법을 모색하는 사유의 능력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처럼 눈앞의 일들을 처리하는 것에만 급급한 채 분주한 날들이 지속됩니다. 어느 날 뉴스에서 소설가 김 훈의 강연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강연 내용에서 김 훈은 ‘유교문화에서 내려오는 아름다운 전통이 이어지지 않고 어수선하고 천박한 세상이 되어버렸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아름다운 전통’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그 고리타분한 것을 얘기하지 않았고 다른 측면으로 지적을 합니다. 한국 사회는 일제식민지와 6·25 전쟁을 거쳐서 산업화를 이루기까지 매우 압축적인 성장을 거쳐왔습니다. 그러면서 양극화나 물질만능주의, 세대 갈등의 부작용을 현재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지적하며 김 훈은 ‘산업화 과정에서 전통적인 힘의 바탕을 근대화 동력에 연결하는 일에 소홀했었다’고 합니다. 그 전통적인 힘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했던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젊은 세대가 요구하는 가치들이었습니다.

하회마을에서 산, 물, 마을, 집, 길, 인간 등 모든 개체가 직접 대면하지 않고 약간 옆으로 비켜서 가며 조화를 이루었고 양반, 상인 등 여러 계급들, 대립하는 문화들이 극단적으로 부딪치지 않고 공동체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뉴스를 보면 많은 이해관계집단들이 직접 대면하며 극단적으로 부딪치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가까운 곳에서도 상하관계나 동료관계에서 사건이나 분쟁이 벌어지는 것들을 보면 서로를 존중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두번째로 ‘한 곳을 오래 바라보는 능력이 없어졌다’라고 합니다. 새가 알을 품듯이 오랫동안 기다릴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되었다고 개탄하였는데, 저는 이 부분이 가장 감명을 받았습니다. 사실 한국전쟁 이후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과정의 중요성은 생략되고 결과만이 인정되는 세상이 되었고, 그 결과 ‘마른 수건도 쥐어짠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처럼 생각없이 일단 결과부터 빨리 낼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삼성의 스마트폰 갤럭시처럼 선진국의 원천기술이나 아이디어를 응용하는 능력은 고도화 되었지만, 애플의 아이폰처럼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원천기술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잃어버렸고, 이제는 이 성장모델이 사회 전 분야에서 한계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의 고통을 이해하는 감수성이 사라진 사회를 비판하며, 본인은 죽으면 굉장히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며 강의를 마무리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려면 여유가 있어야 되고, 여유를 가지려면 업무나 관계에서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이 거리를 유지하려면 상대방의 고통을 이해하는 감수성도 필요합니다. 업무나 관계의 적당한 거리란 균형과 존중을 의미합니다. 일과 삶의 균형 및 상호간 존중에서 오는 심리적 안정감은 깊게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됩니다. 하지만 수시로 울리는 스마트폰과 같은 IT기술의 급격한 발달과 물질 중심의 세상은 날이 갈수록 이러한 능력들을 키우기 어렵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저도 제가 속한 환경을 돌아봅니다. 선생님의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은 안녕하신가요?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현재 교수
서울치대 예방치과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