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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치과계의 발목을 잡다

그림으로 배우는 치과의사학- 3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은 해석하면 ‘불쌍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판틴은 자신의 딸 코제트의 치료를 위해 자신의 앞니 2개를 팔아 40프랑(현재 가치로 약 12만원)을 마련하여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보냈다. 오호 통재라! 이제 코제트가 나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던 판틴의 핏빛 미소가 보이는가?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 26년이 지난 1815년부터 실패로 끝나는 1832년 6월 항쟁까지 프랑스의 혼란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1789년 시작된 프랑스 혁명은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이라는 구제도를 타파하려는 민초들에게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기쁨의 눈물과 승리의 미소를 안겨주었다.

마치 우연의 일치처럼 프랑스 혁명의 출발점에서 치과계에서도 미소혁명(Smile Revolution)이 시작되었다. 파리의 치과의사 니콜라스 뒤뷔아 드 슈망(Nicolas Dubois de Chemant, 1753~1824)은 도자기 틀니(mineral teeth paste denture 또는 porcelain denture)를 1789년 발명하였다. 변색, 악취 및 우식등 상아 틀니(ivory denture)의 단점들을 일거에 극복한 발명품이었기에 슈망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종두 백신을 발견한 에드워드 제너와 파리의 왕립의학협회 회장은 슈망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고 82세의 시인 콩테 드 마르타뉴(Comte de Martagne)는 그를 위해 다음의 시를 선물하였다. 그중 일부를 소개하고 진정한 치과의사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번역해본다.

When time has stripp’d our armory bare (세월 앞에 장사 없듯이 치아도 모두 떠나는구나)
Dubois steps in with subtle heed (솜씨 좋은 뒤뷔아가 와서 우리의 불편함을 들어주면서)
New grinders and new cutters gives (새로운 어금니와 앞니를 선물해준다.)
With his we laugh, with his we feed (그 덕분에 우린 웃고, 그 덕분에 우린 먹는다.)
Long live CHEMANT, our friend in need (오래오래 살아 있으라 슈망이여, 유익한 친구여)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은 Thomas Rowlandson의 ‘A French Dentist Shewing a Specimen of his Artificial Teeth and False Palates(1811)’이다(그림 1). 그림에 나온 세 사람부터 알아야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기 쉽다. 정중앙에 있는 뚱뚱한 중년 부인은 최근 장착한 도자기 틀니(porcelain denture)를 최대한 노출시키면서 빅 스마일을 보여주고 있다. 부인의 못생긴 얼굴이 그나마 틀니로 인하여 보완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가히 미소 혁명을 일으켰다고 할 정도로 칭찬이 자자했던 슈망의 도자기 틀니 비용은 얼마나 되었을까? 틀니는 1,000 리브르(livres)였고 그 당시 노동자 1년 연봉의 3배에 해당될 만큼 매우 고가였다. 지금 화폐 가치로 계산하면 약 400만원이다. 따라서 아주 극소수의 특권층만 누릴 수 있었던 미소 혁명이었다.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흘러나오는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의 노랫말에 공감이 간다. 그 시절 사람들의 노래가 들리는가?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18세기 후반의 슈망의 틀니 비용에 견주어 21세기 대한민국 임플란트 치료비를 비교해 본다. 치료의 품격에 훼손이 되지 않는 진료비가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림 우측의 멋쟁이 어르신은 손잡이가 있는 안경을 들고 감탄하면서 부인의 틀니를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그림 2). 노년 신사의 치아는 체면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상태이기에 아마도 잠재적인 틀니 환자로 판단된다. 이 그림의 작가는 ‘Mineral Teeth’라는 제목이 달린 세 개의 문장에 방점을 둔 것 같다. 본문대로라면 치과의사 슈망은 치아뿐만 아니라 틀니와 의안(glass eye)에도 자신만의 특별한 치료법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위스키도 제조하였다.

“Monsieur de Charmant from Paris engages to affix from one tooth to a whole set without pain. Monsieur Dubois can also affix an artificial palate or glass eye in a manner peculiar to himself. He also distills.”

모두 슈망을 찬양하는 홍보 일색이다. 어쩌면 슈망이 풍자 화가 Thomas Rowlandson에게 의뢰한 작품일지도 모른다. 이 그림이 제작된 시기인 1811년에는 도자기 틀니에 대한 평판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도자기 틀니 이름에서 짐작되는 것처럼 말할 때 틀니가 부서지고 저작은 애시당초 불가능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 그림은 풍자보다는 홍보를 위한 거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마지막으로 그림의 왼쪽에는 잘생긴 치과의사가 있다. 그는 18세기 영국에서 유행한 뒷머리를 싸는 주머니 가발을 착용하고 있으며 귀걸이와 반지 등 매우 화려하게 묘사되어 프랑스 치과의사로서의 멋이 넘쳐흐른다. 치과의사는 부인에게 만들어준 틀니를 신사에게 보여주면서 틀니의 경이로움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자신도 환자와 동일한 틀니를 장착하고 있어서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기에 더 설득력 있게 보인다.   

18세기 세계 치의학의 수도였던 프랑스는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점점 그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주요 원인으로 프랑스 혁명이 손꼽힌다. 미소 혁명에 불을 지핀 슈망의 도자기 틀니는 특권층의 전유물로 정치적 성향의 판단 잣대로 평가되었고, 프랑스 혁명 후 그것에 대해서 단호히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게 되었다. 그 결과 치아를 상실하거나 앞니에 충치가 있는 흉측한 모습은 대체적으로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아직도 많은 단점을 갖고 있었던 도자기 틀니의 개선은 없었다. 프랑스 혁명은 치과계에서 탄생한 미소 혁명을 조용히 퇴장시킴으로써 그 후로 오랫동안 사람들에게서 치아가 환하게 보이는 미소는 긴 겨울잠을 잤다.  

권 훈                                      
조선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미래아동치과의원 원장
대한치과의사학회 정책이사
2540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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