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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일 관계 악화 속…함석태 선생 항일 정신 재조명

한국인 최초 치과의사 항일운동에 동참
치대 등 교육기관 흉상제작 의견 개진도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인해 전국적인 반일 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항일운동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한 한국인 최초의 치과의사(치과의사면허 1호)인 토산 함석태(土禪 咸錫泰) 선생이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함석태 선생은 일제강점기 하인 1912년 일본치과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후 1914년 2월에 한국인 최초로 조선총독부 치과의사면허 제1호로 등록한 인물로, 그해 6월 서울 삼각정(三角町: 현 서울시 중구 삼각동) 1번지 옛 제창국(濟昌國) 자리 동쪽에 치과의원을 신축하고 개업했다.


선생은 당시 일본인 주도로 이뤄진 경성치과의사회에 한국인이 소외되는 현실을 개탄해 1925년 경성치과의학교에서 첫 졸업생이 배출되자 한국인 치과의사들을 규합해 한국인 치과의사만의 조직인 한성치과의사회를 설립, 회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특히 함석태 선생은 충치예방에 대한 글을 1924년 동아일보에 기고하고 구강위생에 대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등 구강위생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부족을 안타깝게 여겨 구강위생 계몽활동에도 적극 힘을 쏟았다.

 

# 도산 안창호 선생 유치장서 치료하기도
또한 함석태 선생은 황실이 주도한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독립운동가들과도 직접적으로 교분을 쌓는 등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력한 인물이기도 하다.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을 유치장까지 직접 출장 나가며 의치제작 등 치과치료를 해주었으며, 이외에도 김약수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치료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더욱이 선생은 1919년 9월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사이토 미노루 총독 일행을 향해 폭탄을 투척해 한국의 자주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린 강우규 의사의 손녀 강영재 여사를 친딸처럼 보살피며 이화여전을 졸업시키는 등 어려운 형편에 놓인 사람들을 돌보는데도 앞장섰다.


이외에도 선생은 문화재를 수집하는 데도 힘을 써 우리나라 문화재가 일본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았다. 그 예로 일본인들이 길을 넓히기 위해 보신각 주변에 있는 철문을 철거했는데 선생이 이를 보관해 고종황제에게 바쳤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광화문 네거리 동북부에 있는 비각의 철제문을 보관했다고 전해지는데 이 비는 고종황제의 연세가 육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왕위에 오른 지 40년이 되는 경사를 기념해 세운 비다.


이 같은 함석태 선생의 당당한 행동들은 일제의 서슬 퍼런 시기에 나라와 동포를 사랑하고, 불굴의 민족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요즘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로 국민적 반일감정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함석태 선생을 기리는 뜻에서 선생의 흉상을 제작해 교육기관에 보급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부산대 치전원에서 학생들에게 치의학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손우성 교수는 “한국인 최초의 치과의사로서 함석태 선생의 항일정신과 나라와 동포를 생각하는 헌신은 치과계에 많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며 “이에 치과의사로서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치의학 역사와 선생의 뜻을 되새기자는 의미에서 치과대학 등 교육현장에 선생의 흉상이 많이 보급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김현철 부산대 치전원장도 “함석태 선생의 흉상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닌 치과의사의 역사를 바로 알고, 그의 업적을 통해 앞으로 치과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치협과 서울지부는 지난 2017년 2월 ‘함석태 선생 개원 100주년’을 기념해 함석태 선생 흉상 제막식을 갖고 협회 회관 로비에 건립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