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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조무사 접착제 제거 지시 치과의사 ‘무죄’

법원 “치과위생사 고유 업무 침해 아냐”
1년 간 법정 공방…2심서 무죄판결 확정
“정부 표적·부당실사 관행 깨져야”지적도


치과의사가 간호조무사에게 임시 접착제 제거를 지시한 행위에 대해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려 주목된다. 


간호조무사의 임시 접착제 제거 행위가 치과위생사의 고유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판결의 주요 취지였다.


경기도 지역 개원의 A 원장은 지난 1년간 먹먹했던 가슴을 이제야 쓸어내렸다. 지난해 말 형사 소송에 휘말리면서 치열한 법정 공방 끝에 최근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검사가 상고를 포기하면서 사건이 마무리됐다.


지난해 여름 간호조무사에게 임시 접착제(Temporary Cement) 제거를 지시한 게 소송의 불씨였다. 검사 측은 해당 간호조무사가 불법적으로 치과위생사의 고유 업무를 했다는 점을 들어 A 원장을 기소했다.


죄가 인정될 시 A 원장은 벌금 100만 원, 면허 정지 2주, 영업 정지 3개월의 혹독한 행정 처분을 받을 처지였다. 처음 그는 “법정 공방을 벌이며 오랜 기간 시달리느니 그냥 받고 말지”하는 심사였다.


그러나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었다. 보건복지부, 심평원, 공단 등이 이전에 행정 처분을 받은 병원 위주로 현지실사를 나가는 관행이 있다는 소문까지 접하면서 A 원장의 고민이 늘어갔다. 이에 그는 차분히 법적 싸움을 준비해 나갔다.


준비 과정이 녹록지만은 않았다. 치과계 지인 대부분이 “유죄를 받을 것 같다”며 부정적 전망을 내놓은 것도 그의 어깨를 움츠러들게 했다.


# “임시 접착제, 부착물로 볼 수 없어”
하지만 이번 사건을 맡은 김근재 변호사는 A 원장의 무죄를 예상했다. 문제가 됐던 간호조무사의 행위가 의료기사법상 치과위생사의 고유 업무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 의료기사법 제2조 제1항에 명시된 치과위생사의 업무 중 하나로 ‘임시 부착물의 장착 및 제거’가 있다. 검사도 이 점을 문제 삼아 기소한 것이었는데 김 변호사의 주장은 달랐다. 임시 ‘부착물’과 ‘접착제’는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 변호사는 “형벌은 법의 울타리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헌법의 대원칙 중 하나인 죄형 법정주의가 바로 그것”이라며 “의료기사법에는 임시 부착물과 관련한 행위가 명시돼있을 뿐 접착제에 대해선 명시된 바가 없기에 처벌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A 원장도 김 변호사를 믿고 법정 공방을 진행해나갔고, 1심에서 무죄 판결을 얻어냈다. 검사가 불복하며 싸움이 길어졌지만 2심 재판부가 항소를 기각하고, 검사도 상고를 포기하면서 최종 무죄로 사건이 매듭지어졌다.


1심 재판부는 “임시 접착제는 부착물로 볼 수 없고, 또 부착물의 정의를 넓게 해석한다면 죄형 법정주의 원칙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며 “따라서 간호조무사의 임시 접착제 제거 행위가 치과위생사의 고유 업무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범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 역시 “간호조무사가 보철물을 고정하는 과정에서 치아 바깥으로 흘러나온 임시 접착제 일부를 떼어낸 것일 뿐”이라며 “해당 행위는 구강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없으며 치과위생사의 고유 업무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 “명확한 근거·자신감 갖고 대처해야”
A 원장은 이번 무죄 판결을 한 개인의 일화로 남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치과 개원의가 법에 명시되지 않은 의료 행위로 형사 소송에 휘말린 후 제대로 법적 당위성을 따져보지 않고 포기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A 원장은 “치과 전문 지식이 너무 많은 점이 오히려 족쇄가 되는 경우가 있다”며 “소송에 휘말리더라도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봐 줄 법률가의 조언을 받는 게 좋다”고 언급했다.


다만 이번 판례가 법에 명시되지 않은 의료 행위에 대해 치과의사들이 경각심을 늦춰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돼서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유사 사례에 대한 기소가 현재도 이뤄지고 있고, 무죄 판결이 나더라도 소송에 휘말린 이후의 시간적·정신적 부담은 치과의사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법에 명시돼 있지 않은 의료 행위에 대해서는 죄의 유무를 세세히 살펴야 한다”며 “다만 A 원장과 유사한 사례로 법적 처벌 위기에 처하더라도 명확한 근거와 자신감을 갖고 싸울 필요는 있다. 이번 판결이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법적 처벌을 받은 의료기관 위주로 정부 기관이 표적 실사를 하는 등 불합리한 관행에 대해서는 협회 차원에서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최유성 경기지부 회장은 “정부기관의 부당한 현지실사로 인한 피해 사례가 있는지 협회 차원에서 조사해주길 바란다”며 “또 현행 의료법·의료기사법의 문제점을 분석해 회원의 권익을 보호하기 하기 위한 연구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이석곤 치협 법제이사는 “법적 처벌과 행정 처분에 이어 표적 실사까지 하는 것은 동일 사안에 중복 처벌이 행해지는 것으로 보여 부당하다”며 “회원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관련 사례를 수집 후 정부 기관과 만나 문제를 개선할 수 있도록 하겠다. 회원들도 협회 측에 지속해서 의견을 개진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