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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후예 II

오지연의 Dental In-n-Out

영국 BBC가 ‘아시아를 휩쓴 군대 로맨스’라고 보도했던 드라마<태양의 후예>의 원작이 재난현장에서 분투하는 의사들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인류애를 그린 ‘국경없는 의사회’란 메디컬 드라마라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주인공 유시진과 서대영은 (당연히)의사였고 군의관으로 나왔던 윤명주는 간호사였다. 진도 8.3의 강진이 발생한 우르크에 급파된 긴급구호 의료팀을 여의사 강모연이 아니라 신의 손을 가진 천재 외과의사 유시진이 이끄는 시놉시스로, 군인으론 생화학 무기를 둘러싸고 우르크 지역 갱단과 싸우는 유엔 평화 유지군이 나올 뿐이었다고 한다. 2011년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주제의식이 우수하고 소재도 특이했지만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이 아니어서(!) 오랫동안 드라마 화 되지 못하다가 멜로를 강화하고 주인공을 의사에서 대한민국 육군 특전사 장교로 변경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김은숙 작가가 가세하여 원작자인 김원석과 공동집필한 대본이 완성되었다. 자연스레 주제도 ‘국경 없던’ 인류애에서 국가론과 연관된 휴머니즘으로 변했다. 멜로를 가미하자는 건 뭐 그렇다 치더라도 주인공이 의사인 것보다 특전사 장교인 것이 시청자들에게 더 어필한다는 견해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라이방 선글라스를 끼고 헬기에서 내려 의료진을 지원하러 오는 특전사 대위가 한숨이 나오도록 멋지기야 하지만, 천재 외과의사를 주인공 자리에서 밀어낼 만큼 대단한가를 판단하기에 아무래도 객관적이기 힘든 나보다는 딸아이의 분석을 전하자면, 모든 얘기가 즉, 로맨스가 의사들 끼리에서 다 끝나버리면 재미가 없단다. 하긴 옥신각신하다 정이 드는 연인 사이에 다투는 주제역시 의학 관련 내용이라면 시청자 입장에선 지겨울 수도 있겠지. 입장이란 정말이지 여러 가지인 것이다.

여하튼 대중이 좋아할 내용으로 원작을 수정하자는 기획에 적극 협조해서 마침내 대박 드라마를 탄생시켰으니 어쩌면 創作보다도 몇 배 힘든 과정을 거뜬히 넘긴 원작자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All’s Well That Ends Well.

아주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병원놀이를 하는 거라든가, 제정일치시대의 제사장들이 주술로나마 치료를 하려 했던 것 등을 보면 의술은 거의 인류의 로망이 아닐까도 생각한다. 종교적인 이유로든 다른 계기로든 치료의 보상으로 돈을 받는다는 현실이 괴로워질 때 의료인들은 (아무 대가 없이) 여러 세대 전부터 유전자에 각인된 숭고함만이 살아 숨 쉴 곳으로 가는 꿈을 꾸는 것이다. 다만, 이럴 경우 자칫하면 선한 의도가 모든 것을 덮어 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으로 뜻밖의 난관을 만나게 되기 쉽다. 天衣無縫이라 할 만큼 일사천리로 잘 진행되면 좋으련만 현실은 여기저기 깁고 꿰맬 바느질이 꼭 필요한 것이다.

밀림의 성자로 유명한 슈바이처조차도 흥분과 실의와 에너지의 고갈을 번갈아 겪었을 하루가 저물 무렵이면, 가봉의 오고웨 강변을 정처 없이 걷거나 유럽에서 가져간 철학책들을 읽고 오르간 연주를 하며 낮 동안의 일들을 잊으려 했고, 오랜 지기인 아인슈타인에게 환율변동 직전에 현물 사재기를 통해 병원의 재정손실을 방지했던 사연을 언급하며, 신학자요 의사인 자신이 병원을 지키려고 투기꾼에 도박사가 되었다는 푸념의 편지를 쓰곤 했다고 한다(회고록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중에서).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이 권고한 해외진료봉사 체크리스트는 그런 의미에서 시의적절한 바느질 포인트를 제시했다고 여겨진다. 사명감만으로 임하기보다는 현지문화나 금기 사항 등을 숙지하고, 하루 8시간 이상은 진료하지 않도록 하라든가, 현지 식을 먹으려고 너무 노력하지 말라든가 하는 지침들은 모처럼의 봉사 일정이 선녀의 옷처럼 매끄럽게 마무리되도록 도와줄 탁월한 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운영의 묘를 통해 히포크라테스의 선서가 이 세상의 모든 태양 아래에서 더욱 더 굳건히 지켜지기를 기원하며, 따뜻한 인류애를 가슴에 품고 오늘도 長途에 오르는 태양의 후예 II 들에게 큰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