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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 인문학과 탱고를

그림으로 배우는 치과의사학- 8


치의학과 인문학의 뜨거운 만남이 있을 때 치과임상은 더욱 빛이 난다. 두 학문은 다르지만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며, 서로에게 소금과 같은 존재이다. 치의학만 있고 인문학이 없거나, 인문학은 출중한데 치의학이 부실하다면 치과에서 여러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그러나 치의학과 인문학 사이에 소통이 있다면 치과에서 야기되는 문제들은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어떤 문제도 발생되지 않을 수도 있다. 환자는 의사다운 의사와 소통과 공감을 잘하는 의사를 원한다. 치과의사란 치아를 치료하는 것을 넘어 사람을 치료하는 직업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영국 캐리커처의 황금시대를 풍미했던 James Gillray(1756-1818)의 1796년 작품 "Easing the tooth-ach"는 여타의 다른 그림과 다르다(그림). 파스텔톤 배경에 오롯이 치과의사와 환자만이 묘사되어 있다. 치과의사가 환자의 치아를 발치하는 장면이지만 마치 두 사람이 탱고를 추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칼럼 제목으로 ‘치과의사, 인문학과 탱고를’로 정한 이유는 두 가지다. 일단 치과의사가 인문학에 한 걸음 다가겠다는 의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인문학과 초보 수준의 탱고를 추면서 재미를 느끼고 있기에 추천한다. 두 번째로는 인문학은 환자에 대한 마음을 열게 해주고, 치과의사를 겸손하게 해준다. ‘내가 뭐라고 이런 일에 불끈해야 하나?’ 이런 독백이 치과에서 일상이 될 것이다.  
        
치과의사와 환자 모두 하얀 가발을 쓰고 있다. 18세기 무렵 가발은 주로 귀족이나 왕족들이 착용하여 사회적 지위의 상징이었다. 19세기에 들어서 가발은 점점 사라지는 추세였으나 의사, 성직자, 법률가와 같은 직업용 가발은 여전히 사용되었다. 또한 환자와 치과의사의 복장도 멋지고 세련된 것으로 보아 사회 지도층 인사로 보인다. 그런데 치료를 받는 환자의 모습이 원숭이처럼 그려져 있다. 아마도 작가의 귀족층에 대한 반감으로 읽혀진다. 한편 치과의사의 배가 불룩한 모습도 눈에 띤다. 톡 튀어나온 배는 인격이 아니라 복부비만 일뿐이다.

의자에 앉아 있는 환자는 오른손으로 오른쪽 장딴지를 꽉 잡고 있고 왼쪽 다리는 술자의 무릅 쪽을 누르고 있다. 불완전한 환자의 자세가 그의 통증 정도를 말해준다. 제목은 ‘Easing the Tooth-ach’인데 상황은 ‘The cure is worse than the illness’처럼 보인다. 치과의사는 선채로 왼손으로는 환자의 턱을 지지하며 오른손으로 발치를 하고 있다. 환자의 고통스러운 상황은 내팽겨 두고 치과의사는 오로지 발치에만 몰입하고 있으며 치과의사 역시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 18세기에 발치 수가는 경제학적으로 High Risk & High Return이었을까? 아니면 High Risk & Low Return이었을까? 이것이 알고 싶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 발치 수가는 High Risk & Low Return이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림에서 사용된 발치 기구는 Tooth-key이다. 18세기말까지 발치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되었고 열쇠처럼 생겼다하여 Tooth-Key 또는 Dental Key라 한다. 발치 기구의 역사에 대해서 잠깐 더 살펴보면 tooth-key는 1730년경에 처음으로 발치에 사용되었다. 그 이전에는 펠리칸의 부리와 비슷해서 명명된 Dental Pelican이란 기구가 1363년부터 떠돌이 발치사에 의해 사용되었는데 tooth-key가 등장하면서 사라졌다. Tooth-key 또한 19세기 후반 Forcep이 시판되면서 박물관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James Gillray(1756-1818)와 Hannah Humphrey(1745-1818)의 미담을 소개한다. 제임스 길레이는 영국 왕 George 3세와 나폴레옹까지도 풍자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킬 정도로 풍자의 강도가 무척 쎈 용감하고 뛰어난 화가였다. 한나 험프리는 그 당시 런던에서 가장 잘 나가는 판화상이었다. 길레이는 재치있는 풍자 그림을 제공하였고, 험프리는 그를 전폭적으로 후원하며 공생 관계를 유지했다. 길레이에게 실명이라는 갑작스런 불행이 닥쳐왔다. 화가에게 시력 상실은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그는 우울증에 빠졌고, 과음은 정신병을 더욱 악화시켰다. 그러나 험프리는 길레이와의 인연을 끊지 않았고, 그가 사망할 때 까지 간호하며 보살펴 주었다. 사람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있다. 결과적으로 길레이도 그런 셈이 되었다. 치과와 환자, 원장과 직원의 관계도 이와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인문학은 사람을 이해하고 알아감으로써 우리 모든 생활에서 깨달음을 찾아가는 학문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깨달음이 시나브로 삶의 일부로 녹아든다면 학문의 즐거움과 성취감을 맛 볼 수 있다. 치의학과 인문학이 치과 플로어에서 탱고를 추며 그리는 그림을 상상해본다. 돈 냄새가 아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치과.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치과. 오는 말이 까칠해도, 가는 말은 차분하게 응대하는 치과. 상상이 일상으로 변하는 치과계를 기대한다.       

권 훈                                      
조선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미래아동치과의원 원장
대한치과의사학회 정책이사
2540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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