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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과 파절

시론

오래전 조직학 강의시간이었던 기억이다. 트레이라고도 했고 캐러셀이라고도 부르던 둥그런 슬라이드 케이스를 하나도 모자라 두 세 개씩 들고 들어오시던 교수님께서는 마치 ‘치아와 치주조직이 찍힌 이 세상의 모든 광학현미경 사진은 물론 전자현미경 사진까지 너희들에게 모두 보여주마!’라는 기세로 한 학기 내내 그 기원과 조성과 구조를 부족함 없이 가르쳐주셨던 것 같다.


그토록 정교한 발생과 분화의 과정을 거쳐서 성장을 마친 완성품인 치아가 쓰다 보면 망가져서 못쓰게 되면 ‘여러분들’ -조직학 교수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너희들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셨다- 이 환자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정성껏 잘 치료하여 더 오래 쓰게 고쳐줘야 하는 거라고 하시면서, 기초과목 중에 임상과목의 중요함을 일깨우셨다.


비록 냉·난방이 부실하고 하나의 긴 널판으로 된 등받이도 없는 장의자에 대여섯 명씩 앉아 듣던 30여 년 전 구식 강의실이었지만, 그곳에 앉아있던 우리들에겐 구형 프로젝터에서 뿜는 전구의 열기와 냉각팬의 회전음을 배경으로 찰카닥 소리가 나며 나타나는 생전 처음 보는 영상들은 공부를 떠나 호기심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마도 그토록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롭고 재미있던 것은 흠집이나 균열이 없어 모든 것을 굴절이나 산란 없이 흡수하고 투과하는 젊은 영혼들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던 어느 날, 절대로 강의내용에서 다른 에피소드나 여담으로 흐르는 법이 없으시던 교수님께서 난감하다는 듯하다는 표정으로 감정을 담아 치아파절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아무리 보아도 이토록 섬세하고 완벽한 경조직은 없는데, 건강한 치아가 깨진다는 건 순전히 사람이 도가 지나치게 무리해서 사용한 결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이셨다.


그래도 파절이 일어날 상황에도 상아질이 법랑질을 잡아주고 교합하중에 충격흡수를 하는 덕에 깨질 치아를 금이 간 치아정도로 쓸 수 있게 하는 거라시며, 분화와 진화의 산물이든 조물주의 선물이든 균열이 보이면 잘 관찰하며 ‘여러분’이 잘 대처하라고까지 하셨다.


무릇 ‘깨진다는 것’에 대해 곰곰 생각해본다. 깨진 결과물을 일컬어 ‘파편’이라고 하는 바, 숙련된 석공이 쓰임에 맞게 신중히 설계하고 조심스럽게 잘라낸 ‘부분’과는 분명 다른 개념이다. 파편은 다시 조립하기 어려우며 파편의 파편들은 그 원위치조차 찾기가 불가능하고 어찌어찌하여 다시 붙여도 치아파절 증례에서와 늘 경험하듯 깨지기 이전의 견고함과 아름다움은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다행히도 파절의 전조로 ‘균열’이라는 현상을 자연은 허락했다. 파절을 막고자 하는 관심과 노력만 있다면 빛을 여러 방향에서 비추어 자세히 보면 방사선사진과 미세전산화단층 촬영기법으로도 안 보이는 균열선이 육안으로도 관찰된다. 균열이 모두 파절로 이어지진 않지만 대부분의 파절은 균열의 전조가 있음을 믿는다면 ‘균열’ 현상에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반년 넘게 지구촌을 우울하고 두렵게 하며 거주민들을 위협하는 코로나바이러스19는 사실 우리 인류에게 별 악감정이 없다. 다만 우리 인간들이 불편한 거고 그 불편함의 시작과 과정과 결과에 대해 차분히 주적을 인지하고 협력하여 문제 해결에 뜻을 모으지 못하고, 서로 잘잘못을 따지는 미숙한 태도에서, COVID19라는 질환의 증상, 그것보다 더 불편한 사람들 간의 병리적 관계라는 증상들이 파생되고 확산되고 있는 것이 마치 파절에 이른 치아와 같아 보인다. 아마도 지구촌엔 이러한 현상의 파생과 확산이 예정된 수많은 균열들이 있었던 듯하다.

 

‘어찌 평생 매일 씹어대는 치아에 균열이 없으랴는 말’엔 누구나 공감해도 내 이가 밥먹다 부러지면 놀라워하는 게 사람이듯, 개인이든 집단이든 복잡하게 얽힌 딱한 사정 많은 사람들 모여 사는 세상의 피할 수 없는 균열이라 공감한다면, COVID19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은 바이러스의 구조와 거동보다 우리들의 관계에 발생되어 있는 ‘균열’에 더 시각을 맞추어 반성하고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폭동은 인종과 계층갈등이라는 오래된 균열 위에 COVID19 확산이라는 균열전파(crack propagation)요인으로 극도로 휘발성 조건이 조성되었고, 때맞춘 5월 25일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불꽃을 당겨 발생된 사건임은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코로나 사태’로 뭇매를 맞은 박쥐는 이 지구에서 5천만 년을 살아오며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우리가 박쥐보단 낫겠지만, 침팬지와 유전자가 1.7%밖에 다르지 않다는 인간이, 한 가닥 염기서열로 제멋대로 날뛰는 RNA바이러스의 변이를,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푸른곰팡이에서 우연히 페니실린을 발견하여 구원과 같은 항생제시대를 열었던 행운으로, 조만간에 쉽게 제압할 수 있을까 우려되지만 의학계를 믿고 기다려야 할 일이다.


백신개발과 치료법의 발전도 중요하겠지만, 우리 내부의 약점들이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종보다 더 치명적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들이 스스로 만든 서로 간의 균열들은 코로나의 공격을 몇 배 더 상승시키기 때문이다. 복잡한 게 사람이고 사람들 간의 관계는 더 복잡한 것이지만, 이건 정말 인류의 건강과 누구의 생존 여부의 문제를 넘어 인류 전체 소멸 여부의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임을 기억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침팬지보다 낫다는 1.7%의 유전자배열 차이가 실로 최상위 영장류답다는 명제를 증명할 수 있도록 공의로운 생각과 진실된 말과 아름다운 행동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더 나아가 우리 모두를 지킬 시점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