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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야 할 때

Relay Essay 제2360, 2361번째

치의신보 제 2725호 1면과 3면에 걸쳐서 ‘치과의사가 아프다’라는 제목으로 환자 입만 보고 산 세월이 불러온 병, 일반인에 비해 근골격계 28배, 신장병 13배, 우울증 4배 등 높은 위험에 처해있다는 놀라운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거의 모든 질환에서 치과의사가 위험성이 더 높아서 근골격계 질환은 28.69배, 신장병은 13.07배라고 한다. 주요 암의 상대위험도 산출에서도 일반 국민에 비하여 1.86배 높다고 한다. 치과의사 사망원인 1위는 암으로서 47.9%, 심혈관질환 17.4%, 사고사 13.5%, 고의적 자해나 자살이 10.8%, 뇌혈관질환 5.8% 순인데, 일반 국민에 비하여 자살과 사고사의 비율이 더 높았다. 그리고 암으로 인한 치과의사 사망자 가운데에는 간암이 25.5%, 혈액암 16.3%, 폐암 14.3%의 순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의 임상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치과재료나 방사선 또는 바이러스 등 위험할 수 있는 화학적 물리학적 생물학적 환경에 노출되고, 날카로운 기구에 의한 부상이나 B형 간염, HIV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요인을 갖고 있다.

더욱이 심한 노동 강도와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위험 요인에 있어 다른 직종의 전문직에 비하여 그 위험성은 더 크고, 치과의사의 근골격계 질환은 매우 심각한 수준에 있음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필자는 75학번 81년 면허를 받았으며 관련하여 주변 변화들과 함께, 건강문제부터 치과의사의 장래에 이르기까지 대강의 큰 줄기를 살펴보면, 우선 집에서는 “당신도 이제 그 정도했으면 됐고 개업은 접으라”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굳이 일 계속하고 싶다면 파트타임으로 조금씩 하든지하고, 평생 남 좋은 일 그만큼 했으니 충분하다는 것이다.


사실 현장에서 높아만 가는 환자들의 기대치와 함께 우리가 들이는 수고는 더욱 커져가고 고정 지출은 계속해서 늘어만 가는데 얻어지는 경제적인 보람은 꾸준히 떨어지고 있으며, 직원들의 충성도나 책임감, 노동의욕도 바닥에 이른 듯 보인다. 치과위생사나 기공사 등 보건의료 전공자들도 치과보다는 다른 업종의 판매업 산업회사 또는 상업비즈니스에서 일하기를 선호한다는데, 상대적으로 치과업무는 재미없고 금전적 보상이 충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체력적으로도 무척 힘들다는 것이다.
 

필자는 스스로 치과의사라는 명제에 관하여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은 시간 고민을 해왔다고 자부하고, 선도적 위치에서 대학원 석·박사, 미국유학, 그리고 대학교 교수로서 또는 전문의로서 대부분 보람으로 알고 열심히 일 해왔다고 생각하는데, 부지불식간에 집에서조차 자유의지를 이토록 쉽게 침해받을 줄이야! 그동안 주변 선배나 동료들이 자신감을 잃거나 병원을 정리할까 이야기하면, 언제나 적극 만류했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는데! 과연, 떠나야 할 때 어느 사이 내 차례가 왔더란 말인가?
 

사실은 중고교시절 꿈이 치과의사가 아니어서 치과대학재학 도중에 다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등 곡절 끝에 면허를 받았지만 이후 대학원 그리고 유학과 수련, 대학교 교수를 거쳐서 개원, 지금까지 전문가로서 나름 늦게나마 의미를 찾았다고 다행으로 여겨왔다. 출발시점부터 치과의사로서 누려야겠다고 작정한 적은 없었다. 다만 막연히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이 되는가보다 부모형제에게 좀 기여가 될 수도 있겠지 하는 정도 현실적 기대를 가졌고, 손으로 만지는 직업이니 남보다 더 잘 할 수 있지 않겠는가하는 자신감으로 임하여왔다.
 

