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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치과개원의 함석태(咸錫泰)탐방<1>

기 고

우리나라 최초의 치과의사이자 최초의 개원의는 함석태(咸錫泰)이다. 1914년 6월 19일 서울 삼각정 1번지 옛 濟蒼局(제창국)자리 동쪽에 3층 목조건물을 신축 개업하였다. 금년이 개원 100주년 되는 해이다. 그때 나이 25세였다. 당시 그 위치에 그 규모의 개원이라면 부모님의 경제적 뒷받침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으리라.

치과의사로서의 함석태(咸錫泰). 고미술 수장가로서의 함석태, 애국자로서의 함석태 등 3회에 걸쳐 선생님을 회고하고자 한다.

초겨울 바람이 쌀쌀한 11월 15일 토요일 오후 선생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개원 위치를 먼저 확인하기 위해 답사의 길을 나섰다. 답사 순서는 먼저 최초의 개원자리 현재 위치 확인과 함석태 선생님과의 사연이 얽힌 종각, 서울역 광장의 강우규 의사 동상 순으로 탐방키로 했다.

치협 박영섭 부회장, 이병태 치과의사학회장, 김평일 서치 협회사편찬위원장, 이재윤 서치 공보이사, 치의신보 안정미 기자, 치과신문 편집장 최학주, 치협직원 권남학 씨 등이 함께 했고 탐방을 위해 몇 가지 자료를 수집했다.

안산, 인왕산이 보이고 제창국(濟蒼局) 간판과 그 아래 ‘치과’라고 선명하게 나온 청계천 다리와 함께 찍힌 1930년대 사진 한 장<사진 1>, 곡교(曲橋) 주교(舟橋)가 선명히 나온 1907년도 고지도, 삼각정 1번지 함석태(咸錫泰)라고 선명히 이름까지 나온 1933년 三中出版社에서 펴낸 京城情密地圖, 大京城 公職者 名鑑자료 (1936년 경성일보에서 펴냄)

1914년 6월 19일자 매일신보에 개재된 ‘함석태 치과의원’ 개원광고<사진 2> 등이다.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종각역을 출발 광교를 거쳐 최초 개원지였던 장소의 현재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미래에셋센타 빌딩 앞, 현재녹지로 되어있는 삼각형 땅이 그곳이라고 확인했다. 표지석 만드는데 안성맞춤이다. 실로 감개무량했다.

왜 우리는 함석태 선생을 기리고 그분의 정신을 되새겨야 하는가? 지금같이 어려운 치과계 현실에 그분의 생애를 회고하고 정신을 계승하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절실하다는 생각을 하며 보신각으로 향했다.

다음 탐방지는 보신각이였다. 함석태 선생님의 나라사랑하는 면면을 생각해보기 위해서였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광화문 네거리 동북부에 있는 碑閣 원명칭은 大韓帝國大皇帝寶齡六旬御極四十年稱慶紀念碑閣에 관한 일화이다. 이 철제문도 함석태 선생님이 보관했다. 이 비는 대한제국 대황제 곧 고종황제의 연세가 육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왕위에 오른 지 40년이 되는 경사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비다. 일본인들이 길을 넓히느라 뜯어 경매할 때 “함석태 선생이 경매로 낙찰 받은 것이다.” “진고개 부호가 거액으로 사겠다고 했으나 거절하고 굳게 보관해온 것이다”고 이태준의 글에 나온다. 나중에 이것을 고종황제께 바쳤다.

함석태 선생의 민족애를 생각하며 발걸음을 서울역광장 독립운동가 강우규 의사 동상을 찾았다. 강우규 의사는 1919년 삼일독립만세후 9월 2일 오후 5시 남대문역(현서울역)에서 사이토미노루(齊藤實)총독을 저격했다. 강우규 의사의 어린손녀 강영재를 양녀로 삼아 이화여전까지 졸업시켰다. 실로 나라사랑을 높이 기릴만하다. 비록 반나절의 탐방이었으나 그분의 뜻을 기려볼만한 시간이었고 진즉 했어야 할 일들이다.

이 답사를 준비하던 중 두 가지 오류가 있었던 점이 밝혀졌다.
그 첫 번째가 최초 개원한 치과의원 명칭이다.
거의 모든 책과 인터넷에 ‘한성치과의원’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서울특별시치과의사회 회사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실제 1914년 6월 19일자 매일신보광고에 의하면 ‘咸錫泰 齒科医院’이라고 쓰여 있다. 新築落成, 診察每日, 京城三角町曲橋 咸錫泰齒科医院/手術無料,電話七拾九番, 開業披露라고 광고했다. 확실한 근거가 있는 만큼 고쳐야할 부분이다.

내가 탐문한 결과 ‘인물과학사’라는 책과 기창덕 선생님 ‘의사, 치과의사 선구자’ 책에만 ‘함석태 치과의원’이라고 표기 되었다.

두 번째가 함석태 치과의원의 위치가 곡교 근처 濟昌局 동쪽에 있다고 대부분 쓰여 있다. 1930년대 청계천을 중심으로 장통교 다리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에 의하면 濟蒼局이라고 간판이 선명히 보인다. 그리고 그아래 치과 간판도 보인다. ‘昌’은 ‘蒼’의 잘못 표기이다. 검증 없이 어떤 사람에 의해 씌여져 내려온 것이라고 생각되며 이번 자료준비 과정에서 밝혀졌다. 검토 후 수정되어야 한다.
탐방을 마치고 서울특별시 치과의사회와 함께 서울특별시에 건의해 표지석을 설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다음호에 계속>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변영남 치협 협회사편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