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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는 마술사

그림으로 배우는 치과의사학- 14


역사 공부를 왜 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으로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1749-1832)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He who cannot draw on three thousand years is living hand-to-mouth. 직역하면 3천년의 시간을 끌어내지 못하는 사람은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즉 역사를 모르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윈스턴 처칠의 말은 더 주옥같이 와 닿는다. “The farther backward you can look, The farther forward you will see.” 더 많은 과거를 회고할수록 더 많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위인들의 생각을 발판 삼아 지난 수백년동안 치의학이 그림에서 어떻게 묘사되었는지를 칼럼을 통해 소개하고 있는데, 조금이나마 치과의사학 공부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그림은 그 시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 시대의 역사를 말해준다. 과거의 그림을 현재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시절의 역사를 알고 그림을 본다면, 과거의 모습이 책보다 더 생동감 있고 머릿속 깊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영국 풍자화가 Henry Bunbury(1750-1811)의 1790년 작품 ‘Legerdemain’이 앞에서 설명한 딱 그런 그림이다(그림1). 그림의 좌측에는 chiropodist(발치료사)가 우측에는 tooth-puller가 진료중이다. 심지어 진료실 벽에는 발로 그린 듯한 ‘발’그림이 액자에 걸려 있다.

그림 1은 18세기 후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이발-외과의(barber-Surgeon) 진료실 풍경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작품이다. 그림 우측에서는 발치가 진행 중인데 환자의 표정과 움직임을 통해서 고통이 충분히 관람인에게 전달된다. 시계 옆에 세워진 지팡이와 모자가 어르신 환자임을 추정케 한다. 술자의 왼발은 의자를 지지하고 있고, 오른발은 환자의 한쪽 발에 얹고 있다. 또한 술자의 왼손은 환자의 어깨를 누르고 있는데 아마도 환자의 주먹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 오른손 한손으로만 발치를 하는 묘기를 부리고 있다. 나름 진료의 신속성을 위하여 술자의 자켓 호주머니에 발치 기구들이 담겨져 있어 측은한 마음이 든다. 우리는 이 그림을 통해서 1인 진료의 비효율성과 불편함을 직관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치과 치료는 혼자가 아닌 둘이가 정답인 것 같다.

반면 그림 왼쪽에서는 짓궂은 발 치료사가 환자를 등 뒤로 앉은 채 환자의 왼발을 자신의 양다리 사이에 고정한 후, 양손으로 환자의 발가락을 잡고 티눈(corn)을 제거하고 있다. 발 치료사는 환자의 고통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장난치듯 치료에 임하고 있다. 게다가 티눈을 제거할 때 사용하는 기구를 입에 물고 있으며, 바닥에는 기구마저도 나뒹굴고 있다. 이러한 상상도 충분히 가능하다. 발을 치료한 손으로 다른 사람의 입을 치료하고, 그 손으로 또 다른 사람의 입을 만졌을 것이다. 최근 TV CF에서 본 섬뜩한 무좀약 광고가 자꾸 떠오른다. 풍자 그림이기에 과장된 면이 없지 않지만 터무니없는 그림은 결코 아닐 것이다. 치과에서 감염방지에 관한 한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하고, 특히 술자와 스탭의 손에 대해서는 항상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발과 입을 진료하는 모습이 한 프레임에 그려진 그림이 하나 더 있다. 벨기에 화가 Adriaen Brouwer(1605-1638)의 작품 ‘The Operation(1630)’이다(그림2). 17세기 이발-외과의는 티눈을 포함한 여러 가지 소수술부터 발치까지 시행하였고, 이러한 진료실 풍경은 19세기까지 지속되었다. 17세기 대부분의 치과 치료는 이발외과의가 담당하였다는 수많은 문헌과 그림들이 있다. 이발외과의는 주로 발치와 치석 제거에만 제한적으로 치아를 치료하였기에 치의학 발전에 공헌하였다는 근거는 없다. 그러나 이발-외과의는 그때 그 시절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림의 제목에 나름 의미가 있다. Legerdemain(레저드메인)은 부정적인 의미로는 요술과 속임수,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손이 빠른, 마술적인 손기술이다. 특히 티눈 제거에 대단한 솜씨를 가진 사람은 특별한 명찰을 차고 있었다고 한다. 왠지 티눈에 의문의 1패를 한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이제서야 착용이 익숙해진 단어 명찰을 보니 반갑기도 하다. 티눈이든 발치든 치료의 핵심은 시간이다.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 고통의 시간을 최소로 하는 것이 그때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치과의사의 손이 빠르고 손재주까지 있다면 금상첨화일텐데….

마술사가 도구를 사용하여 과학적으로 구현하듯이 치과의사는 치과 기자재를 이용하여 환자에게 마술과 같은 치료를 선물할 수 있다. 한 가지 꼭 명심해야 할 것은 데이빗 카퍼필드나 이은결은 마법의 지팡이에 의존하기 보다는 끊임없는 연습을 통하여 관객에게 신기한 마술을 보여주고 있다. “The Magic is not in the WAND, but in the MAGICIAN.”

권 훈                                      
조선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미래아동치과의원 원장
대한치과의사학회 정책이사
2540g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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