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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해보지 않은 시술을 환자에게 권하는 일이 윤리적일 수 있을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5)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모든 치과의사에겐 처음이 있습니다. 특히, 기본적으로 외과적 시술인 치과에는 항상 첫 시술의 경험이 있기 마련인데요. 이 상황에 대한 윤리적 근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를테면 발치 후 연조직 봉합은 여러 번 해보았지만 제가 처음 순소대 절제술을 시행하는 상황이라고 할 때, 이 시술을 환자에게 권하는 것은 윤리적일까요? 좀 더 추상적으로 보자면, 모든 시술은 항상 새롭습니다. 제 상황도 다르고, 환자도 다르고, 따라서 시술의 사회문화적·생물학적 조건은 언제나 ‘새로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요. 이런 일을 환자에게 권하는 것은 윤리적인지 궁금합니다. 익명

주신 질문을 먼저 정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고민하시는 부분은 절대적 시술 가능성에 대한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각 치과대학에 있는 원내생 진료실과 같이, 만약 술자가 이 시술을 처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환자가 시술을 받는 것에 동의하고 치료를 결정했다면 시술이 ‘처음’이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거예요. 문제가 되는 것은 술자가 이 시술을 처음 한다는 것을 환자가 모르고 있음에도 환자에게 어떤 확신을 주어야 하는 상황이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문제점은 두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환자에게 술자가 해당 시술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숨기는 것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가? 즉, 말씀 주신 것처럼 술자가 해당 시술을 해본 적이 없거나 처음 사용하는 재료를 적용하는 경우 등에서, 환자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지요. 환자는 이 경우 다른 정보들, 예컨대 병원의 평판, 술자의 이력, 그동안의 치료 결과, 시술에 대한 일반적인 자료 등을 통해 의사결정에 도달하게 될 겁니다. 이런 상황은 윤리적일까요?

둘째, 시술의 안전성을 온전히 담보할 수 없음에도 시술을 시행하는 것은 윤리적인가? 새로운 시술이나 새로운 재료를 적용하는 경우가 여기 해당할 것 같습니다. 크게 보면 우리가 행하는 여러 시술이 여기 포함되지요. 100%를 보장할 수 있는 근관 치료는 없지요. 실패 없는 임플란트 식립 또한 없을 겁니다. 레진은 탈락할 수 있고, 미백은 과민증을 유발할 수도 있지요. 이렇게 완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시술을 권합니다. 말씀하신 ‘늘 새롭다’라는 것은 이런 상황이겠지요. 완벽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 시술을 권하는 것은 윤리적일까요?

첫째 사안부터 살펴볼게요. 일단 이렇게 물어보는 것으로 출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환자에게 정보를 숨기는 것은 거짓말일까요? 원체 정보를 숨기는 것은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대전제를 피하는 방법으로 제시되곤 했습니다. 유대인을 쫓는 나치 경찰 앞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약자를 보호하려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택해야 합니다. 관련해서 ‘나쁜 소식 전하기’ 상황, 즉 환자에게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이나 심지어 ‘며칠 안 남으셨습니다’라는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 의료인이 거짓말을 해도 되는지에 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환자에게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견해와 환자의 정신적 안정을 위해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는 견해가 충돌했습니다만, 후자는 많은 지지를 얻지 못했습니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라는 윤리 규칙을 적용할 것이고, 어떤 이는 환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전체적으로 볼 때 환자의 이익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여기에서 환자에게 거짓말을 해도 된다는 것을 치료적 특권(therapeutic privilege)이라고 부르며, 미국의사협회 윤리 규약 등 여러 의료 단체가 정한 윤리원칙은 치료적 특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이것이 허용되는 경우는 환자 또는 법정 대리인이 정확한 정보를 알고 싶지 않다고 미리 요청한 경우입니다. 단, 정보 공개는 바로 이뤄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료인은 환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데 적절한 상황과 전달 방식을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숨길 수는 없습니다. 정보는 계획에 따라서 적당한 때에 공개되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술자는 환자에게 해당 시술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을 숨겨도 될까요? 앞서 말씀드린 논의에 근거한다면, 술자는 이 내용을 환자에게 처음에 밝혀야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어떤 시점에선 말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처음 시술을 결정할 때엔 말하지 않았다가 시술을 시행하기 전에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런 접근은 일반적으로 볼 때 환자와의 관계를 악화시키리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환자 처지에선 왜 처음엔 말하지 않다가 인제 와서 말하느냐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물론 이런 일까지 일일이 다 말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환자에게 사사건건 다 말하면 환자가 다 떠날 텐데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주장이냐는 의문이 드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술자의 ‘첫’ 시술은 단 한 번이기에 처음입니다. 어떤 시술을 처음 하는 것은 치과의사의 평생에 단 한 번이지요. 이런 상황을 환자에게 솔직하게 논의하는 것이 환자와의 관계를 해치는 상황이라면, 그 환자를 꼭 잡지 않는 게 더 좋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의료분쟁이 점점 증가하는 현 상황에서, 분쟁의 소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환자에게 관련 내용은 충분히 설명하는 것이 나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 시술의 안전성을 온전히 담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술을 시행하는 것은 윤리적일까요? 이 논의는 보통 안전성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시험적인 치료법을 환자에게 적용하는 경우를 두고 이뤄집니다. 이런 경우엔 이득과 위해를 놓고 저울질을 하여, 환자에게 가해질 위해보다 이득이 더 큰 경우에 치료법을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이 의료윤리의 견해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이 질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현실의 불확실함 앞에서 어떻게 행위를 할 것인가라는 고민입니다. 치료 결과는 불확실합니다. 시행하는 술식이나 치료 환경이 익숙하지 않을 경우, 불확실성은 더 커집니다. 이런 불확실성 앞에서 환자에게 치료를 권하는 것이 애초에 윤리적일 수 있는 걸까요?

여러 문헌은 의료인이 불확실성을 견디는 것(tolerance to uncertainty)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현실에서 확실한 것은 ‘그것이 항상 불확실하다’라는 것뿐인데도, 현대 의학은 불확실성을 몰아내야 할 것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임상 경험이, 최근에는 특정 술식의 효과에 대한 통계론적 기술이 불확실성에 대한 대처법으로 작동하고 있지요.

최근 대두한 증거기반의학(evidence-based medicine)은 온전치 못한 증거에 의존하던 의학을 혁신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며 이는 의료 혁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치료적 의사결정에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여 불확실한 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요. 70%의 성공률을 지닌 치료법보다 80%의 성공률을 지닌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이 낫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20%의 실패 가능성은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겐 실패의 가능성을 감당하고, 불확실성을 견딜 수 있는 자세를 받아들이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의학의 불확실성을 이해시키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교육학이나 의료인문학의 노력이 최근 나타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진료하는 것이 윤리적이냐라는 질문은 과녁을 벗어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의료는 불확실하며, 언제나 실패할 수 있습니다.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을 뿐이지요. 처음 시술하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라도 실패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다면 그 시술에 대해 의사는 윤리적으로 행위한 것입니다. 하나 더 말씀드리지면, 불확실성을 환자와 의료인이 함께 감내할 수 있도록 여러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윤리적인 접근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