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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빌린 패러독스 그리고 첫 번째 펭귄

시론

1974년 7월 어느 일요일에 섭씨 40도를 웃도는 지독하게 무더운 텍사스. 조지워싱톤대학 제리 하비 교수는 일요일 오후 TV 앞에서 한 손에는 얼음이 든 물잔을 들고 무기력하게 그저 앉아 있었다. 제리 부부와 그의 장인, 장모가 한자리에 모인 그 때 장인 어른께서 말씀 하셨다. “우리 애빌린에 가서 저녁 먹을까?” 제리 교수는 애빌린이 떠올랐다.

그곳은 제대로 된 식당도 없는 곳이다. 더구나, 지금 그들의 차는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58년식 구식 자동차다. 제리 교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무더운 날씨에 어딜 가요? 애빌린은 여기에서 53마일이나 떨어져 있는데, 가는 데만 2시간이 걸린다고요.’ 그 때, 제리 교수의 아내가 말했다. “좋아요, 아버지. 애빌린에서 저녁이나 먹고 오죠. 당신은 어때요?” “나는 좋지. 어머니도 괜찮으세요?” 제리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하는 것보다는 아내와 장인의 기분을 맞춰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장모님도 좋다고 동의했다. 그들은 살인적인 더위에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낡은 차를 타고 텍사스 서부의 모래 먼지를 뒤집어쓰며, 왕복 4시간동안 차를 타고 애빌린에 갔다 왔다.

그 곳에서 그들이 한 일은 형편없는 식당에서 억지로 한끼를 때우고 온 것이 전부였다. 돌아오는 길에는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썰렁한 분위기를 깨려고 제리 교수는 ‘참, 재미있었네요. 그렇죠?’라고 했다. 그 때, 장모님은 이렇게 말했다. ”난, 별로 재미없었네. 음식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래도, 당신이 가고 싶어하지 않았소?” “나는 가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당신이 가고 싶어하니까, 동의했던 것뿐이에요.” 장인은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분위기가 어색해서 ‘애빌린에 갈까?’라는 말을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것이다. 물론, 장인도 애빌린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제리 교수의 부인 역시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고 장모님도 그러했다. 그렇게 4명은 그들 중 애빌린에 가고 싶어했던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만장일치로 애빌린에 갔다 왔던 것이다.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그 누구도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아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동참하게 되는 상황을 ‘애빌린 역설(Abilene Paradox)’이라고 한다. 어떤 사회나 조직에서 암묵적인 대세가 생기면 개인은 대세를 거스르려 하지 않는다. 암묵적인 대세에 동의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경우에도 암묵적인 대세가 전체를 지배한다. 암묵적인 대세는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러한 암묵적 대세를 용감하게 깨는 사람이 바로 ‘첫 번째 펭귄(First Penguin)’이다. 펭귄은 물에 들어가야 먹이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물속에는 바다표범 등 무서운 사냥꾼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모두 물에 먼저 뛰어들기를 주저하며 눈치를 보고 있다. 오랜 기간 굶주리면서도 꽤 긴 시간 눈치를 본다고 한다. 이때 한 마리가 뛰어든다. 바로 첫 번째 펭귄이다. 위험을 감수한 용감한 놈이다. 그제야 다른 펭귄도 따라 뛰어든다. 그 뒤를 이어 수백 수천 마리가 바다로 다이빙을 하는 장관이 연출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애빌린으로 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이번 직선제를 통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침묵을 통한 암묵적 대세 속에서 애빌린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이번 직선제를 통해 첫 번째 펭귄을 찾을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나치시대의 독일 신학자인 Friedrich Gustav Emil Martin Niemoller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그들이 처음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가 아니었기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유대인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내게 왔을 때, 그때는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줄 이가 아무도 없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창진 미소를만드는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