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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크라테스 선서와 미래 의학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5

고대 그리스에서 ‘파르마콘’(pharmakon)은 약을 뜻하는 동시에 독약을 뜻하기도 한다. 같은 것이 사용하기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약이 되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치료의 기술도 마찬가지로 양면성을 지닌다. 더 나아가 원리적으로 볼 때,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사람을 해롭게도 할 수도 있다. 이런 이치에 따르면 질병도 막는 데 능한 이는 병을 생기게 하는 데도 능할 수 있다( 플라톤, <국가> 333e). 그래서 의사는 고래로 윤리성이란 짐을 운명처럼 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의료 윤리의 기준 확립이 의료계에서는 중요한 문제가 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그런 기준을 최초로 분명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제시한 것이 <히포크라테스 선서>이다. 이것의 작성 시기는 기원전 5세기 말이나 4세기 초로 추정된다. 오늘날 히포크라테스 선서식에서는 현대에 맞게 1948년 수정한 <제네바 선언>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니까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제네바 선언>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원본은 <제네바 선언>에 비해 짜임새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또한 오늘날 생명의료윤리의 핵심 원칙들이 비교적 잘 표현 되어 있다. 이를테면 “나는 환자를 ①이롭게 하기 위해 치료법을 사용하되, 환자가 ②해를 입거나 ③부당한 일(adikia)을 겪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는 구절이 반복해서 나오는데, 여기서 ①-③은 생명의료윤리의 ‘선행의 원칙’, ‘악행금지의 원칙’, ‘정의의 원칙’과 연관된다. 그 밖에도 오늘날 안락사나 낙태 등의 문제와 관련해서도 선서의 내용이 거론되곤 한다. 이처럼 선서는 오늘날에도 의학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주요 원칙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한 가지 부연해 둔다면 ③에서 ‘부당한 일’을 나타내는 ‘adikia’는 dike(정의)의 반대말이므로, ③이 정의의 원칙과 연관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급변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도, 더욱이 미래 의학에서도 그것이 여전히 의미가 있을까? 오늘날은 의학을 비롯한 과학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신에게나 가능할 법한, 생명체와 관련한 지적 설계가 이제는 인간의 일로 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전공학과 생명공학의 발전에 힘입어 생명체의 유전자를 조작하고, 사이보그 공학의 발전으로 기계를 장착한 사이보그 인간이 생기고, 여기에 인지공학의 급속한 발전까지 가해져 향후 상상 속에만 있음직해 보이던 일들이 실현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향후 20~30년이 지나면 의사의 일들의 상당 부분을 로봇이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도 쏟아지고 있다. 그리하여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은 로봇에 의해 치료받는 또 다른 기계(사이보그 인간)로 될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면 의학적 치료란 그야말로 기계의 고장 원인을 찾아 부품 교체하듯이 이루어지게 되는 게 아닌지?

물론 의술이나 과학의 발전이 인류의 미래에 어둠만을 드리우리라 예상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발전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것인지 검토하기도 전에 엄청난 속도로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다. 기술이나 과학은 무작정 앞으로 돌진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기술과 윤리 사이에 긴장 관계가 형성된다. “기술은 하나의 명령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그것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할 것이다.’ 그러나 윤리는 묻는다. ‘우리는 그것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해야 하는가?’”(피터 싱어)

의학 발전의 현 추세는 ‘pharmakon’이 그렇듯 양면성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지혜롭게 판단하고 행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 의거해 본다면, 주요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은 그것이 진정으로 환자를 더 이롭게 하고 환자에게 해가 될 점은 없는가, 그리고 환자를 더 이롭게 하려면 의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일 것이다.

요컨대 진단과 치료 업무의 상당부분이 이른바 왓슨이나 알파고와 같은 로봇에 맡겨진다면, 환자를 이롭게 하기 위해 의사에게 남겨질 일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미래의 의사에게는 기술적 능력보다는 환자와 따듯하게 잘 소통하는 마음이나 능력이 더 중요하게 될 것이라는 데 많은 이들이 동감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의사의 상은 어떤 경우에도 환자를 이롭게 해야 한다는 <선서>의 정신을 바탕으로 형성되어야 할 것이며, 이런 점에서 <선서>는 다시 음미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기백
정암학당 학당장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