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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무’라는 명칭과 전문가로서의 자리 찾기

특별기고

10월 중순, 학술대회 준비관계로 대만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대만은 한국과 달리 10월에 구강보건주간 행사를 개최하는데, 행사의 일환으로 초등학교 이닦기 경진대회(潔牙比賽)를 성대하게 개최하고 있었다. 경진대회 아이디어의 참신함보다 나를 놀랍게 한 것은, 이 행사에 대만치과의사협회가 들이는 정성과 노력이었다. 이 행사를 위해 이미 연초부터 각 지역의 치과의사들이 지역별 대표를 선발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었고, 최종 전국경진 당일에는 전국 각지에서 심사자 및 행사지원요원으로 수 십명의 치과의사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며, 우리나라 구강보건주간에 한국의 상황을 반추해 보게 되었다. 매스컴의 홍보도 중요하겠지만 한국의 치과의사들이 구강보건주간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노력은 어떠한 수준일까? 구강보건사업은 보건소가 펼치는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치과의사조직은 그걸 후원하는 선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구강보건주간에 한국의 치과계는 어느 정도의 의미를 두고 있을까?

이러한 고민을 하던 중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니, 이 행사를 주관하는 대만치과의사협회 이사의 직함이 ‘구강위생이사’이었다는 사실이다. 문득, 이웃나라 일본은 어떠할까 살펴보았다. 일본에도 ‘지역보건이사’라는 직책이 있다. 일본치과의사협회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면 협회의 사업안내에 제일 먼저 언급되는 사업이 “공중, 산업치과위생관계”이다. 대한치과의사협회의 홈페이지는 어떠할까? 한국도 주요사업 첫 머리에 국민구강보건향상이라는 사업이 제일 먼저 나온다. 하지만, 그 내용으로는 국민구강보건발전을 위한 “의료활동”이라고 언급하고 있다.한국의 치과의사들은 “의료활동”이라는 의미를 “진료활동”이라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는 않은가. 진료대에 앉혀 놓고 행하는 활동 이외에, 구강건강과 관련하여 치과의원을 벗어나 지역사회에 발을 딛고 행하는 활동은 얼마나 존재할까.

정관에 의하면 대한치과의사협회 직제 중 구강보건관련 기능은 ‘치무위원회’ 기능으로서, 이 위원회의 역할은 “국민구강보건 및 치과의료제도, 구강보건정책 및 사업에 관한 사항”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치과의사의 영역이 치아에서 구강으로 확대된 지가 오래인데, 더구나 그 구체적 내용으로 구강보건이란 단어가 반복되고 있으면서도 명칭은 왜 “치무”이어야 할까? 치무라는 명칭이 국민의 구강건강을 챙긴다는 의미보다 치과의사의 업무를 챙긴다는 의미로 해석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치과가 다루는 영역이 치아에 국한되지 않으니 구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야 한다는 당위를 차치하고서라도, 한국의 보건정책의 방향에서 시간이 갈수록 전문가·정부·국민의 3자체제간 균형관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추세이며, 이에 따라 치과의사 역할을 함에 있어 국민들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필요성도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그 어느 전문가 집단이든 이러한 사회추세에서는 공익을 추구하고 국민을 위해서 일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한 요건이 되는 시대이다. 구강보건을 위한 행사가 하루 또는 일주일만의 반짝 행사인 것도 아쉽지만, 하물며 구강보건주간 행사의 주도를 치협의 ‘치무’가 아닌 ‘홍보’직제가 맡는다는 것을 국민은 어떻게 이해할까? 구강보건활동과 관련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사업 및 활동을 기획 집행하며, 지역치과의사회를 견인하는 주도적 역량이 치협내부에서 강화되어야 할 때이다.

이름만 바꾼다고 내용이 저절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름이 잘못 정해져 있으면서 내용이 개선되기를 기대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치무이사’라는 직제의 명칭을 ‘구강보건이사’로 바꾸는 게 국제적 추세에도 맞고, 치협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며, 대국민 이미지 측면에서도 나은 방향이다. 구강보건사업이나 구강보건활동은 보건소가 주도하는 것이라거나, 교육을 비롯한 대국민 구강보건활동은 치과위생사들의 몫이라는 인식이 저변에 퍼져간다면 치과의사에 대한 국민인식의 폭은 더욱 위축될 것이다. 치과의사는 입안이 불편해서 치과의원에 방문한 환자에게 임플란트를 심는 전문가라는 좁은 의미의 전문가가 아니라, 치과의원 밖 국민의 일상생활에서도 구강건강수준을 돌보는 넓은 의미의 전문가이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덕영 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