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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인생…사랑과 헌신 되새겼다”

함석태 선생 개원 100주년 기념 흉상 제막식


우리의 뿌리를 찾은 기쁜 날입니다. 치협 회관에 함석태 선생의 빛이 밝게 비쳐 그 분의 얼을 기리고 모든 치과의사들이 존경받으면서 많은 발전을 이루길 바랍니다.”
-변영남 치협 협회사편찬위원장

“만시지탄입니다. 광복이 되자마자 선생을 제일 먼저 모셨어야 하는데 광복이 된 후 70여 년이 지나 이제야 모시게 된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이 분의 불꽃같은 인생을 배우고 내실 있는 훌륭한 치과의사가 되도록 합시다.”
-김평일 서울지부 회사편찬위원장

치협과 서울지부는 지난 6일 치협 회관 로비에서 ‘함석태 선생 개원 100주년 기념 흉상 제막식’을 거행했다.

이성우 총무이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제막식에는 치과계 원로를 비롯한 함석태의 손자 함각 씨와 가족 등 50여명이 함께 했다. 이 자리는 회한과 기쁨, 과거와 미래가 함께 하면서 치과의사로서의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이었다.

치협과 서울지부는 한국인 최초의 치과의사인 면허 1호 함석태 선생의 개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지난 2014년 겨울부터 뿌리찾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그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역사탐방, 개원지 현지 답사 등을 실시하고, 표지석 설치 사업을 추진해 왔으나 여의치 않아 치협 회관 로비에 흉상을 건립하기에 이르렀다. 함석태 흉상은 홍익대 미대 조소과를 전공한 전문 작가의 작품이다.

권태호 서울지부 회장은 “함석태 선생을 기리고자 오늘 이 자리를 만들었다. 함석태 선생의 흉상을 통해 치과의사의 시작을 알리고, 미래를 짊어질 젊은 치과의사들에게 치과의사라는 직업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흉상건립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최남섭 협회장은 “함석태 선생의 치과의사로서의 고귀한 뜻은 100여 년이 흐른 지금, 3만 치과의사들의 마음에 생생히 이어져 오고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는 말처럼, 함석태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한 이번 제막식은 우리 치과의사에게 많은 의미를 주고 있다”며 “치과의사로서의 본분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최초 치과의사로서 가슴깊이 새기셨던 사랑과 헌신을 기억하자”고 제막식사를 통해 함석태 선생의 정신과 뜻을 되새겼다.

또 이날 행사에서 박준봉 대한치과의사학회 회장이 함각 씨에게 함석태 관련 논문이 수록된 학회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치과의사 면허 1호, 함석태는?

함석태는 1889년 평안북도 영변에서 출생했으며, 일본 치과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14년 2월 5일 조선총독부 치과의사 면허 1호를 취득했다. 그리고  그 해  6월 19일 삼각정 1번지(광교 근처)에 함석태 치과의원을 신축 개원했다.

1925년 한성치과의사회 초대회장을 지냈으며, 한성치과의사회는 현재 서울지부의 전신이 됐다. 도산 안창호가 유치장에서 치아문제로 고생한 것을 치료한 기록이 있으며, 보성전문학교 창립 발기인이기도 했다. ‘조선고적도보’ 15권에 조선사람으로서 가장 많은 15점의 소장품이 수록됐으며, 소설가 이태준이 편집인으로 있던 문장지에 ‘공예미’라는 글을 기고하고, 문장지에 ‘청복반일’이라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고종황제를 중심으로 진행된 황실 독립운동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했으며, 특히 남대문역 거사 사건을 일으킨 강우규 의사의 손녀딸을 거두는 등 독립열사들과 직접적으로 교분했다.

1945년 6월경 일제 소개령에 의해 고향으로 고미술품을 가지고 피신한 후 행방불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