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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이라는 솔루션

임철중 칼럼

해군 군의관 전역 후 초창기 충남대학병원 치과 과장을 맡고,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12시까지는 선친의 임 치과에서 교정환자를 진료했다.


대위 4호봉을 조금 넘는 박봉이지만, 동문 주니어 스태프들과 어울려 즐겁게 보낸 5년이었다.  오후 4시 외래가 끝나면 테니스로 땀을 흘리고, 병원 앞 슈퍼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에 이어 은행동 정종대포가 풀 코스였다. 

 

임상연구비 연 백만 원은 사실 생활보조금인데, 논문 제출이 의무였다. ‘구저부(口底部)에 발생한 피부양낭종(Dermoid Cyst) 적출 증례’를 써서 용감하게(?) CPC에 발표했다가, Skin Inclusion을 따지는 조직병리학 교수에 진땀을 뺐다. 

 

평소 큰소리 치는 내과는 직접 열어본 외과에 밥이요, 외과는 세포로 확인하는 조직병리에 밥이라는 속담과 나 자신의 한계를 실감하고, 다음부터는 주제를 치과 영역으로 돌렸다. 덕분에 남은 ‘하악 제3대구치 발육에 관한 X-선학적 연구’는 작으나마 보람 있는 논문이었다.


당시 성년 전후의 연령감정 수요가 많았다. 남자는 병역과 청소년 운동선수의 한계연령, 여자는 동갑이나 연하남을 기피하는 사회적 통념 탓이었다. 천여 장의 필름에서 제3대구치 발육상태를 10개 패턴으로 분류, 상당히 유의한 결과를 얻었고, 대학병원 치과의 연령감정은 신뢰도가 높았다. 조직검사를 의뢰하여 상당수의 악성종양을 잡아냈고, 구강병리 임창윤 선생님에게서 분에 넘치는 칭찬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업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인력 문제였다. 어렵게 TO를 확보해놓고 열심히 찾아봐도, 지방대학 교수 자리를 원하는 구강악안면외과의사가 없었다.


유학의 길은 널렸는데 자리를 비울 새가 없고 주말에도 쉴 수 없는 신세... 결국 문을 닫고 나왔다. 학교에 남은 친구들은 차를 굴리고 아파트 평수 늘리는 것에 선망 반 시샘 반이었으나, 수입이 늘어난 만큼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다. 불경기에 민감한 직업이 건축기사와 치과의사라고 한다. AI 시대에도 전망은 유리하다지만, 결국은 운영에 상하의 진폭이 큰 일종의 계약업(contractor)이기 때문이다.


낯선 경영문제 즉 직원 생계와 운영비와 세금 부담이 어깨를 짓눌러 그 좋던 술맛부터 달라지고, 익숙해지는 데에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인 공무원 임금 현실화는, 시작부터 부정·비리의 원천차단 차원이었다. 점차 개선되어 드디어 골목 개원의와 공직의 수입이 같거나 역전되기 시작한 시점은 2000년 전후로 안다. 공직의사와 개원의의 숫자도 비슷해졌거니와, 퇴직한 교수는 연금도 빵빵하고, 평생 배출한 제자들이 다투어 모셔간다. 이제는 개원가 쪽에서 공직을 부러워할 차례다.


코로나 이후 개원가의 경영부담은 설상가상으로 무거워졌다. 고 이종석 WHO 사무총장과 응급의학과 이국종 교수 등 영웅의 탄생으로 공직에 대한 시선이 많이 달라졌고, 코로나를 맞아 정은경 본부장과 권준욱 부본부장은 또 얼마나 보람 있고 든든한가?


그러나 이들이 관료사회에 서투른 전문직으로서,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때로는 면피용으로 소모되며 겪었을 어려움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치과 사회도 개원에 집착하지 말고, 시작은 다소 열악하더라도 공직에 눈을 돌릴 때다. 장기적으로 ‘공공의료 비중의 확충’이 대세라면, 후발주자로서 계약직·정규직 문제나 직급상 불이익을 무릅쓰고라도 교두보를 확보하자. 개원가는 지역사회에서 지평을 넓히는 데에 앞장서자. 지역보건소 임용권은 지방단체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때마침 출발한 치과의사윤리확립 특별위원회(위원장 김현풍 전 강북구청장)와 협회가 뜻을 같이하여 능동적으로 준비하고 있음은 반가운 일이다. 국립소록도병원의 오동찬, 부산진 보건소 김미자 선생처럼 훌륭한 롤 모델이 계신 것도 믿음직스럽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