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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수종 원장 영전에

추도사

여보게, 자네가 왜 거기서 내려다보며 내 절을 받는가? 


내가 늘 자네를 놀렸었지. 자네 그 돼지 입술에는 먹을 복이 주렁주렁 매달렸고, 돌아가신 부모님이 모두 90을 훌쩍 넘어 수(壽)하신 집안이니, 내가 못해도 10여 년은 자네 절을 받을 거라고… 그런데 이게 웬 청천벽력인가? 요즘 세상에 7학년은 노인정(老人亭) 총무도 안 시켜준다는데, 이렇게 갑자기 떠나는 법이 어디 있나?
삼신할머니가 빚어준 관상이 마음 쓰는 심상만 못하다는 말이 틀림없나 보네그려.
 
어릴 때부터 통 크고 담대하여 친구의 청을 거절 못하던 자네였지. 본과 3학년 때 학생회장 선거에 당선된 뒤, 서울대 총학생회장 때는 6·3사태 시위주동자로 구속당하고, 가까스로 무기정학으로 살아남았지. 명석한 맏형님 덕분에 그 몹쓸 놈의 연좌제에 물려 군 생활도 고생고생하지 않았는가.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들이 감탄한 달필(達筆)은 뛰어난 보철치료 솜씨로 이어지고, 강직한 책임감과 함께 환자들의 믿음을 얻어, 으능정이 알토란같은 땅에 치과의사들의 로망인 빌딩을 올렸지.


대전 지부장 때는 대담한 결단으로 부지를 사들여 지부 건물을 짓고, 협회 감사 때는, 보이지 않게 사비(私費)를 털어가며 건강보험수가 상대평가제 도입과 환산점수 개선에도 앞장섰지. 한국적인 현실을 직시한 후로는 정치의 꿈을 접고, 그 어렵고 매출(Gross)도 박한 전자제품 소재 접착제사업에 손댔다가, 몇 년 고생 끝에 대기업에 헐값에 넘기고, 빌딩까지 날리지 않았던가. 동료·후배가 부탁하면 선뜻 보증을 서주던 통 큰 배려는, 결국 눈 감는 그날까지 평생 자네를 옥죄는 업(業)이 되고 말았지 뭔가. 그 숱한 마음고생 속에 피해가지 못할 몹쓸 병마를 만났으니, 이게 모두 자네의 대인다운 심상(大人之心象)이 시대와 국운을 잘못 만난 탓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자네의 큰 발자취는 곳곳에 남아 있네. 회관 건물은 대전충남 치과신협의 탄생에 큰 힘이 되고 지금도 동료 후배들의 보금자리이며, 자네의 땀이 어린 빌딩은 금융회사 건물이 되었고, 개발한 접착제는 진화를 거쳐 국가 경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네. 당시 함께 꿈꾸던 보험수가 정책도 방향만은 변함없이 유효하다네.


그러니 이제 속세의 아픔과 어려움은 훌훌 털어버리게. 거기서 먼저 보낸 수씨(嫂氏)를 반갑게 만나고, 마음 편히 후배들과 지부 및 협회가 발전·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게나. 남겨둔 3남매야, 명석한 머리와 통 큰 배짱과 끈질긴 도전정신을 물려주었으니, 무슨 걱정인가? 뒷일은 다 잊어버리고, 그 세상에서도 구름같이 몰려들 친구·문객을 위하여 놀이방 하나 만들어 두게나. 평생 내기와는 담 쌓고 살아온 나지만, 거기서 만나는 날 꼭 끼어서 광이라도 팔아줌세. 부디부디 편히 쉬게나.

 

 2020. 1. 22. 
평생을 함께 걸어온 친구  임 철 중 疏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