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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의료수가

특별기고

최근 학회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근관치료 수가의 정상화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근관치료와 치주치료 및 예방치료는 자연치아를 살리는 가장 중요한 요체임에도 보험의 파이 논리에 묶여 저평가되어 왔고 그로 인해 치과의사들이 기피하는 진료항목이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결과적으로 일반진료를 하는 치과의사들에게 ‘성심진료를 택하자니 병원경영이 안 되고 기피를 하자니 의사로서는 껄끄러운’ 의료윤리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말았다는 데에 있다.

 

의료인은 남을 돕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에 대한 대가로 보수를 받는다. 의료인들이 의료행위를 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은 처음부터 봉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이상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학교 윤리교육 시간에 의사의 보수와 관련되어 학생들에게 늘 하는 네 가지 질문이 있다. 1. 낮은 보수와 양질의 치료 2. 낮은 보수와 저질의 치료 3. 높은 보수와 양질의 치료 4. 높은 보수와 저질의 치료 중 윤리적 순서를 매겨보라는 것이 그것이다.

 

1번은 프로정신의 면에서 보면 단연 최고일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허준이나 장기려 박사, 이태준 신부, 슈바이처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지금 우리 주변에도 많은 분들이 알게 모르게 의료인으로서의 재능을 아낌없이 기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서비스는 허준 시대나 순수 봉사 차원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현시대의 병원운영 측면에서 본다면 단 몇 달도 버티기가 어려울 것이다.

 

2번은 사회의료체제를 가지고 있는 국가에서 흔히 발생하는 수가 통제의 경우이다. 이는 의료인들에게 프로정신은커녕 최소한의 ‘proism(쟁이근성)’도 보장받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불행히도 우리나라의 시스템도 이와 유사해서 의사로서의 최소한의 자존감도 포기한 채 라면 값을 받고 불고기를 내라는 식의 반강제적인 인술을 사회로부터 강요받게 된다.

 

3번은 서구 자본주의국가에서 운용되는 시스템이다. 돈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싼 진료비를 받는다는 것은 오히려 의사들의 프라이드로 치부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proism이 형성되고, 그러나 높은 보수를 받는 만큼 최고의 시술을 베풀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논리에서 professionalism이 미덕으로 대두된다. 의료인이라면 항상 성심을 다한 진료서비스를 베풀어야 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고가의 치료비를 받는 것이 잘못된 일이 될 수는 없다는 논리이다.

 

4번은 받은 만큼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경우인데, 이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의료인으로서는 최악의 덕목이고 사회의학적으로는 범죄가 될 수도 있다. 어느 직업집단이나 마찬가지로 치과계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극소수에 불과하겠지만 언론의 부풀림으로 인해 모든 치과의사들이 손가락질을 받는다. 그래서 요즘 치과계에 윤리라는 화두가 자주 등장하고 비윤리적인 행위에 대한 제재와 교육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 홍성남 신부는 천주교 사제라면 떠오르는 ‘엄숙·경건·겸손·청빈’ 대신 역발상과 전복(顚覆)의 메시지로 유명한 분이다. 최근 펴낸 책의 제목도 ‘착한 사람 그만두기’ 이다. 사제 생활 10년쯤 됐을 때 심한 무기력증에 빠졌고 심리상담을 통해 그 이유가 신부로서의 당연한 책무인 ‘엄숙·경건·겸손·청빈’에 짓눌린 ‘착한 사람’ 연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홍 신부는 마음에 갈등이 생기면 술도 퍼마시고, 술 취하면 제단 앞에서 주정 기도도 한단다. 얼마나 솔직하고 인간적인 고백인가. 그래서 그의 책을 읽은 독자들은 열광한다. 특히 교회 근처를 다녀본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자신을 옥죄던 죄책감을 훌훌 털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음 내키는 대로 방종을 하자는 것은 물론 아니고 영성 생활의 참된 목표는 영혼의 자유로움을 얻기 위한 것이고 자유로워지려면 솔직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늘 신의 대리인으로서 ‘엄숙·경건·겸손·청빈’을 강요 당하는 종교인과 인술이라는 명목 하에 사회에 대한 무조건적인 봉사 책무를 강요 당하는 의료인은 비슷한 감정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좀 삐딱하게 얘기하면, 종교인이나 의료인이나 모두 현대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생활인들인데 사회에서는 도덕과 윤리라는 굴레를 씌워 이들에게 위선을 강요하는 것이다.

 

특히 의료인들은 일부 의료인들의 비윤리적인 행태가 언론에 과장보도 되면서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는 나름대로 윤리적으로 환자를 대하는 것 같은데 주위에서 자꾸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하루의 진료행위 중에서 모든 일에 윤리적이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은 나만의 고민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짐인 것이다. 특히 보험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의 의료인들에게 진료비와 관련된 치료계획의 수립은 누구에게나 목 안의 가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무리 현실이 어렵다고 해도 4번과 같은 모습이 국민들에게 비추어져서는 안 된다. 이것이 의료인들이 가져야 할 수가에 대한 최소한의 덕목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