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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역병, 그리고 무명의료인의 비

특별기고

이전 세대는 '전쟁'을 겪었고 이번 세대는 '역병'을 겪고 있다. 모든 것이 혼란의 와중에 있다. 미국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전시 상황으로 규정하며 민간 기업에 마스크와 의료보호 장구를 생산하도록 요청하였다. 애플이 의료인용 안면보호대를 제작하고, 테슬라가 인공호흡기 제작에 참여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는가? 가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접하는 낯선 뉴스들이다.

 

위기의 상황에서는 누구나 가정을 먼저 지켜야 하는데, 얼마 전 의사 면허를 받고 공보의로 간 아들은 응급실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담당한다고 하여, '방호복을 입고 벗는 중에 어딘가 바이러스가 묻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떠나질 않는다. 부모 심정은 전쟁터에 총을 멘 장병이나 바이러스 검사를 위해 방호복을 입은 의사나 같다. 사지에 보낸 심정으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들의 어깨를 쓰다듬고 얼굴을 바라다본다.

 

의과대학에 근무하다 보니 코로나19 검체 채취를 위해 밤새 당직을 서는 교수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별도로 설치한 선별진료소에서 방호복을 입고 검사를 하는 과정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들 텐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처럼 자연스럽고 피곤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본다.

 

공보의 아들과 동료 의과대학 교수들이 코로나19 사태에 국민들을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치과의사인 나 또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이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멀어지려 할 때 가까이 다가가 인류의 질병을 해결하려는 의료인의 범주에 치과의사가 속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심전심이었는지 같이 근무하는 아주대 치과병원 구강악안면외과 이정근, 송승일 교수가 검체 채취에 동참하고 싶다고 자원하여 선별진료소 근무를 시작하였다. 구강악안면 영역의 독자성을 확보한 전문가 그룹이 위기의 시기가 왔을 때 의료 행위로 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이 나라 치과의사들이 코로나19 퇴치에 작은 기여를 시작한다는 시그널을 준 셈이 되었다. 그 후 여러 교수들이 동참하며 선별진료소의 검체 채취 의료인 명단에 치과학교실 교수진이 자연스럽게 합류하여 봉사하고 있다. 대학에 있는 교수진 입장에서 볼 때 현재 이보다 더 구체적으로 국민들을 위한 봉사가 있을까 싶다. 이분들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고 우리나라 치과의사를 대신하여 위험을 무릅쓴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여러 나라에 전쟁에서 다치거나 숨진 병사들을 위한 ‘무명용사의 비’가 있다. 이번 역병과의 전쟁이 끝나면 숱하게 크고 작은 상처를 당한 의료인들을 위한 ‘무명의료인의 비’가 세워질 수 있을까? 만약 세워진다면 국민들은 그들에게 생명의 빚을 진 셈이니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바라볼 것이다. 비록 현실에는 없지만 국민들의 마음속에 세워질 기념비에 벽돌 한 장이라도 얹는 마음으로 봉사하는 것은 시대적 고통에 동참한 증거로 남을 것이다.  

 

봄에 피어난 꽃을 쓰다듬거나 아파하는 동물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것 모두 '생명에 대한 경외와 애착'일 것이다. 의료인이 코로나19로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이 순간에 작은 봉사를 하려는 마음도 그와 같을 것이다. 우리 치과의사가 대한민국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 검체 채취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형태로 국민들의 생명을 지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할 것이고,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2020년 세기의 역병을 겪었던 역사를 읽으며 우리들의 봉사와 헌신의 흔적을 기억할 것으로 믿는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