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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의 요강

Relay Essay 제2411번째

치과대학 예과 1학년 때이니 지금으로부터 족히 30년은 다 된 옛날 이야기이다.


예과 1학년생으로 처음으로 진료 봉사를 갔다. 가운을 입었으나 아는 것은 하나도 없는 예과생으로 주로 기구소독이나 안내 등 잡다한 일을 할 때인데 본과 선배가 석션통의 피빠케스(그당시엔 그 유리병을 그렇게 불렀다)를 버리고 오란다.


여름이라 선풍기만 몇 대 돌리는 초등학교 교실 임시 진료소에서 타액과 혈액이 뒤엉켜 부패하고 있는 그 피빠케스 유리병을 그것도 시골 초등학교 재래식 화장실에 버리고 오라 하니 안 할 수는 없고, 내 소변도 손에 닿으면 몇 번을 씻는 성격인데 이걸 억지로 버리고 오니, 30도가 넘는 폭염에 비위가 상해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마져도 깨끗이 닦지 않았다고 또 한소리를 들었다. 그때 참 내가 왜 이걸 여기서 하고 있나 하면서도 말도 못하고 부지런히 비우고 닦던 기억이 난다.

 

어머님이 구순이 넘으신지 두 해가 더 지나셨다. 8년 전 건강검진 도중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경과 진단을 받고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으셨다. 그때의 그 낙담과 황망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앞으로의 걱정과 안타까움에 치매 관련 책도 사서 읽고, 의과 선배에게 조언도 얻고, 누구에게 말도 못하는 답답한 마음에 같이 점심모임을 갖는 동네 치과계 선배에게 위로도 받았다.

 

그나마 아주 초기에 발견되어 지금까지 은행일도 보시며 잘 버텨오셨는데, 올해 들어 그 증상이 심해지셨다. 그러다 보니 몇 년 전 압박골절로 허리를 다치셨으니 요강을 사용하시라 해도 자존심 상한다 하시며 사용을 안 하셨는데, 작년부터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으셨는지 사용을 하시다 올해부터는 그 요강 비우는 일마저도 깜박 깜박 하시게 됐다.


상황이 이러니 어머님의 요강을 취침 전 갖다 드리고 낮에는 잘 비우고 치우시는지 확인하는 것이 내 하루 일과의 끝이요 시작이 됐다. 그러나 가끔 요강 비우시는 것을 깜박 하시면 내가 비워 드리는데, 올해 처음 비울 때는 코도 막고, 왠지 더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다 번뜩 생각해 보니 어머님은 나를 낳아 키우시며 내 대소변을 더럽다 생각 않으시고 다 처리하셨고, 평생을 막내아들 걱정으로 끝임 없는 사랑을 주셨는데, 봉사한다 다니면서 남의 피빠켓스는 치우면서 어머님의 요강을 비우는 순간 더럽다 생각한 내 자신이 부끄럽고 죄송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내리사랑이라 하더라도 순간 든 내 생각의 부족함과 죄스러움이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언젠가 동문회에서 선배 누님의 친정 어머님이 백수를 바라보신다며, 자신은 그 친정어머니의 존재 자체가 자신에게 자부심이요,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과 표본이라 자랑스럽다 하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막내아들인 나를 39세에 낳아, 폴리오 예방주사를 맞혔으나 소아마비 장애로 마음 아파하시며, 기르시고 가르치시고 사랑으로 보살펴 주신 우리 어머님, 지금은 알츠하이머로 여러 기능이 저하되고, 아이가 되셔서 주변의 손도 많이 가고, 어떨 때에는 힘들게도 하시지만 아직도 어머님이 살아 계시는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고, 지금도 ‘몸도 약한 것이 하루 종일 허리 굽혀 남의 입 들여다보며 일하는 것 생각하면 잠이 안온다’ 하시며 아들 걱정을 반복하시는 어머님의 사랑에 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어머님! 제가 더럽다 생각하지 않고 어머님 요강 계속 비워 드릴 수 있게 이렇게라도 오래오래 사세요. 그리고 지금까지 키워주시고 걱정해 주시는 것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어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