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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가 무조건 문제이기만 할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25)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이전에 칼럼에서 비대면 진료를 다룬 글을 보았습니다. 그때 비대면 진료는 환자와 의료인의 관계를 축소하기 때문에  문제라고 적으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원격의료는 의료의 디지털화와 함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 것 같고, 마냥 반대하는 것도 능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원격의료에 관해 좀 더 살펴볼 부분은 없을까요? 익명
 

예, 말씀 주신 것처럼 2020년 6월 칼럼에서 비대면 진료가 지니는 윤리적 한계를 지적하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제가 배움이 짧아 원격의료와 원격진료, 비대면 진료라는 표현을 혼용했는데 이 때문에 제가 스스로 논의를 한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용어를 명확히 구분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원격의료란 의료인이 다른 기관, 지역에 있는 의료인이나 환자에게 의료 서비스를 진행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이 중, 의료인 간 원격의료는 의료법 제34조에 의해 허용되어 있습니다. 원격진료는 환자 대상 진료행위를 의료인이 원격으로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환자-의료인 간 원격의료의 전부는 아닌데, 의료 서비스의 범위는 진단, 처치, 처방, 모니터링 등으로 넓기 때문입니다. 이 중 의료인이 원격으로 환자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것을 원격모니터링이라고 부릅니다. 환자-간호사 사이에 이뤄지는 원격간호나 환자-약사 사이에 이뤄지는 원격조제도(물론, 국내에서 약사는 의료인이 아닙니다만) 원격의료에 포함할 수 있습니다.

 

한편,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 진료라는 표현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언택트’와 ‘비대면’이라는 표현이 사회 전반에서 유행한 것도 있지만, 의료법이 의료인에게 직접 진료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격진료가 간접 진료가 아님을 표현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의료법 제17조는 직접 진찰한 의료인만이 진단서 등을 발부하도록, 제17조의2는 직접 진찰한 의료인만이 처방전을 교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직접 진찰’의 의미를 주제로 논쟁이 있으며, 대법원은 직접 진료에서 대면의 필수성 여부를 때에 따라 달리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면 여부가 쟁점이 되는 것은 확실하며, 따라서 비대면 진료는 직접 진찰의 특수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전 칼럼에서 문제 삼았던 것은 원격진료입니다. 물론, 윤리가 현실의 변화를 항상 담아내기는 어렵고, 원격진료가 새로운 형식의 환자-의료인 관계를 만들어 낼 가능성도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원격진료가 이뤄지려면 처음부터 어떤 의료적 관계를 목표로 하는지 명확히 하고 제도를 만들어 가야 하는데, 지금까지 논의는 기술적 측면에만 국한하여 진행되었기에 이런 부분을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원격진료는 의료영리화와 동의어가 되었죠. 이미 작동하고 있는 진료체계에 영상 장비, 진단 장비, 환자 연결 플랫폼과 보안 기술을 추가하는 것은 비용을 상당히 상승시킬 텐데, 외국처럼 의료 접근성이 낮은 경우엔 이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도입을 검토해야 할 수 있으나 한국은 일부 도서 지역을 제외하면 병·의원 접근이 쉽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런 기술과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기업이나 대형 병원만이 원격진료를 시행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의료의 자본 집중이 강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원격의료에서 원격진료가 아닌 다른 영역도 같이 취급할 것인지는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당장 치과에서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치과에서 원격진료는 어렵습니다. 드문 경우가 아니라면 치과 치료는 치과의사의 손을 거쳐야 하므로, 원격진료로 진행되기 어려운 탓입니다. 구강 내 궤양이나 종창 등을 감별진단하는 것도 화상을 통해서 진행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에, 원격진료가 큰 의미로 다가오진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치과는 이런 이야기와 상관없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는데요.

 

하지만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생각해 볼까요. 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인, 장애인의 경우, 치과의사의 지도 아래 치과위생사가 구강 위생 관리를 하면 삶의 질은 상당히 올라가게 될 겁니다. 하지만 치과의사가 방문 진료를 하기는 어려운데, 치과의사는 고급 인력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방문 진료를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은 치과의사에게도, 시설에도 서로 부담이 됩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부분은 봉사 활동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고, 지속성이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 질을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

 

여기에 원격의료를 도입하면 어떨까요? 이런 부분은 의료인 간 원격진료라고 보아도 좋고(치과의사가 치과위생사를 원격으로 지도하는 것이므로) 환자의 질병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것이니 원격모니터링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에 원격 기술을 도입하여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또, 공적 영역에서도 고려해볼 만한 부분이 충분히 있습니다. 도시와 시골의 치과의사 수는 상당히 차이가 있고, 따라서 보건소와 같은 공공 의료 서비스가 이런 부분을 채워줄 필요가 있습니다. 보건소가 직접 진료행위를 하기도 하지만, 큰 부분은 구강 위생 교육과 관리입니다. 여기에 원격의료 기술을 도입해보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치과의사를 상시 고용하는 것이 재정상 어렵다면, 원격의료를 통한 교육이나 모니터링을 통해 공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원격의료를 통한 노인, 장애인 시설 진료나 지방 의료 격차 해소는 사회적으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겨지고 있고, 취약자의 구강 건강을 개선하고 의료 접근성을 높이며 공정한 치과 자원 분배를 위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윤리적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원격의료의 윤리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원격의료가 윤리적인 것은 아니지만, 윤리적인 원격의료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