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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장! 이번에 내가 손실장 자르려고 했어~

Relay Essay 제2433번째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아들 셋까지 재운 뒤, 워킹맘인 나는 책상에 앉는다. 보다가 잠들게 뻔하지만 그래도 보겠다고 책을 펼치는데... 순간 뇌리에 꽂힌 이 말... ‘손실장, 이번에 내가 손실장 자르려고 했어~!’ 오늘 오전에 원장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일한지 두 달 만에 내 목이 날라갈 뻔 했다. 사연을 말하자면 두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리 원장님은 대학병원에서 작년에 정년 퇴직하신 후 처음으로 개원이란 걸 하셨다.


나는 경력도 짧고, 나이는 많고, 아들이 셋인데 막내는 돌쟁이라는 악조건 속에 집 근처 오분 거리에 치과가 오픈한다는 구인글을 보고 면접을 보러갔다. 나의 악조건에도 1차 면접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원장님이 검색해보면 나오는 유명한 분이시며, 후원회 활동도 활발하게 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집에 와서 생각했다. ‘그렇게 유명하시고 훌륭하신 분이...왜 강남이 아닌 의정부에 치과를 차렸을까? 나의 악조건도 마다하지 않고 이따 원장님과 2차 면접을 보자고 하셨는데, 혹시 후원회명목으로 사기(?)는 아니겠지...설마...’


나는 2차 면접에 원장님을 직접 뵌 후에야 사기가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원장님 얼굴을 면접으로 직접보기는 처음인데 10초 만에 허무하게 끝났다. 내 얼굴을 몇 초 보더니 당장 면허증부터 내놓으라고 하셨다. 


‘휴~취직했다. 나를 뽑으시다니...인품이 훌륭하신 분이 틀림없다.’
나중에 사기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품었다 말씀드렸더니 원장님은 박장대소하시며, 두고두고 나를 놀리셨다. 내가 생각해도 기가 차다. 원장님은 사람을 몸으로 느끼신단다.


그렇게 나는 여기서 일을 시작했다. 어느 개원가나 다 그렇듯이 첫 한 달. 정말 힘들었다. 원장님도 평생 처음 해보시는 것 투성이라고 하셨다. 오죽하면 송금이체 하나를 하기 위해서 같은 은행에 3번을 넘게 가셨을까... 심평원에 의료장비 신고때문에 심평원 직원과 씨름 할 때는 나 대신 큰 목소리로 싸워도 주셨다.(내가 만난 원장님들 중에 목소리가 제일 크시다.) 그렇게 우리치과는 하나씩 헤쳐 나가며 정리가 되는 듯 보였다.


우리 원장님은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이시다. 내가 경험한 외과는 사랑니 발치나, 임플란트 수술, 상악동거상술이 전부인데 원장님은 구강뿐 아니라 얼굴에 할 수 있는 수술은 다 하신다고 한다. 슬슬 걱정이 앞서던 어느 날 전신마취 수술이 잡혔다. 대학병원 수술방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우리가 어찌 준비를 할까... 처음엔 수술기구들을 둘러보시더니, “이거면 돼~이거 이거면 됐어. 충분해~” 하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필요한 게 하나둘씩 계속 늘어난다. 처음 보는 기구에 낯선 명칭들, 원장님이 기관총이라고 부르는 주 수술기구들과 뭔지 모르는 기계들까지... 사고 알아보고 또 사고, 전신마취기계에 응급처치함, 약품들까지... 내가 다니는 OOO내과보다 우리가 약품이 더 많은 것 같다. 수술 2일전, 이대로는 수술을 못할 듯 싶어 남편한테 늦는다고 얘기하고 야근을 자청했다. 수술방 정리하고, 약품 공부하고 동선에 맞게 세팅하고, 멸균 돌리고, 수술과정에 맞게 시뮬레이션까지 그렇게 우리는 10시까지 준비했다. 수술 전날 집에 가려는데 가스멸균기가 에러가 나면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더니 다음날 사단이 났다.


당일 아침, 우리는 어설프지만 준비를 마쳤고 환자는 도착했으며 마취과 선생님도 분주하게 준비를 하셨다. 그런데 라린고스코프에 들어갈 건전지부터, 마취기계의 가스까지 연달아 문제가 터져 나왔다. 그렇다. 원장님은 다 차려놓은 수술방만 보셨지. 기계에 뭐가 들어가는지도 모르시는 거 같다. 하나도... 그 후에도 이어진 사건들...


그 후에도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렇게 우리는 그날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 전신마취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난 입시를 치룬 기분이었다. 원장님은 마치 달 착륙 첫 걸음 같다고 하셨다.


결국 늦게 수술을 시작한 덕분에 저녁 8시가 돼서야 나는 집에 돌아갔다. 나는 남편과 대판 싸웠다. 힘들게 일하고 들어간 나에게 남편은 직장을 다시 알아보라며 제안 아닌 경고성 메시지를 던졌다. 나는 내일과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그 사람이 원망스러워, 나가라고 했더니 정말 나갔다. 며칠 뒤 분위기를 감지한 원장님은 책임감을 느끼시고 매일 남편이 들어 왔냐 물으셨다. 그런 원장님께 죄송스러워 나는 남편과 화해했다. 


그리고 남편이 쉬는 날 아이들의 구강검진 차 애들을 데리고 치과에 왔다.


원장님은 모든 게 처음이라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겨 늦게 끝났음을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하시면서, 내가 센스 있고 명랑하고 친절하다며 결혼 잘했다, 굉장히 열심히 일하고 재주가 많다고 남편에게 대놓고 칭찬을 해주셨다. 앞으로는 늦게까지 근무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남편이 계속해서 들어오지 않으면 나의 가정을 위해서 최후 방법으로 이 방법을 쓰시려고 하셨다고 한다.


“손 실장! 이번에 내가 손실장 자르려고 했어~하하하하하”
나는 남편과 백년해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쌍의 원앙처럼...


원장님의 농담반 진담반 말씀에 등에서 식은땀은 나지만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 감사했다. 인품도 어찌나 훌륭하신지, 거래처도 부도덕한 행동을 한 대표의 회사 제품은 구매를 지양한다. 쉽지 않은 일이기에 원장님의 그런 소신을 나는 존경한다.


대학교를 두 번 나온 덕에 원장님이 시키시는 디자인 업무와 치과 업무 등 나의 정체성에 혼란은 오지만 넘치는 일마저도 감사하다. 매일 매일이 새롭고 배움은 재미나고 내일이 기대된다. 오늘 대기실에서 원장님과 같은 소파에 앉아있던 환자분이 이렇게 말했다. “원장님, 우리동네에서 치과 열어줘서 감사해요.”  


나도 원장님께 이 자리를 빌어서 말씀드리고자 한다. “원장님, 여기에서 개원하셔서 감사드려요~. 저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