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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뜨면 ‘무명의 시신’이 이름을 찾는다

치과 밖으로 행군하라-예과 1학년 법치의학 듣고 ‘한 우물’...라오항공 추락, 뉴질랜드 지진 때 맹활약...

치과 밖으로 행군하라- 이상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치의학실장

드라마·영화 속 탐정 이미지는 환상일뿐

학문·정서적 수련없인 버티기 힘든 직업

 
“드라마, 영화 등에서 이쪽 학문에 대해 포장이 잘 된 모습만 보셔서 좋은 이미지가 있으신듯한데, 실제로 상당한 학문적, 정서적 수련이 없으면 버티기 힘든 곳입니다.”

그는 ‘시크(?)’했다. 같은 길을 꿈꾸고 있는 후배들에게 조언이 될 만한 얘기를 청하자 그는 “절대 폼 나는 직업이 아니며, 최선을 다해도 욕을 먹지 않으면 다행인 그런 직장”이라고 일갈했다.

조언이 아니라 만류에 가까웠다. 그는 덧붙여 “권할 만한 직종이 아니다. 많은 지식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름 없는 시신에게 이름을…

이상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치의학실장. 그도 치과의사다. 2001년도에 연세치대를 졸업하고, 2007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법의관으로 입사했다.

같이 공부했던 동기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치아를 살피는 동안, 그는 죽은 사람들의 치아를 살피고, 이름 없던 시신에게 이름을 찾아줬다. 우직하게 한 우물만 팠다.


“1995년 예과 1학년 시절, 우봉 김종열 선생님의 법치의학 소개를 듣고 감명 받은 이후로 한 번도 다른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당시 김종열 교수님은 국과수 소장으로 재직하실 때인데, 그 분의 강의를 듣고 결국 제자가 돼서 이 일에 종사하고 있다.”


각종 드라마, 영화의 덕택으로 법의학의 존재감은 비교적 선명해 졌지만, ‘법치의학’이라는 학문 분과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법치의학자는 전국적으로 5~6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전업으로 활동하고 있는 학자는 이상섭 실장이 유일하다.

이 실장은 “해외에서도 법치의학은 마이너한 학문이기에 어딜 가나 인력난에 시달린다”며 “현재 국과수에서도 치과의사를 한 명 더 선발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중앙직 간부 공무원의 증원이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 여객기 추락사고 한국인 시신 식별 보람
그는 현재 법치의학실에서 신원 불상자의 개인식별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법의학이 ‘사인규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법치의학은 ‘개인식별’에 방점을 찍는다. 치아는 잘 부패하지 않고, 지문처럼 사람마다 천차만별의 특성을 갖고 있어 치과기록이 있다면 시신과 대조해 금세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치과기록이 없는 경우에도 치아의 마모도, 치수 등을 계산해 연령대를 식별할 수 있다.


이상섭 실장을 위시한 국내 법치의학은 세계적 수준. 그래서 국내에서 발견되는 신원불상자의 식별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재난의 시신 식별에 투입되는 일이 잦다.


“2013년 라오항공 여객기 추락사고 때 한국인 세 분을 포함해 44명이 돌아가셨는데, 당시 개인식별단장으로 파견돼 이틀 만에 세 분을 다 찾아드렸다. 덕분에 외교부장관 표창을 받았는데, 그런 성과와 별개로 유족들과 정말 가슴으로 같이 아픔을 느낀 기억이 선명하다. 대개는 무관심과 비난이 따르는 자리지만, 당시는 그랬다.”


이상섭 실장은 이외에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등의 대규모 재난을 비롯해 제주도 4.3사건 희생자 식별 같은 역사적 사건을 다루는 업무에도 파견되는 등 다방면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현재 벨기에 루븐가톨릭대학(KU Leuven)에 방문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 곳의 법치의학교실은 연령추정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곳. 이상섭 실장은 루븐가톨릭대학에서 현재 3개의 연령추정 연구과제를 진행하고 있으며, 하루 종일 실험에 매달리고 있다.


그는 “일차적으로 국내에 적용할 연령추정 기법에 대한 선진화를 이룩하고, 공동 연구 및 법치의학적 감정 경험의 교환을 통해 향후 지속적인 교류가 가능하도록 네트워킹에도 주력하고 있다”며 “강의와 연구에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다. 오는 6월 6일 국과수에 다시 복귀할 때까지 비슷한 날들을 보내게 될 것 같다”고 밝혔다.


# “자리 있습니까?” 묻는 후배들 안타까워

이상섭 실장에게 ‘법치의학자가 되는 길’에 대해서 묻자 그는 한숨을 쏟아냈다.

이 실장은 “요즘 개원가 사정이 어려워서 그런지 국과수 입사에 대한 문의가 왕왕 들어오는데, 한명도 예외없이 ‘자리 있습니까?’라고 물어온다.

법치의학이라는 학문을 시작하면 임상으로 복귀하기가 어려워지는데 그런 중차대한 결정을 하면서 왜 자리부터 따지는지 모르겠다. 학문의 본질보다 자리부터 확보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후배들이 많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말로 이 학문을 하고 싶다면 면허 취득 후 구강내과학교실에서 전문의를 마쳐야 한다. 전문의 과정 중에는 법치의학 수련과정이 있으니 자세한 사항은 구강내과학회를 통해 알아보면 된다”고 조언했다.


공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물


유영아 대구대 간호학과 교수

서울치대를 79년에 졸업했다. 지난 1999년 치과의사 출신으로 최초로 보건소장에 올랐다. 남구 보건소장을 역임하고 현재 대구대 간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공공치의학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공공분야에서 종사하는 치과의사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주심 복지부 서기관

전북치대를 91년에 졸업했다. 구강보건과, 암정책과, 공공의료과 등을 두루거치며 경력을 쌓아왔다.


최종희 복지부 서기관

서울치대를 93년에 졸업했다. 2001년 복지부에 입부한 후 구강보건과, 국제협력담당관실, 아동권리과장,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