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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선생님, 이(齒)를 해드려야 할텐데

수필

박용호 원장

 

박용호 치과의원 원장

대한치과의사문인회 회장(전)
한국문인협회 회원
치과신문 논설위원
치의학 박사
수필집 《와인잔을 채우다》

 

 

 

 

5년 전 어떻게 아시고 중1 때 영어 선생님이 찾아 오셨다. 호마이카 선생님. 노총각 대머리가 가구처럼 빛나 붙은 별명이었다. 교장을 끝으로 퇴직하셨다. 70대 중반 왜소하지만 단단하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부천에서 승용차 몰고 오셨단다. 끝의 어금니가 한 개 흔들리는 것 제외하곤 건강한 편이라 다시 한 번 놀랐다. 마모증 치료와 치석 제거를 하고 主訴인 동요치는 그냥 더 사용하시도록 권유했다.

 

선생님의 교육방식은 독특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 몸짓으로 연신 몽둥이를 휘두르며 발음 고저와 강약을 지도했다. 영어 한 과가 끝나면 무조건 외어야 했다. 공포의 암기검사 날이면 회초리를 들고 단체 암송을 시킨 후 교실을 누볐다. 입 모양 보고 버벅대는 학생들에게 여지없이 머리통을 내리쳤다. 학기 말에는 책거리로 영어 암송대회가 열렸다.

 

그는 ‘개념 있는’ 선생님이었다. 중2 여름방학, 만리포로 단체 해양훈련을 갔다. 저녁 백사장에서 급조된 긴 상 깔고 식사 중이었다. 그때 걸인이 나타났다. 아무 말 없이 갑자기 시커먼 영상이 우뚝 섰으므로 모두들 멈칫 놀랐다. 무슨 깽판 칠까 두려웠다. 가까이 있던 애들은 질려서 일어나 물러섰다. 치렁치렁한 새까만 군복, 턱수염에 무표정한 험상궂은 모습, 어깨 망태에 둘러맨 가재도구들. 소란하던 분위기가 갑자기 얼어붙었다.

 

다들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선생님이 일어서며 단호하게 지시했다.

 

“할아버지, 이리 앉으세요. 아주머니, 여기 한 상 차려 드리세요”

 

잠시 후 식사가 나왔는데 수저와 젓가락이 없었다. 각자 지참했기 때문이었다.

 

“다 먹은 사람 빌려 드려.”

 

불호령에 서로 눈치를 보다 한 애가 쭈뼛 내밀었다. 몇 끼 굶은 행색이었지만 노인은 정좌하고 당당히 먹었다. 다들 묵묵히 먹는 모습을 지켜봤다.

 

석양이 그를 감싸고, 음식의 숭고함이 빈부와 무례를 넘어 그의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왠지 숙연해지고 선생님의 대처가 멋있어 보였다.

 

선생님 점심을 모셨다. “제가 치과의사 된 것은 영어 기초를 잘 닦아준 스승 덕분입니다.”

 

흡족하셨는지 덕담을 하셨다. “인생 살다 보면 누구나 세 가지 만남이 중요하다. 부모와 스승, 그리고 부인인데 부모는 내 의지로 안 되니 결국 두 사람이 제일 소중하다”고.

 

“맞습니다.” 아무리 나이 들어도 그대 앞에선 제자였다.

 

선생님은 연례행사로 찾아 오셨다. 사모님을 동반하시기도 하고 당신이 데뷔한 수필집을 주기도 하셨다. 하루는 구강검사차 집 근처 다른 치과에 들르셨다며 방사선 영상을 스마트폰에 담아 오셨다.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동요치에 대한 걱정을 하셨다. 임플란트와 브릿지 보철에 대한 지식을 잔뜩 주입 받은 듯했다.

 

“급한 것 아니니 그리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발치만 하고 그냥 지내셔도 됩니다.”

 

“그래도 해야지. 임플란트는 무서워 못하니 보철로 해주시게. 진료비는 염려 말고 다 받아.”

 

과거 대학에서도 엄연히 했던 시술 방법이지만 사실 익스텐숀 브릿지는 삼중고에 시달린다. 치아 삭제의 힘듦, 임플란트 미시술의 미안함, 경제적 부담 등. 한번 세뇌된 부정적인 후유증에 대한 노파심은 어떤 설명에도 납득을 못하신다. 연세 드시면 치아 24개로도 충분하니 그냥 놔두시라고 했다.

 

임플란트 2개 보험은 전 박근혜 대통령의 깜짝 선물 공약으로 시작되었다. 너무 처음부터 큰 선물을 주어 국민의 공짜복지 근성만 키웠다. 그러나 전신건강 악화, 골부족, 불안‧우울증으로 적용 못 하는 환자들도 많다. 이런 경우 비귀금속 고정성 보철이 적절하건만 방도가 없다. 고급보철은 보험이 되고 저급보철은 보험이 안 되니 이런 딜레마가 없다.

 

이제 급여순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합금보철이 가능하도록 말이다. 비용이 따로 들 것도 없다. 임플란트 2개 대신 합금보철 6개도 선택 가능하도록 하면 된다. 협회가 임플란트 4개 확대 노력보다는 이게 더 현실적이고 형평성 차원에서도 급박하다. 나의 선생님에 대한 연민 때문만은 아니다. 보험이 되면 부담감 덜고 선생님 이를 해드릴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비급여의 급여화를 추구하는 문재인 케어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65세 이상에 한해 생각할 과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