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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급여 진료비용을 공개하라는 요구,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30)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2020년 9월, 의료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 제도의 대상이 의원급까지 확대되었습니다. 많은 선생님이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를 강요하는 국가의 정책을 비판하고 있으며, 이것이 가격 출혈경쟁을 낳아 의료 질 하락으로 이어지리라고 우려하고 계십니다.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 제도, 윤리적 관점에서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익명


먼저 걱정하시는 부분, 동의합니다.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 제도는 문제가 크다는 인식을 저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정리하기 전에 말씀드리면 비판 의견을 가지신 분들이 손쉽게 기대는 결론이 이런 식의 의료 통제는 사회주의라는 건데요.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사실, 모든 국가는 의료비를 통제하고 싶어 합니다. 심지어, 미국도 의료비를 통제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사회주의 국가로 가려는 노력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의료비가 너무 오르게 되면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비급여 공개의 문제를 제기하려면 국가가 의료비를 통제하려는 그 자체가 문제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통제의 범위나 비급여 공개 제도 자체의 문제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의료비와 관련한 국가의 태도를 살펴보겠습니다(이하 내용은 2010년 5월 10일에 나온 보험연구원 이슈 분석 리포트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 특징과 시사점’을 따른 것입니다). 정부는 빠른 의료비 증가를 염려하고 있습니다. 2020년 OECD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GDP 대비 의료비나 1인당 의료비 상승률은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전 의료비가 낮았다가 빠르게 OECD 평균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으므로(예로, 2019년 GDP 대비 의료비 OECD 평균 8.8%, 한국 8.0%) 상승률 자체만을 문제 삼는 것은 적절한 접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부 처지에선 우려할만한 상황이 있죠. 우리나라의 빠른 고령화와 출산율 감소입니다. 생산 인구가 감소할 것이 명약관화하고 추후 의료비 증가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국가는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 의료비는 급여와 비급여로 이원화되어 있습니다. 급여 항목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이미 충분히 조절하고 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비급여라는 생각이 들 만도 합니다. 게다가 전치 진료비에서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비율을 가리키는 건강보험 보장률은 60%대에서 큰 변화가 없는 상태입니다(2018년 63.8%, 2019년 64.2%). OECD 평균 건강보험 보장률 80%에 비하면 많이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 정책 수립하는 쪽에선 큰 고민을 안깁니다.


따라서 시작한 것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소위 ‘문재인 케어’였지요. 일단 MRI, 초음파 등 항목을 급여화하고 상급병실료에도 보험을 적용했으며 특진료를 없앴습니다. 이런 기조에서 비급여 항목 통제는 자연스러운 항목 이행 또는 다음 단계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즉, 정리하면 국가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우리나라 의료비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으며, 향후 인구구조 변화 등을 고려할 때 의료비를 통제할 필요가 있다. 급여 항목은 잘 통제되고 있으니, 이제 비급여 항목을 통제하자.


이런 주장의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죠. 지면의 한계로 한 가지만 살펴보려 합니다. 건강보험 보장률이라는 지표입니다. 한국과 외국의 의료제도는 상당히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70년대 이후 독특한 의료제도를 발전시켜 왔고, 국가와 의료계가 결코 좁힐 수 없는 간극을 두고 제도를 운용해 왔으나 덕분에 국민은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으며, 우리는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의료접근성, 빠른 치료, 수술, 처방, 병실 수 등.


의료제도에 문제가 있어 고쳐야 한다면, 문제점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당연히 우리 의료 현실이나 제도에도 산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보험 보장률이 현재 우리가 당면한 의료 문제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건강보험 보장률이 의미하는 바는 크게 필수 서비스 보장과 재정적 보호의 범위입니다.


한국의 필수 서비스 보장은 훌륭하죠. 많은 경우, 특히 당장 목숨을 살리는 데 필요한 치료는 보험 항목으로 정해져 있어서 비용 문제가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물론 큰 수술은 비용 문제로 받기 어려울 수가 있죠. 그러나 그건 국가가 의료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영국이나 캐나다를 제외하면 모든 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재정적 보호에는 한계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의료비의 40%에 가까운 부분을 국민이 직접 내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하지만, 민간의료보험이 엄청난 규모로 성장한 사회에서 이것이 정말 국민에게 재정적 문제를 초래하는가, 60%대라는 건강보험 보장률이 국민의 재정적 보호 정도를 제대로 보여주는 지표인가 하는 문제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건강보험 보장률을 OECD 평균으로 올리려는 국가의 노력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고, 이를 해결하려는 제도 중 하나인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 제도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문제는 사회적 가치의 틀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가 의료비에 할당할 수 있는 재정에 한계가 있으며 의료보장 체계가 모든 의료서비스를 다 포함할 수 없습니다. 의료 재정을 무작정 늘릴 수 없다면, 우리는 중요한 의료서비스가 무엇인지 함께 논의하여 선택해야 합니다.


항목 하나하나를 놓고 따져볼 수는 없더라도, 우리 사회가 우선하는 치료가 무엇인지, 왜 이 의료서비스가 국가 의료 보험으로 보장받아야 하는지 함께 숙의해야 합니다. 현재 국민이 느끼고 있는 의료서비스의 문제는 70년대에 설정한 보험 항목이 2020년대의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선택은 이전처럼 전문가의 독단으로 결정되어선 안 되고, 사회와 전문가가 함께 결정해야 할 겁니다. 이런 결정을 할 때 어떤 가치가 우선하며 어떤 원칙을 따져야 하는지, 의견을 어떻게 조율하는지를 다루는 분야가 윤리학, 특히 정의론이라는 분야이므로, 이 또한 윤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