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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가족이 될 준비는 되셨나요?

Relay Essay 제2354번째

“당신은 가족과 함께 살고 있나요? 저요? 글쎄요~ 아마도… 그럴껄요?”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사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살면서 ‘가족’이란 무엇인지, 딱히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게 ‘가족’이란 물과 공기처럼 너무나 당연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태어날 때부터 줄곧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그 울타리를 크게 벗어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때문에 가족이 된다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전 저는 제 인생에 다시없을 특별한 도전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바로 결혼이라는 것을 말이죠. 결혼하면서 저는 남편, 시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그렇게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가족’과 함께 살게 된 것이죠. 아니, 새로운 가족과 함께 살게 될 줄 알았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 것 같습니다. 아, 오해는 마세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지금은 그들과 함께 살고 있지 않는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여전히 저는 그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는 결혼을 하면 당연히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것이라 생각했고, 나 스스로가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자신했던 것 같습니다. 덜 찬 마흔이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살아온 날들이 많다고 생각했고, 살면서 내가 태어난 가족뿐 아니라, 직장동료, 고객들, 친구들 혹은 지하철이며 카페, 길거리에서 스쳐 지나간 그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사람들을 대면하며 인간관계를 어느 정도 다룰 줄 알기 때문에 새로운 나의 가족들도 쉽게 받아들이고 어울릴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던 거죠. 그러나 나는 곧 그것이 자신이 아닌 자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수십년을 살아온 내 부모 형제 자매조차 나는 여전히 이해하고 있는 중이었지 완벽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들은 내게 어려운 숙제이고, 미스터리였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수십년, 나름의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과 ‘안녕하세요, 우리 결혼했군요. 이제 우리는 가족이네요’, ‘안녕하세요, 당신 아들과 결혼했으니 우리는 가족이 되었군요’ 하는 말로 쉽게 가족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이었던 거죠.
 

우리는 수건을 개는 방식도,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도, 좋아하는 TV 프로그램도 모두 달랐습니다. 더군다나 가족의 사랑과 헌신은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시어머니와 너무나도 잘 지냈습니다. 남편과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죠. 내 스스로 가족이라고 강조하며 그러니 내가 이해하고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의식 중에 남편과 시어머니에게도 나는 당신의 가족이니 당신들도 그렇게 날 원래 있었던 존재처럼 편안하게 받아들여라, 날 이해하고 내 편이 되어 달라고 강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마찬가지였죠. ‘네가 함께 살아왔던 부모 형제처럼 내가 잘 해 줄게, 우리는 가족이니까’라고 생각하면서 어쩌면 더 불편한 관계를 만들어갔던 겁니다.
 

몇 번 눈물을 쏟기도 하고, 상처를 주고 상처를 입으면서 나는 내가 그들에게 있어 ‘남’임을, 그들 역시 나에게 ‘남’임을 먼저 인정해야 했습니다. ‘나는 당신들을 전혀 모르겠어요. 그리고 당신들을 위해 어떤 희생을 할 마음가짐도, 당신들에게 나를 전적으로 보여줄 준비도 되어있지 않아요. 당신들은 내게 타인을 뿐이니까. 내가 그렇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인정하고 나니 그제서야 그들에게 진짜 나를 보여줄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가족이 되기 위해 100km, 120km, 성급하고 빠르게 달려가다 이제야 30km 이하로 속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죠.
 

참 재미있는 일이지 않나요? 완벽한 타인임을 인정한 순간, 드디어 가족이 될 준비가 되어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제 나는 좀 더 그들에 대해 묻기 시작했고, 좀 더 나에 대해 얘기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모르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그들이 알아야 하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은 어떤 모습인지. 서서히 가족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혼 2년 차 여전히 나는 그들과 타인입니다. 가족이 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가족이 될 준비는 조금씩 해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전 우리 집에 또 다른 타인이 들어왔습니다. 10달 배 아파 낳은 내 딸은, 그러나 내게는 또 다른 타인입니다. 딸 아이에게도 마찬가지겠죠. 하루 아침에 가족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안녕, 지은씨, 나는 엄마라는 사람이에요. 반가워요. 너도 날 잘 모르고 나도 널 잘 모르지. 찬찬히 두고 보면 믿음이 갈지도 모른 단다. 지금은 낯설겠지만 괜찮아. 조금씩 조금씩 서로 알아가면서 가족이 되어보자. 엄마랑 아빠도 아직 가족이 되어가는 중이니까.”
우리는 타인에서 서서히 그렇게 가족이 되어갈 수 있겠죠.


이주선 ㈜휴네스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