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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보험 체계 속에서 치과의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8)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정부가 정책적으로 급여 항목 확대를 외치고 있는 가운데 개원의로서 큰 불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급여 진료만으로 병원을 운영한다는 게 의과처럼 진료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일 수 없는 치과 상황에서 좋은 선택은 아닐 겁니다. 점차 높아지는 환자 눈높이도 고려해야 하고요. 이런 상황에 대해 치과의사이자 의료윤리학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익명
 

보험 관련한 이슈를 이야기하면 한국 의료 체계 전반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성취와 과제가 보험 제도에 얽혀 있기 때문이겠죠. 치과계는 급여 항목과 관련이 별로 높지 않아 보일 수 있지만, 대표적인 급여 항목인 아말감 충전, 근관 치료, 사랑니 발치를 생각해 보면 급여로 묶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보입니다. 아말감 충전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개원가에서 여러 이유를 들어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수은이 일으키는 환경 문제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아말감을 사용하지 말자는 협의가 이뤄졌기에 아말감 관련 문제는 일단락되었지만, 제가 학생 때만 해도 수가 때문에 아말감을 하지 않는 것은 너무 돈만 밝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듣곤 했으니까요.

근관 치료는 낮은 수가로 인해 묘한 위치를 점하게 된 대표적인 치료일 거예요. 지난 학기 의료정의론을 주제로 한 제 강의를 듣던 한 보존과 선생님은 저수가로 인해 제대로 된 근관 치료를 시행하기 어려운 환경을 문제로 지적하셨어요. SNS에선 임플란트라는 치료 선택지 앞에서 보존적인 ‘치아 살리기’가 유명무실해지는 상황 앞에서도 환자를 위한 여러 선택지를 고민하고, 좋은 임상가가 되고 싶은 고민을 담은 원장님의 글을 본 적이 있네요. 이런 고민을 무효로 돌리는 것이 현 저수가 체계지요.

여기에 ‘윤리적인 진료는 낮은 비용으로 좋은 치료를 해주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겁니다. 급여로 묶인 항목들에 있어서 환자가 저렴한 가격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요. 하지만 치과의사의 업무가 봉사와 같은 것으로 여겨질 수 없고 이런 생각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 주장이 일반론이 되긴 어려울 것 같아요. 더구나, 낮은 비용과 좋은 치료가 병행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스럽고요.

현재의 일반적인 개원 환경에선 심지어 대학병원마저도 수익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지요. 기관의 운영과 쇠락을 운영 주체인 의료인이 담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익을 무시한다면 병원이 운영되지 않을 테니까요. 게다가 계속 새로운 재료와 기술이 개발되고 개발되어야 하는 현 상황에서 진료 수준을 현상으로 유지하는 일조차 쉽지 않습니다.

이 와중에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점차 비급여 항목을 급여 항목으로 끌어안으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런 정책의 근간에는 성공적이라는 의료보험 정책에도 불구하고 가계가 직접 부담하는 의료비가 매우 비싸다는 문제 인식이 깔려 있지요. ‘OECD 건강통계 2018’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의료비 가계직접부담 비중은 33.3%로 라트비아, 멕시코, 그리스 다음 네 번째를 기록하여 부끄럽게도 상위권에 위치해 있지요.

모두가 칭찬하는 한국 보험 제도와 엄청난 의료비의 간극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문제는 ‘저급여’입니다. 급여 항목은 접근성이 높지만 상대적으로 그 수가 적고, 환자가 필요로 하는 많은 항목이 비급여이기 때문에 환자는 여전히 많은 의료비를 지출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을 놓고 2013년에 이미 의료 보장성 강화 정책이 제시, 선별급여 제도가 도입된 바 있고 2017년 8월에는 예비급여 제도가 발표되었죠. 전자는 암, 심장병 등 4대 중증질환을 대상으로 하고 급여 전환을 앞둔 항목의 전환을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반면, 후자는 미용 등 목적을 제외한 일반 치료 전체를 대상으로 하여 3,800여 개 항목으로 범위를 확장했지요.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져도 일단 적용하고 이후에 자료를 통해 검증하는 접근법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복지부는 강조하고 있는데요.

치과 또한 이런 급여화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이미 소아의 복합레진 충전과 구순구개열 환자 치료 등이 급여화된 바 있지요. 지난 4월에 있었던 복지부 공청회에 따르면 노인틀니, 임플란트, 아동·청소년 충치치료 연령 조정 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합니다. 보철 등 치과의 주요 영역이 치료와 미용의 경계선에 있으므로 빠르게 예비급여의 대상이 되진 않겠지만, 현재 방향으로 보자면 점차 급여 항목이 확대될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겠지요.

이런 상황은 두 가지 문제를 일으킵니다. 첫째, 치과는 현재도 급여 항목이 적어 국민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필요한 치료를 권하는데도 환자들은 돈 때문에 비싼 것을 권한다고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것이죠. 자신의 ‘저렴한’ 치료를 내세우는 일부가 이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고요. 급여 항목이 전체적으로 확대되는데도 치과 치료는 여전히 비급여로 남는다면 이런 부정적 인식은 더 악화할 겁니다. 둘째, 치과 치료에 관해 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의 이해가 충분치 않지요. 길 수밖에 없는 치료 시간, 치과 의료진과 환자 사이 상호작용, 다양한 재료 선택지 등 치과 치료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상대가치점수(의료행위에 대한 요양급여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비교하여 점수로 표현한 것)가 정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복지부의 현재 기조가 지난 정권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심지어 정권이 바뀐다 해도 큰 변화가 있으리라 생각하긴 어렵습니다. 더구나 현재 보험급여를 놓고 의료인과 복지부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양상을 띠고 있으므로 풀기도 어렵습니다. 복지부는 저급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급여 의존을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료인은 저급여 문제가 해결되어야 비급여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렇다면 이 논의는 복지부, 의료인, 일반인 간 논의체를 활성화하여 지속적인 정책 변화와 정당성, 개정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미국 윤리학자인 노먼 대니얼스와 제임스 사빈이 제시한 “합리성을 위한 책임(Accountability for Reasonableness)” 개념을 적용, 급여 문제를 논의하는 정당한 기관 절차를 마련하는 것 등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정책 관련 논의를 남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출발점이 될 겁니다. 모두가 정책을 연구할 필요는 없지요. 하지만 이런 논의가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같이 이야기해봐야 할 주제라는 점을 인식하는 데에서 문제 해결은 시작될 겁니다. 여기에서 의료윤리가 도울 수 있는 부분도 조금씩 늘어날 거예요. 논의를 명쾌하게 정리하는 일, 어떤 가치가 충돌하고 있으며 어떤 점에 호소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일이 의료윤리의 본령이니까요.

한국 의료 제도는 오랫동안 비용효과성 또는 ‘최대 다수의 행복’으로 표현할 수 있는 공리주의적 접근을 우선해 왔습니다. 하지만 다른 생각과 견해 또한 정책을 논의하는 데 있어서 고려해야 합니다. 숙련된 손을 우선하고 아름다운 구강을 빚는 일을 존경해 온 치과는 비용효과만을 우선할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는 어떤 가치를 내세울지 고민이 필요한 때입니다.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