일찍 공부했던 임상교정학이나 구강악안면외과학 보다는 뒤늦게 유학해서 공부했던 치주학이라는 학문을 통하여 비로소 치과의사로서 보람을 느끼고 바로 섰다고 믿고 지냈는데, 상대적으로 폭넓은 자연과학적 지식에 의학적, 치과적 전문지식으로 잘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고, 환자를 치료하는 부분에 더하여 직접 잘 교육하고 예방, 더 나아가서 항상 장기적 예후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환자가 어떠한 임상적 어려움에 있든 성인들에 대한 치료내용에 있어 리더십을 잘 유지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지금까지 스스로를 지탱해 온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늙어가고 저작기능은 조금씩 변화하며 치주질환이나 우식치를 갖게 되거나 수 개 치아를 상실하게 되고, 건강했던 젊은 시절에 비하여 치열과 교합에도 적잖은 변화가 생기게 되는데, 보통 성인들은 40~50대에 들어서면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치과 문제를 갖게 되며 대개 보철수복 또는 수술치료가 필요하다.

많은 경우 몇 가지 전문분야 협진치료로서 해결해야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며, 또한 환자들은 왜곡된 치열 바로잡기, 파절치 혹은 결손 치아의 수복, 또는 구치부위 변화된 저작효율에 대한 개선, 또는 치아 모양 크기 부조화를 염려하거나 어두워지거나 변색된 치아를 걱정하기도 한다.

우리는 성인에 대하여 건강한 구강 내 환경을 만들어 주는 동시에 치열을 이상적인 악궁형태로 배열하고 무리 없는 기능교합을 이루어줌으로써, 성공적인 치료결과를 얻게 되고 장기적인 예후까지 기대한다. 흐르는 세월과 함께 조금씩 낮아지는 교합고경의 회복과 더불어 치주학적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바로 안티에이징 치과치료라고 말할 수 있고, 즉 고급의 치주임상을 통하여 보람과 재미를 찾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크게 변화하는 의료 환경과 전반적인 경제적 어려움에서 과거에 비하여 더 검소하게 지내야한다는 사실에 모두가 동의하는 분위기이며, 개원의 가운데 은행융자 등 부채문제로 시작부터 심하게 고통 받고 있는 분들 역시 적지 않다. 필자는 약 10년 전 개업하면서 발생된 은행부채를 여전히 조금씩 갚고 있는 중이다.

만일 적자가 계속적으로 누적이 되면 개업을 정리해야겠지만, 더 어려운 점은 직원문제인데 매일 애쓰고 노력하는데도 도대체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 너무나 쉽게 직장을 옮겨나가고 책임감 부재에다 하루 일상은 마치 가진 자에 대한 못가진자의 도전처럼 아슬아슬하기까지 하다. 근무환경이나 개선 가능한 복지에 대하여 노력했고 끊임없이 칭찬하고 격려 교육하는데, 이제는 드디어 한계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어쩌면 직원들은 꼰대원장이 싫을 수도 있겠다!

게다가 양산된 회원 수로 인하여 사회적 상대가치 하락과 함께 합당한 존경을 받고 있는 전문직인지 혼란스러워졌고, 요즈음 향상된 문화예술, 스포츠, 해외여행, 여가활동 등의 관점에서 본다면 상대적으로 즐길 시간이 부족한 치과의사 삶의 질은 오히려 후퇴했다고 여겨지기도 할 것이다.

필자의 경우, 조용히 책 읽거나 심신단련을 위한 운동시간은 더 늘어났고, 가족행사에 들이는 시간도 좀 더 많아졌다. 더 이상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든 지금처럼 긍정적인 태도를 그대로 갖고 가려고 한다. 진료실에서는 기본진료에 더 많은 시간을 그리고 개별 환자들과의 대화시간을 늘리면서 모범치과로서 잘 서려고 한다.

한편으로, 가까이 훌륭한 선후배들과의 접촉을 잘 유지하면서 변화에 보조를 맞추려는 노력, 다소 행동반경을 줄여가고 있다. 그리고 가능한 현장을 오래 지키리라 마음을 다지며 정확히 어느 시점일지 알 수 없으나 ‘떠나야 할 때’ 현명한 정리를 선택하기 위하여, 오랜 시간을 들여서 세운 필자의 가치 ‘고급의 치주임상’을 통하여 보람을 찾겠다는데 큰 의미를 두고자 한다. 앞으로 나의 위치가 파트타임의사가 되든 아니라면 다른 형태의 어떤 치과의사가 되든 간에 국민 누구에게 장기적인 예후를 이야기할 수 있다면, 구강질환 예방과 구강보건 교육을 행할 수 있기만 하다면 언제나 행복으로 치과를 이야기하려 한다.

이승호 가미건치과의원 원장
한국성인치과임상연구회
전 이화여자대학교 치주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