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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일으키는 치과의사에게 윤리교육이 의미가 있을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7)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최근 여러 사건·사고로 치과의사가 다시 세간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 해결책으로 여러 사람이 의료윤리 교육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의구심이 드는 게, 마치 학창시절에 누가 결석하자 출석한 친구들을 혼내는 선생님 같달까요? 잘못하고 있는 사람은 윤리를 말해도 듣지 않을 텐데, 이게 소용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익명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몇몇 치과 사례가 전국적으로 보도됐지만, 해결책이 미진한 상태입니다. 작년 집단 환자치료중단 사태로 큰 물의를 빚었던 모 치과 원장은 다른 치과를 개원한 것이 아니냐는 정황이 포착, 최근 보도된 바 있지요. 얼마 전엔 한 원장님이 인수한 치과에서 수십 명의 환자에게 필요하지 않은 전치부에는 보철을, 구치부에는 다른 치료가 가능함에도 임플란트를 종용한 일을 발견하여 언론에 제보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말씀 주신 것처럼, 이런 상황을 두고 윤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럿 들리고 있습니다. 2016년 다나의원 사건이 벌어진 이후 경과와 비슷하지요. 잘못된 의료행위를 한 의료인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윤리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행위를 한 이유가 해당 의료인이 잘못인지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윤리란 어떤 행위가 옳고 어떤 행위가 그른지 알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이런 교육은 필요합니다. 다나의원 사건에선 주사기 재사용은 잘못된 행위임을 누군가 알려줘야 했습니다. 환자치료중단 사태는 의료인 개인을 넘어 치과계 전체의 품위와 신뢰를 격하시키는 일임을 알려줘야 할 겁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윤리의 범위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일은 의료 질 관리(quality assurance)의 문제가 아닐까요.

 

미국 의학한림원(Institute of Medicine)이 내린 정의에 따르면 의료 질이란 “보건의료서비스가 원하는 건강 결과를 나타낼 가능성을 높이고 현재의 전문가적 지식과 일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사기 재사용도, 환자치료중단도 모두 건강 결과를 해치며 전문가적 지식에 반하는 일입니다. 이런 일을 놓고 이견이 있는 의료인이 있다면, 그가 지닌 의학적 지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보아야 할 겁니다.


즉, 위 행위들은 발생하지 않았어야 하는 행위들을 하는 개인이 존재한다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윤리 의식이 투철해진다면 그런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할 수는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역사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윤리를 가르치고 덕을 숭상하며 심지어 가정과 학교에서 매를 든다 해도, 잘못된 선택을 하는 이들과 어긋나는 이들은 언제나 있다는 것을요. 이건 교육의 문제도, 윤리의 문제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윤리교육은 필요 없을까요? 만약 윤리교육의 목적이 일탈하는 개인을 없애는 것이라면 분명히 말씀드려야 할 겁니다. 그 교육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고요. 아무리 윤리를 외쳐도 누군가는 어디서 잘못된 선택을 할 것이라고요. 하지만 다시 분명히 말씀드리려 합니다. 그렇기에 윤리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윤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갸우뚱해지실 겁니다. 아니, 윤리를 가르친다고 하여 개인의 악행을 막을 수 없다고 방금 말해놓고는 그래서 윤리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그건 이율배반이요 어불성설 아니냐고 말씀하시겠지요. 그러나 윤리교육의 쓸모는 악행하는 소수의 일탈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선해지려 하고 선한 다수에게 있습니다. 윤리는 선한 다수에게 어려운 선택을 내릴 때 도움을 주며 악을 상대로 디딤돌을 제공합니다.


처음 말씀드렸던 최근 사례를 예로 살펴볼게요. 한 원장님이 치과를 인수했습니다. 아마 환자들은 명칭이 바뀌었다 해도 같은 자리에 있는 치과를 찾아왔겠지요. 원장님은 전 원장에게서 진료를 받았던 환자를 검진하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여러 환자가 전악 보철 시술을 받았다는 것이죠. 사실 이미 치료가 끝난 환자들이기에, 문제가 없는지만 확인해도 됩니다. 별문제가 없다면 정기 검진만 진행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전 방사선 사진을 들여다보던 원장님은 문제점을 발견합니다. 필요하지 않은 치료를, 그것도 너무 많이 했음을 알게 된 거죠.


그렇다면 이 원장님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요? 가장 쉬운 방법은 눈을 감는 것입니다. 최소한 자신은 잘못하지 않았으니 여기에서 어떤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욕을 먹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질문이 마음을 괴롭힙니다. 가만히 있어도 괜찮을까요? 역에서 다른 전문가의 잘못된 행동을 그냥 놓아두어도 되느냐는 질문을 던질 때 비로소 윤리가 구원투수로 등판합니다. 애매한 상황에서 판단의 지침을 제시하기 위해, 또는 특정 판단을 지지하기 위해. 이는 해당 사례의 고찰과 함께 사회와 개인이 지닌 여러 가치, 그리고 윤리적, 법적 원칙을 고려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이 모두를 모아 결론으로 나가는 것이 의료윤리이기에, 그것은 필연적으로 전제와 결론으로 구성되는 철학적 논증의 형식을 빌리게 됩니다.
다른 전문가의 잘못된 행동을 그냥 놓아두어선 안 됩니다. 이는 의학의 오랜 전통인 악행 금지, 그리고 전문가적 의무 중 책임성과 자기관리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악행 금지란 유명한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나오는 환자가 “해나 부당한 조치를 받지 않게” 하겠다는 선언을 의미하지요.

 

이 명령은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에 대해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이 입을 수 있는 해를 막아야 할 의무가 의사 또는 치과의사 개인에게 주어진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동료로 인해 지역사회의 일원 또는 잠정적인 환자에게 해가 발생할 것이 명백히 예상되거나 이미 발생한 경우, 의료인은 추가적인 해를 막아야 합니다.


책임성이란 외부에서 그 결과를 평가하기 어려운 전문직 업무의 특성상, 전문가와 이들이 만든 단체에 업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할 의무가 부여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만약 그 구성원이 미흡한 진료를 수행할 경우 단체는 이를 관리하고 제재를 가할 의무를 지닙니다. 자기관리 또한 업무능력을 현재 전문직업의 표준 이상으로 유지하며 지속해서 향상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주변 의료인이 이 목표에 부합하지 못하는 행위를 지속할 경우 막아야 할 의무가 의료 전문가에게 부여되는 것이죠.


위와 같은 이유에서 치과의사는 동료 전문가의 잘못을 지적하고 문제시해야 할 의무를 지닙니다. 이 의무는 아는 사람이나 심지어 친구에게 보일 수 있는 호의를 넘어섭니다. 남에게 해를 입히고 있다는 점에서 해당 개인은 행동의 자유를 주장할 수 없지요.

 

결론적으로, 치과의사는 동료의 잘못을 지적해야 하며 단체는 회원을 관리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다 푼 것은 아닙니다. 잘못을 어떻게 지적하고 문제 삼아야 할까요?
이번에 다 말씀드리긴 어렵겠지요. 하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전문가로서 동료의 잘못을 지적할 때엔 세심한 고려가 필요합니다.

 

몇 년 전부터 화제가 된 누군가처럼 아집으로 자신만이 옳고 남들은 모두 다 잘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전문직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이며, 윤리적으로 제재의 대상이 됩니다. 여기에선 제도가, 시스템이 잘못을 교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로 일단 마무리하려 합니다. 그 키를 잡는 사람이 선하든 악하든 간에, 제대로 자리 잡은 제도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