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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임이 불편한 현실, 해결책은 무엇인가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6)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치과의사임이 불편한 현실, 해결책은 무엇인가요?
한국의 치과의사를 생각하면 그저 답답할 뿐입니다. 최근 연이은 의료인 폭행 사건에 치과의사도 폭행을 당하면서 다음 차례가 되지 않을까 두렵고, 보험 등 정부 제도가 현실과 괴리되어 고되고, 일부의 일탈 때문에 싸잡아 욕을 먹는 탓에 괴롭습니다. 치과의사임을 밝히는 것이 불편한 현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치의신보 2019년 7월 9일 자 기사, “‘우리가 동네북이냐’ 치의 슬픈 자화상”에서 인용)


학생, 수련의 시절 마음에 품었던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치과의사와 환자는 협력 관계인가, 갈등 관계인가”하는 것이었어요. 예술작품은 종종 의료인과 환자를 협력 관계로 묘사하곤 하지요. 환자를 도와 치료의 길로 걸어갈 수 있도록 돕는 의료인이 그림이나 소설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이지요. 하지만 현실에선 둘은 갈등을 빚는 일이 더 많아 보였습니다. 의사는 환자가 자기 말을 듣지 않아서 빨리 낫질 않는다고 하고, 환자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할까, 괜한 치료를 받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곤 했지요.

그 모습을 보며 철학자 사르트르가 희곡 작품에서 처음 썼다고 하는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표현을 떠올렸습니다. 사르트르는 내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실존을 다른 모든 것에 우선시한 실존주의 철학을 이끌었지요. 실존이란 나는 어떠한 이유도 없이 이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 존재에 가치를 스스로 부여해야 합니다.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자유이지만, 어떠한 지반도 없기에 자유는 어떤 면에서 저주이지요. 이때, 개인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타인입니다. 내가 정한 가치에 다른 사람이 가치를 부여해 준다면, 자유라는 저주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타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문제가 마음을 괴롭힙니다. 타인 또한 자유롭지 않다면 그와 관계를 맺을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그가 자유롭기에 개인은 타인과 맺는 관계에서 늘 불안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관계에서 안정을 찾지 못하니 타인의 잣대에 목을 매달지만, 이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내가 맡기는 일이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는 거지요. 내 자유가 타인에게 구속된 삶,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자유로울 수 없는 삶.

여기에서 문제는 결국 타인의 시선일 겁니다. 내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타인의 시선은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이 없인 개인의 삶을 잡아맬 푯대를 찾을 수 없습니다. 종교가 있지 않냐고 하실 수 있지만, 신 또한 커다란 타인이니까요.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에 너무 매이는 것을 피하면서도, 그에 적절히 반응하는 것이겠지요.

치과대학생, 새내기 치과의사였던 저는 타인의 시선에 너무 매달려 있었던 것 같아요. 치과의사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치는가에 전전긍긍했기에 치과의사와 환자가 협력하는지 갈등하는지를 고민했던 거지요. 현실에서 치과의사와 환자는 때로 협력하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하기에 저런 질문은 애초부터 던질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 뒤, 철학을 공부하고 조금 더 저를 이해한 다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 점점 타인의 시선은 과도한 힘을 획득해 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페이스북 등 SNS에서 사람들이 누르는 ‘좋아요’가 있지요. 다른 사람들에게 엄지 척을 한 번 더 받기 위해 사람들은 꾸민 모습을 인터넷 공간에 게시합니다. 빠르고 즉물적인 언론 보도 또한 타인의 시선이 가하는 압력을 부추깁니다. 아니, 보도 자체가 타인의 시선인 양 행동하지요. 현대의 속도는 오랜 체면 문화와 결합하여 우리 삶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날 치과의사의 삶을 두렵고, 고되고, 괴롭게 만드는 것 중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타인의 시선 아닐까요. 현실의 문제와는 별개로 우리에게 불안을 가져오는 것은 이런 일들로 인해 만들어진 “슬픈 자화상”은 아닌지요. 물론 폭행 사건은 벌어진 현실이고 미비한 제도로 인한 고통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여기에 대한 문제 제기는 계속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도 개선과 함께 우리 또한 자리를 다시 잡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현실 개선의 의지를 회의주의가 어그러뜨리지 않도록, 어쩔 수 없다며 지레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우린 타인의 시선을 이겨내야 할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타인의 시선에 끌려다니지 않을 수 있을까요. 프로페셔널리즘(professionalism)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거예요. 전문직업성이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흔히 프로 정신을 의미하는 말이고 의학에선 의료 서비스 공급을 위해 의사 집단과 사회가 계약을 맺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지요. 의료사회학자 엘리엇 프라이드슨은 시장이나 정부가 규정하는 대다수 직업과는 달리 자신을 직접 규정하는 직업이라는 의미로 이 내용을 바라보았어요.

이를 타인의 시선이 제기하는 문제와 엮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치과의사로서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스스로 규정할 수 있는 특권이 우리에겐 주어져 있습니다. 그 모습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타인의 잣대에 끌려다니기만 할 때, 치과의사의 삶은 불안과 고통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직접 만들어내는 삶의 모습을 향해 나아갈 필요가 있을 겁니다.

어떤 모습을 만들어야 할까요? 의과는 검진과 처방이 큰 부분을 차지하기에, 훌륭한 전문가의 모습을 구축하는 데에 손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보다는 도덕적 헌신을 우선하곤 합니다. 하지만 직접 손을 통해 작업하고 그 결과물을 통해 환자와 연결되는 치과의사에겐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레진 수복을 하고 고정성 보철물을 위해 치아를 삭제하며 임플란트를 식립하는 순간, 치과의사의 손은 생각하지요. 진료실에 앉아 있는 치과의사에게 머리와 손은 따로 분리된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손으로 생각하는 법을, 머리로 만드는 법을 배워 왔지요. 아름다우면서도 잘 기능할 수 있는 치료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은 단순한 수작업의 수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결과물을 위해 치과의사는 환자의 습관과 형편을 따져보아야 하고, 문화적 조건과 사회적 변화를 살펴야 하지요. 핸드피스는 제도와 분리되지 않습니다.

뉴욕대 사회학과 리처드 세넷 교수는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 즉 “장인(craftsman)”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현대 사회는 생각하는 손을 무시하고 지적 작업에만 큰 가치를 부여해 왔습니다. 이는 전문직의 이상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지요. 전문가란 머리로만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에게 도덕적 이상을 부여하고 사회적 가치를 따르도록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곳곳에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치아를 치료하는 일은 결코 치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치아를 치료하는 손은 치의학의 지식을 담은 머리와 순환하고, 환자와 치과의사가 만나는 진료실은 그 바깥의 사회와 순환합니다. 훌륭한 치료 결과물을 만들어내려는 치과의사의 손은 생각하는 손이지요. 그 손은 생각하며 결과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압니다.

우리의 자화상은 타인의 시선에 여러 군데 상처를 입었습니다. 이 상처를 타인이 치유해주진 않을 거예요. 현대 사회에서 장인으로 다시 서는 일은 그 해결책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생각과 행동을 동시에 하는 치과의사의 모습은 더 나은 치료를 위해 사회의 여러 요소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며, 동시에 좋은 치과의사의 삶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줄 거예요. 그때, 치과의사는 새로운 전문직의 모습을 모두에게 보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