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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 “호모 사피엔스”이다

시론

얼마전 코엑스에서 열렸던 SIDEX 2017 전시장을 둘러보다가 어느 업체 부스의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던중, 신경치료는 해서는 안될 치료라는 얘기를 듣고, 필자는 얼마전 사망한 유명 여배우의 사망원인이 신경치료에 기인한 암이라는 주장에 대한 기사가 떠올랐다.

기사를 보고 말이 안되는 얘기라 생각하며 가벼이 지나치듯 넘어 갔는데 그 원장의 주장은 아니지만 똑같은 얘기를 생생히 듣게 되니 적잖이 당황하였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적지않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치과계의 새로운 논쟁으로 인한 분열로 이어질까 걱정도 앞선다.

모 원장의 주장에 대해 “학문적으로 명확히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특히 암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내용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소셜네트워크에 올렸다”고 비난하면서 서울지부는 모 원장을 치협 윤리위원회에 회부하였다고 한다.

유발 하라리라는 이스라엘 학자가 요즘 핫피플로 주목 받고 있다. 45개국에서 500만권 넘는 판매부수의 책, “사피엔스”의 저자로서 빌 게이츠, 오바마 전대통령, 저커버그가 독자라는 것이 더욱 주목을 받는거 같다.

하라리 교수는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등 여러종이 공존하다 사피엔스가 지구라는 행성의 정복자가 된 이유는 높은 지능과 훨씬 더 뛰어난 도구 제작능력이 아니라고 기술한다. 개미나 꿀벌들도 갖고 있는 단순한 협력이 아니라 유연한 언어를 바탕으로한 유연한 협력이라고 설명한다. 집단 신화를 믿는 독특한 능력. 즉 나의 상상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속에 함께 존재하는 상호 주관적 실재인 법, 돈, 신, 국가 등을 믿는 능력 덕분에 인간은 대규모로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다고 기술한다. 더 나아가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라는, 인간이 신으로 변한다는 미래의 새로운 종을 조심히 예측하고 있다.

토테미즘이나 샤머니즘에서 신을 중시하는 종교가 생겨난것도, 인간이 신을 지어냈다는 인본주의 사상도 실생활에 많은 영향과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라는 데이터를 중시하는 데이터교의 시대를 예측하는 것도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실용적인 부분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빅데이터에 의한 생명공학은 인간의 감정이나, 수명, 자유의지도 조절이 가능할 것이라 하는데, 따라서 인간의 수명을 대폭 연장하고 인간의 몸과 마음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우리는 전례없는 빈부격차를 목도하게 되리라 기술하고 있다. 능력이 향상된 초인간과 평범한 인간사이의 격차는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격차보다 더 큰 호모 데우스의 출현을 예견하고 있다. 데이터교의 신봉으로 인해 인류는 변하고 변할 것이다. 학문도 변하고 어제의 진실이 오늘 거짓이 될수도 있다.

모 원장의 주장도 이러한 데이터교에 의해 충분히 검증될수 있을 것이다. 모 원장의 주장이 맞는지는 필자는 세균학 전공자도 아니고 암 전문가도 아니기 때문에 검증할 능력도 없고, 검증할 자격도 없다. 하지만 모 원장의 말이 맞는다 가정해도 현재로서는 신경치료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신경치료를 통해서 얻는 환자들의 이익도 감안해야 한다. 치아를 살리지 않고, 전부 발치를 했을때의 손익을 생각해봐야 한다.

미국같은 경우 주나 영어권(주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구치부 기준으로 대략 70만원에서 170만원 가량의 근관치료비가 든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본인부담금과 청구액을 합쳐 대략 12만원 정도의 비용이다. 적은 수가지만 환자의 치아를 살리기 위해 오늘도 많은 치과의사들이 근관치료에 여념이 없다. 근관치료를 하지 않고 발치후 임플란트시술을 한다면 치과일은 매우 쉬워질 것이다. 수익도 높아질것이다. 하지만 과잉진료라는 환자들의 원성을 살지도 모른다. 단순히 생각해서 치과의사에게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발치하는 것이 가성비가 높을텐데 그 어려운 근관치료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관치료를 해서는 안되는 치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질문드리고 싶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좀비영화 월드워Z에서 좀비 바이러스를 차단하기 위해 북한 주민의 치아를 다 발치하였다는 장면을 보고 북한에서나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안젤리나 졸리라는 유명한 헐리웃 영화 배우가 아무런 증상이나 불편함이 없는데 양쪽 유방절제술을 받기로 했다는 기사는 현대의 유전자 검사, 즉 데이터를 신봉했기 때문에 가능 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유방암으로 사망한 탓도 있었다. 또한 수술의 결정 이면에는 수술후의 불편함, 위험, 비용, 그외에도 심리적 상실감등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고려했을 것이다. 결국 87%라는 컴퓨터 알고리즘의 확률이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모 원장의 주장이 맞는지 틀린지는 필자는 모른다. 다만 치아를 발치 했을때의 불편감, 위험, 심리적 상실감 등도 졸리의 경우와 같이 고려해야 할 것이다. 컴퓨터 알고리즘의 확률도 졸리 같이 87%는 아니라도 누구나 인정하는 수치가 나와야 할 것이다. 향후 데이터를 통한 컴퓨터 알고리즘이 판단을 해주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현재는 유발 하라리의 말대로 유연한 협동이 필요하다.

필자도 신경치료를 받았지만 전세계적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신경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다. 신경치료를 안해야 세균에서 해방된다는 얘기는 나폴레옹이 가장 약속을 잘 지키는 법은 약속을 안하는거라는 얘기와 비슷하게 들린다. 신경치료는 그동안 너무 뗄레야 뗄수 없는 치과계의 필수 불가결한 치료라 생각한다. 차라리 신경치료는 인정하고 세균을 없애는 방법이나 노력을 주장하면 어떨까?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하지만 같은 치과동료로서 사심없이 환자와 국민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노력하는 쌍방의 유연한 협력이 필요하다. 하라리는 20년 배워서 평생 먹고 살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고 역설한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무엇이 발전할지도 예측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유연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큰 질문을 통해서 여러 분야를 묶어서 볼 수 있는 통찰력이 그 어느때보다도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단일고리 해법으로 풀기에는 복잡한 상수가 너무 많다.

아직 우리는 “호모 데우스”가 아니라 “호모 사피엔스”이지 않은가?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하상윤 하상윤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