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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몇 퍼센트 입니까?

스펙트럼

태어날 때 몇 킬로그램으로 태어나는지.
백일전에 뒤집기를 하는지.
몇 개월에 걸음마를 하는지.
두돌에는 몇 단어나 말을 할 수 있는지.
유치원에서는 달리기를 몇 등을 하는지.
한글은 몇 살에 읽고 쓸 수 있는지.
초등학교에 가서는 줄넘기를 몇 개나 할 수 있는지.
중학교에 가서는 반에서 몇 등이나 하는지
고등학교에 가서는 수능 점수를 몇 점이나 받는지.
대학교에서는 학점을 몇 점이나 받는지, 토익 점수는 몇 점이나 받는지.
결혼 적령기에는 배우자 조건으로 몇 점이나 되는지.
신혼집은 몇 평이나 얻는지.
연봉은 얼마나 받는지.
체지방은 얼마인지.
몇 살까지 살 것인지.

우리는 숫자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아니 적어도 저는 위와 같은 숫자 나라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런 숫자들이 우리에게 도대체 얼마나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오랜만에 다녀온 산행 후 허기에 주유소에서 받은 건빵을 집어들었습니다. 보리 건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보리가루는 2%가 들어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이 “바나나 우유” 라고 알고 있는 어릴적 최고의 간식거리도 사실은 “바나나 맛 우유”일 뿐 아니라, 1%의 바나나 농축과즙만이 들어있습니다.

식품 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지 평가대상을 어떠한 잣대로 보느냐에 따라 참이냐 거짓이냐라는 대답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시대인 것 같습니다. “광고니까…” 라고 넘어가기에는 힘든 것들이 많습니다. 더구나 이제는 기사, 블로그 뿐 아니라 SNS 를 통한 미디어의 홍수에서 진실을 찾아내기란 정말 모래사장에서 바늘찾기 만큼 어려운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90년대에 신신애씨가 부른 “세상은 요지경”에서 처럼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가짜가 판을 친다고 가짜를 동경해서야 되겠습니까? 현실을 직시하는 눈은 있어야겠지만, 거기에 안주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가짜가 아닌 진짜 숫자나라로 들어가 볼까요?

1%안의 대학입시점수로 입학하여 우수한 점수로 졸업하고, 큰 치과를 운영하고 많은 매출을 올리고, 큰 평수의 집에 살고 좋은 자동차를 타고….

예전에는 이러한 것들이 부러웠습니다. 사실 정말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숫자나라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숫자는 숫자일 뿐, 행복이나 평안을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짧은 기간 동안의 만족 정도는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행복이나 평안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은 초등학교 때 독후감을 위해서 억지로 읽고 거기에 나오는 애벌레 그림이 징그러워 토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그림은 보고 싶어하지 않지만, 내용은 그 당시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아직도 제목이 왜 “꽃들에게 희망을” 인지는 모르겠지만, 높이 올라가려는 애벌레들이 현대 인간사회를 비꼬았다는 것은 이제는 이해합니다.

자원하나 없는, 식민지를 거치고 전쟁에 폐허가 되고, 심지어 민족이 두 동강이 난 나라가 지금 이렇게 발전한 것은 정말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위로 올라가려고 서로 밟는 애벌레와 같은 싸움은 이제 그만두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건빵 하나 집어 먹다가 든 생각들이지만, 가짜 숫자나라에도, 진짜 숫자나라에도 없는 평안을 가질 수 있어서 행복한 밤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항진
사랑이 아프니 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