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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 치과의사

스펙트럼

거짓말을 하자 피노키오의 코는 어느 쪽으로도 몸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길어졌다. 이쪽으로 몸을 틀면 코가 침대나 창문에 부딪히고 저쪽으로 몸을 돌리면 벽이나 문에 부딪혔다. 고개를 조금만 들면 코가 요정의 눈을 찌를 것 같았다.
     
- 동화 피노키오 중에서 -

얼마 전에 ‘피노키오’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이 드라마 속에는 거짓말을 하면 자율신경계의 이상 현상이 생겨서 딸꾹질을 하는 증상을 가진 소위 가상의 ‘피노키오 증후군’ 환자들이 존재한다. 동화 속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지만 이들은 대신 딸꾹질을 한다. 결국 이런 사람들은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면 증상이 생겨 티가 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피노키오 증후군인 사람이 하는 말은 딸꾹질만 하지 않는다면 무조건 믿는다는 설정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여러 가지 소소한 궁금증이 떠올랐다. 살아가면서 거짓말을 한 번도 안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그런 증후군을 가진 사람이 우리 치과의사라면 과연 거짓말을 못하는 이 병이 환자의 구강건강을 책임지는 우리 치과의사들에게 득일까 독일까? 우리 치과의사가 매일 병원에서 환자분들과 나누는 상담내용과 대화는 과연 모두 사실로만 만들어져야 하는 것인지, 내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과연 진실인지, 그리고 그것이 과연 정말로 옳은 것인지… 이런 마구 생기는 질문들에 대해서 다각도로 고민해보았다. 드라마 하나 보고서 왠 오버란 말인가.

우리가 치과의사로서 과연 진실만을 환자에게 말하면서 지낼 수 있을까? 만일 외과의사가 환자의 말기암을 발견하여 그분이 몇 개월 못산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 그 자리에서 바로 이야기 하는 것이 과연 최선일까? 가족들의 요청에 의해서 일정기간동안에는 비밀로 해드릴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어린 아이의 방사선 사진에서 수술을 요하는 과잉치나 회전된 치아 등등 현재로서는 즉시 어떤 조치를 하지는 않을 상태를 발견하면, 게다가 하필 그 보호자가 평소에도 작은 이상에도 예민했던 보호자라면 과연 그러한 사실을 바로 알릴 필요가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내 개인의 생각만으로 ‘모르는 것이 약이다’, ‘선의의 거짓말’ 등등의 합리화를 하면서 설명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이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 우려되는 상황은, 우리가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정직하게 이야기 한 내용이 실은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조금씩 계속 발전하고 있는 치과계의 새로운 지식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그 옛날 치과대학생 시절에 배웠었던 바뀌기 전의 이론을 여전히 맞다고 생각하면서, 또 어떤 경우에는 본인이 진료하면서 가지게 된 경험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에 따라서 진료하고 환자들에게 설명하게 될 터인데 그 내용들은 이미 아주 오래된 것이거나 왜곡된 지식이고, evidence based dentistry에 전혀 부합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본인이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딸꾹질을 하지 않을 것이고 환자들은 우리들의 말을 100% 신뢰하고 따를 것이다. 그 이후에 나타날 결과는 과연 어떨까?

소아치과를 전공한 저자는 20년 이상을 아이들 진료를 하고 있는데, 유치 우식증을 방치하다가 아이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시기를 놓쳐서 상태가 심해지고 염증까지 생겨 치료가 훨씬 힘들어지게 된 아이를 자주 진료실에서 만나게 된다. 그런데 왜 그렇게 치료를 안해주셨냐고 여쭈었을 때에 “치과에 진작 갔었는데 치과선생님께서 너무 어려서 치료할 방법이 없으니 더 큰 다음에 보자고 하셨어요”라는 답을 들었을 때 가슴이 아프다. 또 제1대구치 실런트를 권유드리니 “아는 치과선생님께서 실런트는 오히려 충치가 생기는 것을 가릴 수가 있으니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라고 대답하실 때에도 답답해진다. 물론 보호자의 말을 100%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는다. 그래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 치과 선생님은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또 그 때마다 나도 내가 잘 모르는 성인치과 분야에 대해서는 무심코 환자분이나 지인들에게 진실이 아닌 치과에 대한 조언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다.
 
대한치과의사협회가 ‘우리 동네 좋은 치과’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실시한다고 한다. 이 캠페인에서는 주로 의료 상업화 등 비윤리적 회원에 대한 대응 마련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몰라서 환자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서로 독려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할 것이다.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우리 모두가 부족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일깨워주기를 노력하는 피노키오의 ‘제페토 할아버지’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승준 분당예치과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