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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에게 필요한 스토리

Relay Essay 제2427번째

주제가 자유라는 수필 의뢰를 받고 글 재주가 없는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쓸까 매우 고민이 되었다. 나는 감염관리전문회사의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1년은 모두에게 충격이었겠지만 내게도 큰 충격이었고 감염관리회사 연구원으로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한 해였다. 그래서 코로나19와 나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우리 일상 사방천지를 둘러싸고 있는 코로나 스토리에 모두들 지쳐 있을 것 같아 오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써 볼까 한다.


최근에 유튜브에 온라온 강의 하나를 들었다. 주제는 ‘내 아이의 뇌에 어떤 스토리를 심어줄 것인가?’ 였다. 아이의 뇌 속에 어떠한 스토리를 만들어 주느냐에 따라 아이가 살아가는 힘이 달라진다는 내용이었다. 부모들이 많이 하는 실수 중에 아이의 강점을 살려주기 위해 아이가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해 부모 스스로가 믿는 스토리를 아이에게 강요한다는 것이다. 내 뜻대로 잘 따라오던 아이는 사춘기를 기점으로 스토리를 벗어나게 되고 부모는 내 스토리 안에서 벗어난 아이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는 강의 내용이었다. 내게는 초 3부터 사춘기를 겪고 있는 것 같은 13살 아들이 있다. (선배 부모들은 사춘기는 시작도 안했다는 절망적인 팩트로 나를 좌절하게 하지만...) 오늘 나는 아이와 내가 겪은 코로나 1년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아이는 6살부터 축구를 했다. 곧잘 해서 우리는 아이에게 축구 스토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횟수로 8년을 계속 해오고 진로도 축구 쪽으로 방향을 잡고 준비해왔는데 아이가 올해 초 ‘축구 그만할래요’ 라고 말했다. 그만하려는 이유를 물으니 ‘축구를 계속해서 내가 행복할 것 같지 않아요’ 였다. 사실 어이가 없었다. 아이 인생의 방향이 흔들리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행복할 것 같지 않다는 아이의 말에 축구를 그만하는 것에 두말 않고 멈췄다. 돌아보니 아이는 오랫동안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참고 해왔던 것 같다. 아이는 회복이 필요했고 나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나는 가끔 힘들고 지칠 때 나를 일으켜주는 몇몇 기억들이 있다. 특히 폭풍 같은 20대를 잘 살아내게 해준 기억이 있는데 6살부터 9살까지 살았던 시골에서의 기억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산으로 들로 뛰어다닌 기억… 요즘 아이들에게 이런 기억은 쉽지 않다. 나는 그 기억을 아이가 갖게 해주고 싶어 캠핑, 여행을 자주 다녔지만 사실 직장을 다니면서 역부족이었다. 코로나로 학교도 안 가고 축구도 그만두었고 아이를 바닷가 외갓집에 보냈다. 그렇게 7개월 등교수업이 있는 때가 아니면 아이는 그곳에서 최소한의 학습(e-학습터와 약간의 온라인 학습)만 하며 외삼촌과 바다를 돌며 낚시를 하고 3계절을 보냈다. 축구를 그만 둘 당시 극도의 긴장 속에 하루하루를 보낸 탓인지(초등학생이지만 훈련이 매우 고되었다) 사춘기 탓인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같았던 아이는 지금 아주 편안해 보인다. 툴툴거려도 엄마를 살뜰히 챙기는 따뜻한 아이가 되어가고 있다.  진로의 방향이 바뀌고 학원도 전혀 다니지 않고 산으로 바다로 시간을 보낸 아이가 시간이 지나 어떻게 살아갈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주변 지인들은 지금 아이들은 초등 6학년이면 적어도 중3 수학까지는 해놔야 한다고 걱정을 한다. 나도 부모이니 걱정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었지만 아이는 축구를 놓는 과정에서 인생 처음으로 역경과 좌절을 겪어내야 했을 것이다. 어둡고 날을 세웠던 아이는 밝고 긍정적으로 변했다. 그래서 당장 중3 수학을 할 줄 몰라도 괜찮다. 나는 믿는다. 당장 중3 수학은 못 풀어도 살아가는 날들에 또 넘어야 할 산들이 생길 때 아이가 코로나 덕에 이 긍정의 시간들로 즐겁고 지혜롭게 그 산들을 타고 넘을 것 이라고… 올 한 해가 아이의 뇌에 인생의 꽃을 피울 긍정의 스토리의 씨앗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