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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없는 신문 - 러시모어의 위인들 2

임철중 칼럼

춘추 전국시대는 주(周)의 쇠퇴에서 진(秦)의 통일까지 550년간이다(770-221 BC).


봉건제도의 약화로 사회는 극도로 혼란하였으나, 무수한 영웅호걸이 종횡무진 활약한 무대요, 뛰어난 학자가 온갖 사상을 꽃피우고 결실시킨 백가쟁명의 시대였다.


명국에 묘수 없고 묘수는 난국(妙手·亂局)에 나온다는 바둑격언은 과연 명언이다.


문명사회의 묘수란 바로 춘추전국시대 같은 혼란기에 나타나 역사의 흐름을 바꾼 불세출의 영웅과 천재 아닌가? 서구사회에서는 르네상스 시대에 백과사전적 천재가 많았고, 프랑스대혁명 전후 루소로부터 나폴레옹까지 현인과 영웅들이 등장한다.


전제군주의 눈으로 본다면 프랑스대혁명의 시작은 미국 독립전쟁의 ‘모방범죄’였다.  형 미국은 자유민주주의공화국 건설의 외길을 곧장 걸어갔고, 아우 프랑스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유럽 제국에 혁명을 수출하려는 열정과 이에 결사 항전하는 전제군주들의 충돌로, 제3공화국이 서기까지(1870) 파란만장한 드라마를 연출한다.  따라서 프랑스 혁명의 영웅들은 80여 년에 이르는 부침과 명멸(浮沈·明滅)로 인하여, 잘 잘못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고 국민의 애증도 교차한다.  이에 비하여 미국 건국의 아버지(Founders of the Nation)는 4명의 대통령을 포함한 7인 정도로, 평가가 거의 일치한다.

 

토마스 제퍼슨은 국부 7인의 한 사람인 벤저민 프랭클린과 함께 백과사전적인 인물이었다. 수많은 공공건물을 설계한 당대 최고의 건축가요 뛰어난 과학 농(農), 발명가이자 바이올린 주자였으며, 그의 도서관은 미 국회도서관의 모체가 되었다.


독립선언문을 썼고 프랭클린과 함께 헌법 초안을 작성했으며, 제3대 대통령 시절 루이지애나 매입으로 영토를 두 배로 확장하였다. 복잡한 영국 화폐제도(Coinage) 대신 합리적인 10진법을 도입하고(1달러=100센트), 장자나 자손의 상속 대신 원활한 토지활용을 입법화했으며, 노예무역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그의 이상(理想)인 “잘 교육받은 시민(well-educated citizenry)”은, 국민을 우중(愚衆)화 하려는 포퓰리스트 독재자들에 대한 경종이 되었다. 퇴임 후에 버지니아 대학을 설립, 초대 총장으로 취임한다. 독립선언문에 밝힌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all men are created equal) 자명한 자유의 신념(self-evident freedom & liberty)은, 87년 뒤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에 다시 한 번 강조되면서, 세계민주주의의 기본적 개념이 되었다.


전대미문의 연방정부 수립에 가장 큰 쟁점은, 연방의회(U. S. Congress)의 권한이 너무 강하면, 13개 주에서 자치적으로 살아가는 시민의 기본권(Civil Rights)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작은 정부의 신봉자인 제퍼슨을 필두로, 시민권의 보호를 위한 수정헌법 10개 조항, 즉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 제정되었다. 언론·종교·무장 및 공정한 재판을 받을 자유가 망라되었다. 제퍼슨은 명실 공히 미국 정신을 설계한 선구자였다(Molded American Spirit & Mind).

 

세계 최초의 자유민주국가가 탄생하는 진통 속에서, 의견차나 다툼으로 정적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했다. 그러나 240여 년 전의 사실을 21세기 시각으로 물어뜯는, 진보의 탈을 쓴 덜 떨어진 인간들의 코미디는, 왠지 낯이 익다. 예를 들면, 만민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면서 자신은 노예 80명을 거느렸고, 여자노예와 아이까지 낳은 이중인격자라는 비난이다. 소문으로 전해진 아기는, 엄마와 함께 잘 살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당시 미국의 주력산업은 농업이요, 주 농경 형태는 대형농장이었으며, 대형농장의 기반은 흑인노예의 노동력이었다. 노예는 영국이 운영하던 삼각무역의 한 축인 수입상품이었고, 제퍼슨이 재임 중 통과시킨 노예무역 금지법이, 60여년 뒤 링컨의 노예해방으로 결실 되었으므로, 비난은 고사하고 시대를 앞서간 위인으로서 칭송받아야 한다. 제퍼슨의 어록 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다음의 글로 마무리 한다.


“나는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 언로는 언제 어디서나 열려있어야 하기에, 권리장전 첫 머리에 ‘Freedom of Speech’를 못 박은 것이다.
말문이 막히면 주먹을 휘두르듯, 열등한 자가 언론을 핍박한다. 언론에의 재갈은 코로나19와 같은 ‘공공의 적’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