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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長江) 문학기행(文學紀行)<3 ‧ 끝>

수필

동정호를 지나치니 삼국지의 본향인 형주고성(刑州古城)이 다가온다. 삼국시대 전략적 요충지였던 형주 시내 입구에는 거대한 관우의 동상이 세워졌는데 높이가 한 20m쯤 되는 것 같았다. 적벽대전 후 관우가 주둔했던 형주성은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으며 삼국시대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아직 석회가 개발되지 않아 쌀로 떡을 쪄서 모래와 섞어 시멘트처럼 벽돌 사이를 채우고 성벽을 쌓았다. 그래서 나중에 벌레가 먹어 수시로 보수공사를 했다고 한다.

                                                                                                                             
촉(蜀)과 오(吳)는 힘을 합쳐 적벽대전을 승리로 장식했으나 서로 형주를 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을 벌였다. 형주는 장강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중원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였다. 처음엔 촉의 영토였던 형주는 기습작전으로 오의 수중에 떨어지고 관우가 최후를 맞았지만 이후 60여 년간 서로 싸운다.

 

점점 강해지는 위(魏)를 앞에 두고 싸움을 계속하던 촉과 오는 차례로 멸망해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형주를 지나 만 하루를 더 나아가니 2011년에 완공되었다는 거대한 삼협댐(산샤댐)이 앞길을 가로막는다. 이 삼협댐은 높이가 130여 미터에 이르는 낙차를 극복하기 위해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다섯 개의 갑문을 거쳐 배가 상류로 올라가는 구조이다.

 

일단 배들이 갑문 안으로 들어가면 뒷문을 닫고 다음 갑문의 수위까지 물을 천천히 채운 다음 앞문이 열리면 다음 갑문으로 들어가서 또 물을 채워 올리는 식이었다.

 

세계 최대의 수력발전 댐으로 완공 전에는 세찬 급류 때문에 배가 다니기 어려웠는데 만수위에 이른 지금은 마치 잔잔한 호수처럼 항행이 편해졌다. 단번에 댐 상류로 배를 들어 올릴 수 있는 거대한 선박용 엘리베이터도 있지만 사용료가 계단식 갑문을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비싸다고 한다.

 

한 칸에 일만 톤짜리 커다란 배가 네 척씩이나 들어갈 수 있는 갑문 다섯 칸을 모두 통과하여 낙차 130m를 거슬러 올라가는데 12시간이 걸렸다.

 

댐 상류는 마치 호수처럼 잔잔하여 배의 흔들림이 거의 없었다. 석회암 바위로 이루어진 신비로운 비경과 코발트빛 물색, 수직에 가까운 주변의 절벽들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수백 미터나 되는 절벽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계곡 신녀계(神女溪)를 지나니 장강 삼협이 차례로 다가오며 그 장엄한 자태를 드러낸다.

 

장강 삼협은 하류로부터 후베이성과 중경시의 경계에 있는 45km 길이의 무협(巫峽), 길이가 70km에 이르는 서릉협(西陵峽)과 함께 길이는 8km에 불과하지만 100m 남짓한 강폭 양안에 수백 미터에서 1000m가 넘는 직벽과 산으로 둘러싸여 이태백이 이곳을 ‘기문천하웅(虁門天下雄)’이라고 칭송하였다는 천하절경 구당협(瞿塘峽)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강 삼협이 끝나는 지점에 말년의 유비(劉備)가 여생을 보낸 백제성(白帝城)이 있다. 백제성은 원래 육지로 연결된 벼랑 위의 성이었는데 지금은 장강 댐으로 말미암아 섬이 되어 기나긴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백제성과 중경 일대는 삼국시대 ‘촉나라’의 발원지이다.

 

 

촉(蜀), 또는 파촉(巴蜀), 촉한(蜀漢)은 중국 삼국시대에 전한(前漢) 경제(景帝)의 후손 현덕(玄德) 유비가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지역에 서기 221년에 세운 나라로 한때 티베트 지역까지 통치했었다. 중국 삼국시대가 정립(鼎立) 상태에 있었을 때는 왕국이 잘 유지되었으나 위(魏)와의 전쟁에다 환관 황호(黃晧)의 전횡까지 겹치면서 국력이 점차 쇠퇴하였다. 그러다가 263년 위나라의 공격에 항복함으로써 42년 만에 멸망하였다.

 

다음 날에는 장개석의 중화민국 초기 화폐에 등장했던 석보채(石寶寨;절벽에 붙여 세운 10여 층의 높다란 목제 불탑)를 거쳐 중경에 입항함으로써 11일 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끝으로 이번 문학기행 중에 쓴 자작시(自作詩)를 소개한다.

 

 

장강을 따라서    

 

                                                                                   김  영  진

                                                                               

등왕각은 왕발이요
이태백의 황학루라.
석양으로 거스르니
처연한 적벽인데
다가오는 동정호는
두보의 눈물인가…

 

삼국지 형주지나
웅대갑문 올라서서
강호를 넘나들고
신녀계 뒤로하며
서역만리 일엽편주
장강 삼협을 가른다.

 

창백한 만월은
절벽위에 외로운데
내 배는 고요히
은파타고 흐른다.

 

덧없는 인간사,
수만리 머나먼 길
파촉 땅 누벼 내린
강물 따라 스쳐간다.
                


※이 시를 두보시대의 성당시(盛唐詩)인 7언절구(七言絶句) 한시(漢詩)로 의역(意譯)했다. 

 

泛舟長江 過三峽              

 

                                                                                                   金  榮  臻


                                           

遊覽長江 遡及遊/  凄然赤壁 片鱗浮         
淚痕工部 洞庭水/  豪俠謫仙 黃鶴樓        
皎潔孤輪 臨絶岸/  雄渾三峽 壓華舟         
無常滅盡 人間事/  數萬里程 隋共流

 

 

범주장강 과삼협

 

유람장강 소급유/  처연적벽 편린부
누흔공부 동정수/  호협적선 황학루
교결고륜 임절안/  웅혼삼협 압화주
무상멸진 인간사/  수만리정 수공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